겨울이 대동단결(大同團結)했다?
대동단결이라니,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춰보는 낱말인가. 대. 동. 단. 결. 나의 연식을 드러내는 꼴이 되었구나. 아주 오랜 옛날, 이 낱말을 거느리고 살던 사람들의 시절이 있었다. 대동이라. 크게 뭉친다, 목적이 있는 큰 세력이 되고자 화합한다는 뜻이다.
나와 우리는 큰 세력도 아닌 주체였기에 '대동'을 걸고 '단결'을 해야 한다고 외쳐오던 사람들 앞에 무릎 대좌하여 있어야 했다. 외치는 자들 아래 주저앉아 고개 끄덕거리면서 동조해야만 버틸 수 있는 대열에 서야 했던 시절을 살았다. 한없이 풋풋했다고 하면 이 얼마나 대단한 어리광인가. 한편 끝 모르게 어이없던 시절이라 치면 속절없이 사라진 그 시절의 젊음이 반품되어 돌아오기라도 할까.
지나고 보니 '대동'이라는 것에 우리 시대가 어울리는 낱말은 '단결'이 아니라 '소이'였다. 대동소이(大同小異). 크게 보려고 드니 같더라, 작은 틈새로 보니 그것이 그것이더라. '오십 보 백보'이더라. 이참, 저 참이더라. 이 골, 저 골 골골하기는 매한가지더라. 어제까지는 내 생애 가장 큰 일이다 싶었는데 한숨 자고 일어나 새날의 해를 보니 그저 태양 아랫사람이더라. 별것 아니더라. 사는 게 그냥저냥 그렇더라. 이제는 되도록 '그래, 그래, 그러려니 하자'고 서로의 허술해진 등을 쓰다듬는 것이 최선인 나이가 되었다. 오늘 내가 청춘이라면 광화문 앞을 시작으로 밤을 새워 월드컵을 응원했을 것이 틀림없는 내 지나간 젊음을 토닥거리면서 새삼 '대동단결'을 읊조리는 이유가 있다.
하늘이 회색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출근길, 내가 사는 아파트 권역을 나서 '길'에 들어서면 온전히 내다볼 수 있는 하늘이 보이는 즉시 폰 필름에 담는 풍경이 있다. 앞산을 아래 배경으로 한 새날의 하늘빛을 담는다. 하루의 시작 한 컷을 담는다. 내 하루의 경건한 시작을 사진으로 확인한다.
오늘 아침 하늘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하늘이 오직 하나의 색으로 뭉쳐 있었다. 온통 회색이었다. 푸른색, 하얀색, 붉은색으로 알록달록했던 매일의 하늘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겨울이 대동단결했구나 싶었다. 어떤 기운이 작용하여 저토록 단 한 가지의 색으로 뭉치게 했을까. 금세 눈 뿌릴 듯싶은 회색빛 하늘이었다. 눈 뭉치를 꼭꼭 싸매어, 가득, 빼곡하게 쑤셔 담아 하늘이 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뭉쳐지면 펑펑 펑펑 함박눈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런, 좀 더 두툼한 모직의, 다음 단계 코트를 입고 나왔어야 했을까. 후회하던 찰나 일터 정문이다. 열을 내어 달렸다. 경보 수준의 걷기였다.
점차 일어나는 시각이 늦어지면서, 오늘은 무려 삼십여 분을 늦게 일어났다. 모두 나처럼 겨울 치레를 하겠지 싶었다. 밖이 어두우니 눈이 떠지질 않을 것이며 사람들은 모두 어두움에 져서 이불을 걷어치우지 못하고 말 것이다. 모두의 아침이 지연될 것이라 여겼다. 오늘은 무려 7시 30분이 다 되어 집을 나섰다. 겨울색으로 대동단결한 하늘 등 자연들의 뭉침에 힐끗 눈치만 보내고서 달렸다. 보통 걸음으로는 적어도 25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오늘은 13분 만에 완파했다. 일터 대문을 통과하여 건물 중앙 상단에 걸린 대형 전자시계를 보니 7시 43분이었다. 내 좋아하는 마라톤의 선수가 되어 내가 작정한 시각에 라인을 걷어차고 목적지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일터 자기 자리에 서 있었다. 벌써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일터 대문 경비 할아버지는 근처 낙엽이며 쓰레기들을 쓸어 모아 말쑥한 도로를 탄생시켰다. 본관 경비 할아버지도 현관 앞을 비롯한 건물 전면의 낙엽 쓸어 모으기를 끝내고 계셨다. 식당은 이미 불을 환하게 켜고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주 후반부터 많은 수를 볼 수 없었던 까마귀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까마귀들의 아침 식사 시간을 저버린 채 내가 너무 늦은 시각에 도착한 것일까. 혹 까마귀도 겨울 철새인가? 어디론가 남쪽 하늘을 향해 줄지어 이동한 것인가. 까마귀 관련 속담이며 사자성어도 몇 알고 있으니 분명 텃새이지 않을까 싶은데 글쎄, 찾아봐야겠다.
일터 정문에서 바라다보이는 건너편 하늘을 폰 필름에 넣었다. 침묵의 회색 하늘이 여전했다. 하늘은 왜 그 많은 색을 집어 삼켜버린 것일까. 사진으로 그들 한살이를 마련해보겠다고 근무일 아침마다 찍고 있는 소국 무더기도 찰칵 앨범에 담았다. 이제 소국은 앙상한 가지들을 출몰시키고 있다. 벼 타작 끝난 후의 앙상한 벼 줄기처럼 소국도 마른 줄기를 적나라하게 내놓고 있다. 일 년의 생을 마무리하고 있다. 각자의 방법으로 모아 왔던 기운을 쓸어 모아 어느 한 곳에 쟁여두고 떠나야 하는 일 년생 화초들의 삶. 소국은 가지 싹둑 자르면 다시 새 순 돋아 다년생으로 변신한다고 하지만 한번 피운 꽃의 일생은 한 번으로 끝이다. 우리네도 그렇다. 일 년생 삶이지 않을까. 올 1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지 않는가. '대동단결'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인생 한 철, 지극히 정상적인 산 모양의 포물선을 평생 삶의 한 방편으로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일터에 가면 한 해 마무리를 위한 회의가 매일 진행된다. 임인년을 정리해야 하는 시절에 와 있다. 1년 농사 결과를 수치화하고 통계화하라고 야단법석이다. 조직에 얹혀사는 삶이고 보니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가끔 업무의 결과를 수치화나 통계화를 하지 않고 A4용지 한 장 정도의 글로 쓰면 어떨까. 혹은 사진 모음으로 하면 어떨까.
가만 생각해 보니 어제 올린 글 속 '이강인 원톱 블라블라~'는 현 이강인의 위치로 볼 때 맞지 않은 말이다. 이강인은 공격형 미드필더이므로! 크. 내일 새벽은 떨리는 가슴을 안고 분명 경기를 본방 사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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