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손흥민을 하고 김영권과 황희찬이 김영권과 황희찬을 했다. 그리고 이강인이 이강인을 했다.
내 좁은 속내를 어쩔 수 없었다. 밴댕이 소갈딱지 정도이다. 소갈머리만 비좁은 상태라면 괜찮다. 통도 크지 못하다. 굳이 통이 큰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겁이 많다. 어젯밤 우리와 포르투갈의 축구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바로 전에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속이 떨려서 볼 수가 없었다. 두 국가가 입장하고 호날두와 손흥민을 확인하고 황희찬이 등판한다는 소식 정도에서 멈췄다. 경기 시청은 감히 실행할 수 없었다. 하필 어젯밤 나는 또 혼자였다. 함께 사는 이가 있었다면 억지 시청이라도 했을 것을. 하필 이런 날 집 나가 밤을 지내다니.
잠이 쉽게 올 리 없다. 여러 번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잠은 으깨어졌다. 비몽사몽, 여러 환상과 상상이 뒤섞여 뭉치는가 하면 또 조각났다. 그러던 중 잠시 잠깐 핸드폰을 켜고 끄면서 확인한 것이 포르투갈 1득점이었다. 포기와 인정과 기대와 기적을 소망하면서 현실과 현실 저쪽 나라의 왕복을 마감한 것이 열 번은 되었을까. 마치 잠자던 내 영혼이 꿈속에서 누군가의 안내를 받은 듯 정식으로 눈이 떠지게 했다. 새벽 2시 50분쯤이었을까.
핸드폰 뉴스 검색으로 '대한민국 16강 진출'을 읽었다. 아. '아' 정도로 나의 감탄사를 마무리하였다. 진득하게, 속으로 알차게, 내실 있게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평소 요란한 밤을 보내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위층 둘째 아들에게 참 서운했다. 이런 일로 좀 움직이지 않고 뭐했을까 싶었다. 소리도 좀 질렀더라면 싶었다. 분명 오늘은 참 조용한 밤을 보내는 것이 못내 서운하였다. 핸드폰 숏 영상으로 득점 장면만 확인하였다. 가슴 떨렸다. 이렇게나 잘하려고 앞선 두 경기를 그렇게 했을까. 이런 강력한 드라마를 연출하고자 이 일 저 일 붐볐구나 싶었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가고 없는 것. 오늘, 지금 좋으면 된다 라고 하면 억지인가. 억지인들 어쩌냐. 이렇게 즐거운 것을.
경기 시작 무렵 사실 내다본 우리 아파트의 다른 동 각 호수의 집은 거의 불빛이 없었다. 뒤에서 보기에 불빛 확인이 되지 않겠지 싶으면서도 어쩌자고 모두 경기 시청을 하지 않고 잠드는 것인가 싶어 불안했다. 이미 포기한 것인가. 가망이 없으니 별 볼 일이 없다고 여긴 것인가. 다른 때 같으면 나 대신 경기를 시청하면서 소리도 지르고 한탄의 큰 소리도 내게 전할 텐데 어젯밤은 참 고요했다. 우리 아파트만 그런 것이었을까. 이웃들이 미웠다. 눈 뜨고 보니 자기들만 이 큰 기쁨을 즐겼구나 싶어 참 섭섭했다. 새벽 세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눈을 떠보니 이웃 동들 각 호수 곳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다들 각자 기쁨을 만끽했구나. 치, 나만 빼고서. 다들 너무 기뻐 새벽을 눈 뜨고 지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재방을 봤다. 골을 넣은 장면만 보고 지나간다는 것이 모든 선수에게 미안했다. 선수들에 대한 예의, 벤투 감독에 대한 인사치레가 아니라고 여겨졌다. 마침 SBS에서 재방을 바로 했다. 눈 똥글똥글하게 뜨고 선명한 의식으로 경기를 감상했다. 감상. 이렇게 즐거울 수가. 이렇게 행복할 수가. 김영권의 1점은 뒤따라가는 편의 힘을 두 배, 세 배로 배가시켰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쫓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황희찬의 골에는 무슨 말을 붙이겠는가. 서툰 글솜씨가 그 골의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니, 참자. 물론 포르투갈의 히카루두 오르타의 골도 멋진 골이었다.
그리고 손흥민이 손흥민을 했다. 그 긴 거리를 홀로 공을 몰고 달려가는 그의 온몸에 빛이 휘돌았다. 문전에 다다라 상대 세 선수의 압박 속에서, 보는 이도 숨죽일 만큼 어쩔 줄 몰라 숨을 죽이던 상황 속에서, 당사자 손흥민은 순간, 마치 신의 명령에 의한 듯 차분하고 침착한 차림새였다. 세계의 눈이 바라보는 현장에서 그가 상대의 가랑이를 통과시켜 황희찬에게 건네는 순간 조물주도 감탄했을 것이다. 인간을 조물조물 창조한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황희찬. 그는 내가 보는 두셋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서 제법 가깝게 만났다. 그의 영국 생활 재방도 한 번 더 볼 참이다. 첫 경기부터 그를 볼 수 없어 매우 안타까웠다. 오늘 경기를 보니 황희찬의 허벅지 부상은 오늘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구나 싶다. 손흥민과 함께 울었다.
또 한 선수가 있다. 이강인. 전반 25분경, 상대 팀 선수로부터 파울을 당해 쓰러지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볼을 잡고 있던 순간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이 장면의 타이틀이었던 '16강의 시작이었던 황금 왼발. 이강인(SBS 스포츠)'은 정확한 표현이다. 이강인으로부터 김영권의 골이 출발했다. 이강인이 인물이다 싶다.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원톱이겠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종일 유튜브 곳곳을 돌며 경기 및 해설을 보고 있다. 마음껏 행복했다. 나중에 오게 될 행복을 미리 받게 된다 해도 괜찮다. 나중에 값지게 쓸 수 있는 것을 미리 당겨서 쓴다 해도 괜찮다. 동안 수많은 말, 말, 말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선수들을 이끈 파울루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에 감사한다. 덕분에 우리나라 선수들의 축구 경기를 보는 즐거움의 폭도 넓어지고 깊어졌다. 드리블, 세트피스 킥, 크로스, 패스 등을 다양하게 연출한다. '저보다는 다른 선수들한테 이 공을 돌리겠다'라는 손흥민이 고맙다. 이 어수선한 세상에 그대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대한민국의 축구 대표팀 선수단이여!
앞서 치른 두 번째 경기 관전평의 글에서 그대들의 힘에 무기력함을 내세워 가벼이 여긴 것을 반성한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에서 희망을 썼다. 내게는 약간의 신내림의 힘이 있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힘이 아래 사진과 같은 글을 남기게 했다. 실사이다. 며칠 전 이곳 블로그의 내 글이다. 캡처하여 올린다. 사실 나는 가끔, 아주 가끔 내 직을 바꿀까 생각한 적도 있다. 아주 작은 크기이지만 신병, 무병 비슷한 것이 내 안에 있음이 느껴진다. 다만 내 운명이 무서워 멈췄을 뿐이다. 누구, 당신의 운명이 갑갑궁금하거든 내게 오라. 나는 당신의 긍정적임 힘을 발견하고 밝은 미래를 점지하리니. 진담이자 농담이다. 부디 미루어 짐작하시기를!
아, 그리고 또 한 사람. 내가 이렇게 축구를 열심히 만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내 사랑' 때문이다. 내 사랑'. 나는 사실 축구경기 중계를 볼 때마다 '내 사랑'에게 속죄하는 기분으로 산다. '내 사랑'의 고등학교 재학 때 별명은 '딩요'였다. 한때 전 세계 축구인들에게 대단한 발재간으로 축구 경기를 보는 즐거움을 주었던 브라질의 선수가 있었다. '호나우두 딩요(호나우지뉴, 호나우두로도 불린다. 또 다른 호나우두가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호나우두 딩요'로 불렸다. 그의 진가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두드러졌다. 비록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킬패스 등 축구선수가 부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발재간을 자유자재로 해내기로 유명했다.)'였다. 내 사랑도 그랬다. 호나우두 딩요 못지않게 공을 가지고 논다. 경기력도 출중하다. 나는 내 사랑에게 '전문직'을 강요하였다. 하여 전문직을 산다. 축구 경기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사랑에게 미안하다. 어미이기에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여 이끌었으나 이런 국제 경기가 있을 때마다 나는 늘 죄스럽다. 내 사랑! 오늘, 이 기쁨을 내 사랑과 함께하고 싶다. 내 사랑!
이제 6일 브라질과 8강 진출을 위한 경기를 치른다. 강력한 브라질이다. 브라질을 다 안다. 선수들이여,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마음껏 운동장을 밟고 뛰라!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혹시 아나? 혹시? 건투를 빈다. 2022 카타르 도하 월드컵 축구를 뛰는 대한민국의 선수들이여! 중동의 정통 모직 목도리가 만드는 무한대의 엠블럼, '첫 겨울 월드컵'이 그대들에게 축복을 내기리를!
내 다 늙기 전에 나도 월드컵 경기장에 가보고 싶다. 가서 경기 승리 후 관객들 앞에서 승리의 슬라이딩 세리모니를 해주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더 늙기 전에. 오호, 다음 주에는 하루, 조퇴를 좀 해야겠다. 월드컵 경기장에 가기 위한 적금을 들어야겠다. 늘, 늘, 늘, 승리의 세레모니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축구가 되길 기원한다.
추신 : 오늘 치렀던 경기 중 브라질과 카메룬의 경기도 참 인상적이었다. 카메룬의 골키퍼 '데비스 에파시'.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수문장이었다. 대단한 능력이었다. 포효하며 달려드는 브라질의 골 여럿을 막아내는 그의 행동에 기품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브라질을 1대 0으로 이기고도 16강 진출을 실패한 카메룬이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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