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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헤어드라이어로 옷을 말려 입고 출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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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드라이어로 옷을 말려 입고 출근하였다.

 

 

 

아침 출근길, 떠오른 태양!

 

아침 7시에 시각을 맞춰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터에서 할 일이다. 여섯 시 기상 알람 울림과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눈 뜸과 동시에 정신을 바짝 깨운 것도 이 일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꼭'이라는 낱말이 전제된 할 일이었다. 내가 미리 어떤 일을 해 둬야 다음 사람들이 그 결과를 가지고 다음 일 처리를 할 것이었다.

 

옷걸이대에 쭉 늘어선 검정 옷들이 우주 생명체들을 위한 일에 몸 바치고자 생을 사는 세계적인 기업 CEO들의 옷장을 보는 듯하다. 장례식장에서 입어야 할 의상들을 줄줄이 걸어놓은 것도 같다. 상하 길이를 꿋꿋한 직선으로 보여주는 의상 중 아무 것이나 잡히는 대로 입고 출근하는 방식이 내 보통의 아침 의상이다. 출근 준비는 20분에서 30분 정도이면 충분하다 싶었는데 오늘은 특별한 아침이 되었다. 특별한 의상 코디가 필요했다.

 

아침이면 별 생각 없이, 날씨만 조금 고려하여 일터에서 필요한 몸놀림 정도와 작업의 종류를 떠올려서 입는다. 물론 전제 조건이 있는데 이 조건들은 이미  갖추어진 상태이다. 의상을 구매할 때 이를 갖춘 것들이 벌써 내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덧붙인 몇 특성을 골라 옷값을 내놓는다. 내 의상 선택의 큰 가지 몇을 들먹여 본다.

 

몸을 일백에서 5 정도만 압박한다 싶어도 제아무리 고급지며 가성비가 좋을지라도 바로 탈락이다. 이때 몸은 배꼽 아래에서 출발한 하체를 말한다. 할랑할랑한 옷 안에서 내 하체가 자유롭게 움직여야 한다. 다음으로는 내 상냥하면서도 유난히 감성을 추구하는 내  신체의 촉감이 일체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을 것, 그리고 저울 위에 올리면 바늘의 움직임이 거의 발생하지 않을 만큼 가벼울 것, 걷기에 불편함이 없을 것, 딱 '나'의 신체 유형을 고려한 옷이면 된다. 아, 최근 한 가지를 덧붙였다. '내 나이가 어때요'를 기꺼이 가능하게 할 수 있되 내 나이보다 십 년 아래까지 소화 시킬 수 있으면 된다. 다시 말하면 배꼽 아래의 하체를 두를 옷들을 말한다. 상의는 내 몸에 맞으면서 무채색이면서 되도록 검은색이면 된다.

 

오호, 진짜로, 또 하나가 있다. 이는 내 성장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즉 나 스스로 하는 의상 코디로 외출복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생성된 규칙이다. 내 주체적인 의생활의 출발과 궤를 같이한다. 블랙, 검정일 것. 거무튀튀하다,  거무스레하다, 거무충충하다, 거무축축하다, 거무끄름하다 등 일체 곁가지가 불필요하다. 순수 검은색을 말한다. 그리고 민무늬일 것. 디자인이 개성적일 것, 외형의 선이 단조로울 것. 쓰고 보니 간단한 것이 결코 아니구나. 내 생이 결코 단순하지 못하고 쉬운 진행의 일상은 아니구나. 어쨌든~.

 

어제 기획했던 만남의 불발이 오늘 또 특별히 의상을 코디해야 하는 이유였다. 검은 십자가를 내 몸에 부착할 날을 어제 하루로 끝내지 못했다. 어제 아침 세웠던 계획은 빗나갔다. 검은 십자가의 주인 자리를 양도하려던 계획이 오늘로 연기되었다. 검은 십자가의 새 주인이자 진짜 주인이 될 '아는 언니, 선배 언니'는 평소 성경 읽기의 생활화로 살고 있다. 평일 퇴근하면 교회 청소를 하러 간다. 수요일과 일요일 등 함께 모여 기도하는 날에는 피아노 반주를 하는데 어찌 시간을 마련하여 꼭 사전 연습을 한다. 내 언니, 내 아는 언니, 내 선배 언니, 내 사람답게 사는 언니와의 약속이 오늘로 하루 늘어졌다. 우리 둘에 참 젊고 예쁜, 일처리는 무려 오십 넘은 사람인 듯 매끄럽게 해내는 후배를 포함한 세 사람의 만남이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이다. 얼마나 기대되는 시간이며 얼마나 기다리는 시간이겠는가. 

 

물로만 하는 아침 세수를 하면서야 떠오른 이 생각이 마음을 급하게 했다. 뭘 입지? 어제 맞춰 입은 의상은 베란다의 신식 철근 바지랑대에 걸려 있었다. 그것도 두고두고 입어야 할 외출복이므로 손빨래를 한 것이다. 건조도 하지 않았다. 도무지 어제 의상을 대신할 것을 찾지 못해 오늘 다시 입기로 작정하였다. 베란다 바지랑대를 내다 보니 다크 네이비의 '다크' 부분이 얼룩이다. 덜 마른 것이다. 

 

상의는 여러 번 시도 끝에 고른 옷이었다. 어제 아침 갑자기 떠오른 언니의 모습이 검은 십자가를 떠올리게 했고 사실 어제 코디는 단 몇 분으로 결정되었다. 날씨가 도와주었다. 서늘한 기운이 반 팔 상의 중에서도 좀 더 덥게 느껴지던 것을 고르게 했다. 먼셀의 색상환에 의하면 'PB 남색'의 요가복이다. 대폭 할인 시기에 맞춰 구매한 6,500원짜리였다. 다른 여름옷보다 팔의 길이가 가장 짧았다. 겉보기에는 더위를 견뎌내기에 최적의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겉보기로 드러낸 값을 하지 못했다. 여름 내내 단 한 번도 내 맨살과 접촉한 적이 없었다. 주인의 호명을 받지 못한 채 서늘한 우주 기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옷 무리 가까이에 걸어뒀다. 

 

내그림. 늙었지만 여전히 가브리엘 신부인 제레미 아이언스! 아마 드로잉 작품으로 올렸으리라.

 

 

좀 더 세분하여 들어가면 이 상의는 감색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색상은 '짙은 감(紺)색'! '다크 네이비(Dark navy)'이다. 새신랑이 결혼식 예복으로 가장 선호한다는, 이지적이면서, 세속과 신의 경지를 잇는 선 중 4분의 3정도의 점에 해당하는 느낌을 싣고 있는 색. 한번 보는 현세인이면 누구든 꼭 살아보고 싶은,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의 바다색. 다크 네이비에 검정 멜빵 긴 치마의 조합, 그곳에 비집고 들어간 검은 십자가는 내 좋아하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가브리엘 신부가 만들어 낸, 자애와 겸손과 최선과 겸허, 엄숙과 진중함과 고결함과 숭고함까지도 제법 드러낼 수 있게 했다. 계획한 출근 시각이 늦어져 경보 수준의 걸음을 택해야 했지만 고귀함이 묻어난 걸음걸이로 길을 수놓고자 노력했다. 고결한 출근길이었다.

(여기까지 한 시간 걸림, 그냥 마구 씀, 수정은 밤에, 올리기 전에 할 예정임. 오늘은 이 원고의 분량으로 글을 쓰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재어 볼 것임)

 

(여기서부터 오후, 내 일터에서 해야 할 1차적인, 전문적인 일이 끝난 후 휴식 시간에)

직장 생활 중 거의 사용하지 않은 '조퇴'를 내볼까 한다. 약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서 내 지금껏 부려온 나를 위한 고집을 길 위에 뿌리고 버릴 참이다. 미리 가서 십자가의 주인 바뀜 식도 연습해 보려 한다. 브런치 한 상을 앞에 두고 인간 예수님이 주신 식사라 이름하고 오병이어 실천을 예약해 둘 참이다. 오늘 저녁 분명 맛있게 먹을 음식으로 인해 축적된 내 안의 힘을 추석 후 고루, 내 사람들에게 풍성하고 멋지게 선사하려고 한다. 

 

글이, 애당초 가려던 길에서 너무 많이 멀어져 있다. 오늘 아침 출근 시각은 여섯 시 삼십 분이었어야 하는데 십분 연기되어 사십 분에 할 수 있었다. 검은 십자가의 출연을 받아들일 의상 코디가 어제 옷차림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옷장에 서 있는 옷들을 뒤져보고서야 확인했다. 어제 입었던 옷들은 안방 쪽 베란다 앞 은빛 신식 바지랑대에 걸려 있었다. 다크 네이비 상의가 덜 말라 있었다. 아직 머물러 있는, 습기 칙칙한 얼룩 어둠의 다크 네이비가 고르게 자기 색을 드러내게 해야 했다. 통 사용하지 않는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여 말려 입었다. 

 

< 오늘 아침 하늘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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