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석을 다졌다.
다시 또 한 번 우리 축구는 16강 진출 목표를 달성하였다. 대한민국 축구의 초석을 다졌다. 애당초 지어놓은 한계에 다다랐으므로 성공이라 하겠다. 충분하다.
우리 축구가 16강에 오르고 브라질과의 결전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이미 각오했다. 신의 특별한 섭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들 별 효과가 없을 것을 미리 짐작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 축구를 아는 모든 이들은 그렇게 예상했다. 인간 문어만 그렇게 점친 것이 아니었다.
그래,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그저 마음껏 운동장을 뛰어 놀기를 바랐다. 예선에서도 골 득실 차 등 겹겹의 변수를 계산한 후에야 16강에 안착할 수 있으리라고 했다. 나는 '혹시 알아?'라는 마무리로 호날두의 포르투칼과의 경기에 한점 승리를 기대했다. 희망이 이루어졌고 변수가 우리를 손잡았다. 이 소식 끝에 브라질과의 경기에도 나는 다시 또 한 번 '혹시 알아?'라는 문구를 일기 끝에 들어 앉혔다. 일말의 희망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너무 빤했다.
뻥뻥 차내기를 차라리 바랐다. 중거리 슛이건, 장거리 슛이건 이곳저곳에서 마구마구 차길 바랐다. 공을 찬다는 것은 연결이 있고 압박을 물리치고 사이사이 슝슝 슝슝 지나가고 넘어서야만 가능한 일이라지만 어쨌든, 좀 우리 선수들이 빵빵 빵빵 골문을 향해 공을 차 대기를 바랐다.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질 않았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의 몸놀림을 날개 한쪽도 선물 받지 못한 우리네가 어찌 흉내를 낼 수 있으랴.
다시 또 '초석을 다지다'로 월드컵을 마감하였다. 다지다는 어떤 상태를 누르거나 밟거나 쳐서 단단하게 여미고 굳건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초석. 초석은 지상에 주조되는 물상이 지면과 지하에 전달되는 힘을 인내하게 하는 바탕이다. 그러므로 '초석을 다지다'는 건물을 세울 때 튼튼한 건물을 세우자고 건물주와 건축주와 건축 설계자 등 관련자들 모두의 기원을 담은, 건강한 돌을 튼튼하게 올려놓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의 간절한 마음 모음이 든든하게 담겨서 놓인다.
주춧돌에도 귀한 주춧돌이 있다. '덤벙 주춧돌'이다. 자연 속에 있는 그대로를 데려온 것이다. 많은 걸음이 필요하다. 주춧돌로 사용되기 위한 조건을 다소곳이 갖추고 있는 것을 고르고 골라 가져와서 사용한다. 하늘로 치솟으려는 기둥을 받치는 귀한 일을 해야 하므로 돌은 반반하고 널찍한 위아래의 밑면이 필요하다. 위아래 두 밑면의 넓이는 합동에 가까울 만큼 비슷해야 하리라. 오른, 왼 두 손바닥을 합치면 '쩍'하고 달라붙을 만큼 면면이 닮아있어야 한다. 사람 세계에서는 오죽하랴. 더군다나 여러 사람이 한 팀 되어서 움직일 때는 오직 한마음일 때에 가능할 것이다.
돌파구가 필요할 때 자기 몸을 불사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신출귀몰한 선수들이어야 했다. 초석은, 각종 운동 경기에서의 주춧돌은 필연적으로, 운명적으로 하늘의 특별 조명을 선사 받은 몸이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안다. 내가 아무리 축구, 야구, 배구, 마라톤, 급기야 가끔 재미있어하며 보는 UFC를 뛴다 치자. 무대에 오르자마자 짓이겨질 육신이다. 평범한 선민 한 사람도 운동하려 하면 뼈와 근육이 하늘의 은혜를 받아 타고나야 할 텐데 세계 무대를 뛰는 국가대표들이야 오죽하랴. 잘 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중거리 슛 날릴 용기도 몸이 우선 타고나야만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은 적었지만 말이다. 결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경기 후 뉴스에 오르내리는 선수들의 이름이 많을 때 그 경기는 이긴 경기이다. 어제 경기는 인상 깊게 보았다며 들먹일 선수들이 없었다. 특히 팀 경기는 중위를 뛰는 선수들이 튼튼해야 한다. 어제 중위에서 건강하게 공격수를 받쳐주는 힘이 눈에 띄지 않았다. 1위와 20위 권에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중위에서 얼마나 압박 수비를 하느냐가 승을 누린다든지 재미있는 경기를 할 수 있는 힘이었을 텐데 압박 수비를 하는 곳이 그렇게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벤투 감독이 부르짖는 '빌드업 축구'의 근간이지 않은가. 손흥민과 황희찬의 몇 골로는 아쉬웠다. 물론 위 모든 사부작대는 글은 안방에서 자기 몸 사려가면서 시청한 소갈머리 없는 시청자의 중얼거림에 불과하다.
어쨌든 졌지만 잘 싸웠다. 경기가 끝나고 내가 잠들어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했다. 어젯밤 나의 수면은 국물용 마늘 다지듯이 잘잘 잘 잘 잘렸다. 내 평소 습관대로 새벽 한 시쯤 시작될 수면이었지만 일본 경기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어 첫잠을 설쳐야 했다. 일본 경기가 끝나고 나니 우리 경기까지 남은 시간이 어중간하여 또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둘째 잠부터 잘렸다. 다음 잠으로 쉬이 연결되지 못했다. 결국 조각조각 경기를 시청하였고 조각조각 수면이었다. 늘 그러는 내 수면이 난도질을 당한들 어떠냐. 오늘 경기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서 그곳에 간 우리 국민도 티켓을 사놓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잘했다. 잘 싸웠다. 교체 출전한 백승호의 골에 BBC 축구 해설가도 찬사를 보내지 않았는가. '엄청난 골'이라고 말이다. 다음 월드컵은 꼭 8강 무대 이상까지 시청할 수 있기를. 다음 월드컵에서는 한 달 넘은 날 이상의 날을 내 수면 시간이 조각나기를! 대한의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초석을 잘 다졌다. 각자 몸 잘 추슬러서 즐거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이제 우리 축구와의 계약이 끝났다는 벤투 감독에게도 좋은 일만 있기를! 열흘 남짓 일상의 번거로움을 수면 밑으로 가라앉혀두고 생을 즐길 수 있었다.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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