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도 함께 나와 함께 나이 들더라!
머뭇거렸다. 갈까, 말까. 세상이 '코로나19'의 득세와 멀어졌다. 분명 가긴 가야 하는데 지난 2년의 명절들이 떠올랐다. 혼자 보냈던, 그 황홀했던 시간이 떠올라 올해도 어떻게 좀 빠져볼까 싶었다. 코로나 절정의 시절에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손님. 손님에 방점을 찍고 다음 문장으로 향한다. 어느 하루 영화 다섯 편을 보고 나는 내 생을 감사했다. 지난해 추석 아님 설날이었을 것이다. 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어떤 밤은 눈을 감지 않았다. 불면을 내 영혼에 일부러 심었던 날들. 사춘기 시절 읽던 책을 마저 읽고자 농도 짙은 커피로 어둠을 곁에 붙잡았던 그 날들처럼 지난 이태 명절들이 호화스러웠다.
떡 줄 사람 표정 좀 볼거나? 떡 줄 사람? 어? 이것은 아니다. 무슨 떡? 나는 굳이 떡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가 내게 떡을 줄 필요도 없다. 내가 내 떡 만들어 먹으면 되지, 뭘! 그럴 일이 아니다 싶어 곰곰 생각해 본다. 사람살이에, 더군다나 두 사람 이상이라는 굴레를 지닌 '공동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습관'이다. 일단 김칫국은 좀 마셔보자 생각하였다. 견고하였다. 나를 향한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아침 녘 화분 몇을 쓰다듬고 있는데 추석 전야에 형님들에게 대접할 지역 특산물 대접 잔치에만 온 정신이 가 있다, 또 한 사람은. 나와의 동행 여부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담 으레 동행해야 한다. 습관!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서른, 마흔 버릇도 여든 간다. 쉰 버릇과 예순, 일흔 버릇도 세살 버릇으로 쌓아 올려진 것이니까.
카톡이 왔다. 손아래 동서였다. 이번 추석에는 내려갈 수 없어
요. 시험 준비 중이란다. 엥? 무슨 시험? 그 나이에? 와, 사람이 굉장하구나. 자기 뿐만 아니라 같은 직종의 여러 사람이 함께 준비 중이란다. 어려운 계산이 필수 요소로 들어가 있다는 시험, 구월 한 달을 죽어라고 공부해도 될까 말까 한단다. 자기 직종에서는 경제적인 짐이 되는 어느 한 면을 채우지 못한 것을 그 시험 통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료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단다. 돈많은 동서에 경제면의 제도적인 보충이 필요하다니. 와! 굉장한 대한민국!
'나도 가지 않을래'를 읊었다. 머리도 감고 외출복도 입고 1박 2일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음에도 딱 한 마디 던졌다. 아무 말이 없더니 현관으로 홱 방향 전환을 하던 순간 툭, 얼굴만 나를 향하더니 던진 문장이었다. '가지?' 따라나섰다. 나는 이미 가고 있었다. 우리 지방 특산 음식물을 가지고 가 형제들을 위한 만찬을 베풀어야 하므로 '또 한 사람'은 마음이 바빴다. 나는 그만 올릴 준비를 모두 마친 블로그에 글 올리기를 깜빡 잊고 컴퓨터도 끄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코로나19로 이태를 쉰 추석 환향은 여전히 코로나19 분위기를 여전히 풍기고 있는 듯싶었다. 명절의 소란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형제들도 모두 환향하지 않았다. 공부를 이유로 내려오지 못한 동서는 소 갈비찜에 돼지 갈비찜에 전 여러 개를 붙여 보내왔다. 이웃에 사시는 집안 어르신은 생선찜이며 열 가지는 넘을 듯한 나물을 무쳐 세트로 놓고 가셨다. 우리가 가져간 지역 특산물도 한 끼 넉넉하게 준비해갔다. 식사며 술안주까지 일주일도 무난할 것 같았다. 먹을거리가 넘쳐났다. 나는 부지런히 먹고 부지런히 설거지하면 되었다. 어젯밤 자정 지난 시각에야 끝난 잔치의 뒤 처리를 말끔하게 하고 잤더니 추석 아침은 남자들끼리 먹고 치웠다. 나의 '또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점심을 차리던 참이었다. "들어가 있어. 손끝 까딱도 하지 않게 할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오늘 줄곧 드는 생각이 있다. 이곳저곳 떠나고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것을 올 추석에는 생색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 가던 날의 우리 아파트 주자장에도 그다지 오고 감이 확연히 느껴지지 않았고 내려간 그곳에서도 명절을 쇠기 위한 분주함을 몸으로 느낄 수 없었다. 거리도 한산하고 사람들도 몇 보이지 않았다. 고성방가도 없었고 자연 속 흐름도 잔잔했다. 나는 차려진 밥상 위에 얹어진 수저를 들고 열심히 먹을 따름이었다. 어쩐 일인지 어젯밤에는 보름달도 확인할 수 없었다. 어젯밤 보름달은 제 얼굴을 사람들에게 선보였을까.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챙겨왔다. 앞으로 3일은 줄곧 나물 비빔밥을 해 먹어야 한다. 이틀은 냉동실에 넣은 전을 해동시켜 데워 먹고 또 이틀은 냉동실에서 생선찜을 꺼내 먹을 것. 설거지만 하면 된다. 우리집 음식만 푸짐한 추석이다. 추석도 쇠는 자의 나이에 맞춰 함께 늙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흐름이 변한 탓일까. 코로나19 이전의 명절이 한 시대의 풍습으로 저무는 것일까. 별스러워야 할, 명절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 이곳저곳, 이것저것이 모두 몽땅 미지근하다. 영 재미가 없다.
내일, 24시간 근무에 들어간다는 대한민국 군인 '내사랑'에게도 보름달의 기운 가득 차기를!
'22. 내사람들'도 보름달을 향해 드린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나도, 건강하게 지내자.
모든 이들에게 추석 만월의 풍요가 함께 하기를!
노트북도 챙기지 않은 상태로 다녀왔다. 어젯밤 나는 머리로 어제 것 블로그 글을 올렸고 오늘 올릴 블로그 글의 초안을 열심히 썼다. 어제 글을 오늘 오후에야 올렸다. '불후의 명곡 임재범편 2'의 전 회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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