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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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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다

 

오늘 아침 하늘! 가을 기지개르 ㄹ켜다.

 

 

 

검은색 십자가 목걸이를 했다. 

 

 

검은색인데~ 십자가!

 

 

조금 늦었다. 6시 기상 알람을 해제한 후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아차 하고 눈을 뜨니 6시 30분이 다 되어간다. 어이쿠, 늦었구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시원(始原)을 오늘은 누리지 못하겠구나. 어젯밤 몽땅 먹은 모차렐라 치즈때문인지, 실내운동도 없이 잠자리에 직행한 것이 이유인지 아침에 잰 체중이 어제 아침에 비해 500그램이 더해진 수치다. 이 놈의 치즈! 어떻게 정을 뗄까. 그것도 뭉치 째 퍼부어서 먹는 습관에 젖어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나를 이끌어 줄 무덤덤하면서도 현명한 어린 왕자를 내 곁에 모셔와야 하는가. 바보 인간. '제어'와 '통제'를 통과하는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의지의 실천'이 지닌 무거움을 가볍게 치환시킬 수 있게 할 단자(terminal, 端子)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검은색 십자가 목걸이를 했다. 내 몸에 종교적인 상징을 부착한 것은 나의 인생사에서 처음이다. 내 스스로, 내 손에 의해 행한 것을 말한다. 가끔 이용하는 인터넷 보세 옷집에서 서비스로 준 것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서너 번 시도했지만 의상과 어울리지 않아 그만뒀다. 오늘은 시행했다. 왜? 이 목걸이를 하는 것에 집착하는가.

 

 

나는 거의 대부분의 옷을 십만 원의 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구매한다. 시간만 있다면 내가 만들어 입어도 충분할 듯한 옷들을 십만, 백만 단위의 가격을 붙여 의상을 구매하는 것을 보면 의아스럽다. 내 경제 수준으로 읊는 말이다. 진정 인간사 의상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들이여, 진정하라. 그저 그렇다는 것이니 '그러려니'로 응수해 달라.

 

 

오늘 들먹이는 인터넷 보셋집은 내가 원하는 가격 수준의 옷을 판매한다. 내가 그들 고객 대표라도 되는 듯, 색다른 디자인이 딱 내 취향이다. 색다르다. 검정색이 대부분이다. 단순하다. 민무늬이다. 최근 들어 늙어가는 내 나이와는 상당히 간격을 벌인 옷들을 내놓아 안타깝지만 어쨌든 눈요기를 위해 가끔 들어와 가성비 좋은 의상을 골라 구매하곤 한다. 그것도 어쩌다가 한 번씩. 이 소규모의 옷집에서 서비스까지 해주다니, 고마웠다. 그것도 검은 십자가라니! 내 좋지 않은 눈으로 확인한 바, 의상을 알맞게 골라 협업을 하게 한다면 상당히 고가로 느껴지게도 보일 것 같았다. 의례 십자가는 검은 색이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내 속마음을 이 가게는 어찌 또 파악을 했을고.

 

 

오늘 아침이던가, 어쨌든 구월의 하늘 1

 

 

일백 번을 봤을 영화 'THE MISSION'. 제레미 아이언스가 분한 가브리엘 신부님. 영화 속 신부님이 행한 인도주의. 온몸과 온 정신으로 사람들을 위해 사는 생. 그 인자한 눈빛, 당신의 모든 것을 더욱 빛나게 하는 제복, 신부님의 복장. 짐승이 된 인간 문명에 저항하는 십자가 행진을 나는 기억한다. 수녀님의 생을 잠시 잠깐 그려본 것은 가브리엘 신부님 때문이었다. 그의 종교적인 수행을 따라 살아보고 싶었다. 내 목에 검은 십자가를 한번쯤 걸고 싶었던 이유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하늘 2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데 언행이 일치된 생을 살아가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삶을 찾기란 참 힘들다. 내게는 그런 생을 살아내는 한 사람이 있다. 종교로 산다. 단지 종교로 인해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한 방편으로 종교의 길을 걷는다. 오늘 언니를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가게로 초대할 참이다. 아름다운 뷰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가게이다. 언니의 목에 검은 십자가를 옮길 예정이다. 십자가는 언니에게 가기 위해 내게 잠깐 들렀던 것이다. 사진 한 장만 박아 둬야지. 태풍 지나간 22년의 어느 날, 나, 검은 십자가를 걸고 하루를 살았노라고. 십자가 이끄는 길 나는 도무지 살아낼 능력이 없어 참 삶을 사는 사람에게 주인이 되게 할 참이네.

 

- 오후

 

그러나 언니는 내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살아 있냐?" 씩씩하게 내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에게 오늘은 수요일이었다네. 수요일, 교회가는 날이라고 하셨다. 십자가 목걸이가 진짜 주인을 찾아가는 날은 내일로 연기되었다. 

 

아마 분꽃이렸다. 출퇴근길에 보곤 하는~

 

 

아침이면 정해진 시각에, 가장 일찍 나를 만나기 위해 틀림없이 오는 나의 사람이 불을 켜고 실내에 들어서자 내가 건넨 말이다. "아침은 먹고 왔나요?" "예, 우유에 시리얼을 타서 먹었어요." "한참 뇌세포가 성장할 때인데 정식으로 아침을 먹지 그랬나요?" "이것도 정식이어요. 영양분이 듬뿍 담긴 시리얼을을 먹었어요." "그래,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요."

 

팔월 대보름으로 가는 구월 초저녁의 달

 

 

나의 사람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대뜸 또 내게 던져온 말이 있었네. "근데요. 오늘 아침에는 추웠어요. 일어났더니 너무 추워서 혼났어요." "으흠, 이런 날, 아직 많이 추운 것은 아니잖아요? 겨울은 아직 먹었잖아요. 그리고 한낮에는 여전히 덥기도 하고요. '서늘하다'가 맞겠어요." "아하, 그래요, 서늘하다!" 참 좋은 날, 멋진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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