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인 바뀜 식을 거행하였다. 검은 십자가의~
밤을 푹 재웠다. 밤 속의 나도 최근 들어 가장 고른 호흡의 잠이었다. 낯선 꿈도 없었다. 블로그에 아침 일기를 올리고 자정에 도달하려면 꽤 먼, 아직 자정 전의 시각에 아날로그 일기를 완성하였다. 이불 속 음흉한 냄새를 탐닉한 육체는 보고자 했던 영화의 유혹을 거침없이 거부하였다. 그젯밤부터 보고 있던 영화는 <세상의 모든 아침> 이었다.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 음악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17세기 고전 악기 '비올라 다 감바'를 통한 음악들이 보는 이의 귀와 눈을 황홀하게 한다. 음악이 자연을 포장하는 힘이 대단하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스르르 눈이 감겼다. 오른쪽 엉덩이 곁이 고정석인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TV를 껐다. 잠 속 유영의 시작이었다. 아침 기상 알람이 울렸다. 6시 00분!
추석을 치르기 위해 내 일상에서 하루 하산해야 한다. 마음이 바쁘다. 되도록 일기를 거르고 싶지 않아 바쁘다. 어서 초고를 써 둬야 한다. 오후 2시 30분 출발이라고 선포해 왔다. 베란다 화분들을 몇 정리했더니 11시 5분이다. '또 한 사람'이 한양에서 환향하는 혈연들을 위해 우리 고장 특산물을 먹여야 한다고 부엌에서 바쁘다. 손위 혈연들이 하느님 다음의 자리에 위치한다. 나는 동행해 가서 부지런히 먹고 설거지를 하면 된다.
정신을 어젯밤으로 돌린다.
'개인사'를 넣어 조퇴했다. 올해 딱 두 번째이다. 한 시간 여 걸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비가 오는 날 사용하는, 길고 검은 우산을 펴고 걸었다. 봄볕에는 딸, 가을빛이 내리쬐는 들판에는 며느리를 내보낸다고 하지 않는가. 두 가지의 방법으로 가을빛을 차단했으나 후각이 맛보는 가을빛의 힘은 날카로왔다. 그러나 출발에서 머뭇거렸을 뿐 길을 걷기는 너무 쉬웠다. 최근 모차렐라 치즈의 힘으로 몸무게의 일의 자리가 '5'를 넘겨 '6'이 된 것을 떠올리면 걸음, 걸음마다 '5'로 회귀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신이 났던지. 내 곁을 지나는 사람, 사람들과 함께 소리 내어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약속 시간보다 30여 분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가게 주위의 길을 십분 여 걸었다. 15분은 권력이 제공한 운동기구 위에 앉아 자전거 타기를 하면서 권력의 힘을 밟았다.
약속 장소인 브런치 가게는 음식 주문 가능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끝이 우리들의 약속 시각이다. 몇 분 전에 들어가 앉아 드넓음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뷰가 가능한 테이블을 골라 앉았다. 유리창 너머 드넓게 펼쳐진 뷰 위에 크고 작은 바위들을 세워두고 활강하고 싶었다. 저 멀리 끝을 찍을 수 없는 곳을 찾아 날아가고 싶었다. 유유히 헤엄치고 싶었다. 혹은 내 좋아하는 딥 퍼플 빛깔의 꽃잎 가루들을 뿌리면서 천사들을 초대하여 만찬을 나누고 싶어졌다. 내 사랑하는 록 그룹인 딥 퍼플의 'Soldier of Fortune'을 들으면서 딥 퍼플 빗깔의 와인 한 방울을 혀 위에 올려놓고 놀고 싶었다.
후배가 입장하였다. 마중을 나갔다. 문 앞에서 뜨겁게 포옹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오는 무언의 느낌은 오랜만에 맛보는, 사람 사이에서 맛볼 수 있는 허브 향이었다. 조잘조잘 몇 입 떠들고 있는데 언니가 입장하였다. 삼총사의 재회였다. 아름다운 트라이앵글이었다. 되찾은 '평온'이었다. 내 집 밖에서, 혈연 밖에서 만난 최고의 편안이었다. 우리는 어제도 그제도, 그 그제도 계속해서 매일 만났던 사람들처럼 세 시간의 대화를 진행하였다.
대화의 내용은 각자 일상들이었다. 뭇 사람들이 만나면 나누는 대화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니체도 없었고 비트겐슈타인도 등장시키지 않았고 임윤찬의 '임'도 무대에 서지 않았고 물론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도 우리 대화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그저 매일 생활이었다. 같은 직종의 일을 하는 우리는 위를 찧고 짓이기고 부수고 엎고 뒤적이고, 그리고 동률의 타격을 사는 자들을 쓰다듬었다.
우리가 만난 곳은 브런치 가게였다. 밤 8시까지만 있을 수 있었다. 각각 집으로 가는 길을 가야 했다. 후배는 왼쪽이었고 언니와 나는 오른쪽, 나는 오른쪽 짧은 거리, 언니는 꽤 긴 거리를 가야 했다. 차를 가지고 온 후배를 먼저 보냈다. 검은 여자를 어두운 밤길에 홀로 내놓기가 불안하다고 언니는 또 내 길을 함께 걸은 후 대중교통으로 귀가하겠다고 했다. 보름으로 가는 달의 기운이 밤을 채우고 있었다. 운무에 가려진 달이 곧 방아를 찧기 위해 출연 예정인 토끼 한 쌍을 생각나게 했다. 큰 눈 내리던 어느 겨울 눈밭 위에서 본 달 속 내 토끼도 데리고 오게 했다.(이 내용은 눈 내리는 겨울에 한번 써 볼 예정이다.)
검은 십자가의 주인 바뀜 식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의도적으로 고딕 분위기를 조성하려 하지 않았으나 언니의 감탄사가 너무 절절하여 뜻하지 않게 성스러운 식이 되었다. 프렌치토스트며 파스타며 샐러드를 먹으면서 나누던 대화를 끊고 들어갔다. "언니, 전달식이 필요해요. 제 목 보이시나요?" "그래, 뭔 일이야, 무엇을 내게 전한다는 거야? 어, 목걸이를 했네. 그것도 십자가 목걸이? 뭔 일?" 좀처럼 어떤 장신구라도 몸에 부착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언니는 목걸이에, 그것도 십자가 목걸이라서 더욱 놀라워했다. 목걸이를 빼서 언니의 목에 걸어드렸다. "언니, 값비싼 것은 아니에요. 이 목걸이를 받은 순간 언니가 떠올랐어요. 꼭 언니에게 드리고 싶었어요.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전하고 싶었던 기억이 너무 오래전의 일이기도 해서요. 조금 어색합니다만, 갑작스럽기도 해서 놀라셨을 거예요. 꼭 언니의 목에 걸어드리고 싶었어요."
그토록 온몸과 온정신 다 바쳐가며 종교에 헌신하는 언니이지만 내게 자기 종교를 강요한 적이 없다. 아마 고집불통이어서 도저히 선교에 알맞지 못한 인간이라고, 혹은 백번,천 번 좋게 말해서 내가 건강한 자아 정체성을 수립하여 꼿꼿한 자기 생을 사는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어 언니는 자기 종교를 내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전자가 그 이유로 알맞다. 언니의 이 종교 패턴이 나는 참 좋다. 하여 무려 삼 년 만에 대면해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우리는 격의 없이 행복한 조잘거림을 할 수 있다.
언니의 목에서 검은 십자가는 내내 참 편한 자세로 서 있었다. 많은 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검은 십자가, 그의 생은 이제 마냥 달콤해질 것이다.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십자가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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