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바보!
요통을 이유로 몸놀림을 조심하고 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유튜브 강의를 듣고 있다. 책을 읽으면 좋으련만. 왜 점차 종이책 독서를 등한시하고 있는지. 이는 여러 가지로 문제이다.
오늘 들은 첫 강의는 경제 강의였다. 며칠 전부터 자꾸 유튜브 상위 항목에 얼굴을 내밀어 그렇잖아도 한번 보려던 참이었다. 모 대학 모 교수의 현 경제 현황에 대한 강의였다. 몇 백만이 이 강의를 봤다고 띄워 놓으니 요즘 경제 쪽에 조금씩 관심을 내비치는 것이 안쓰러워 알고리즘은 내게도 이를 내비치게 했나 보다. 굉장한 강의인가 싶기도 했다. 강의하시는 모 교수님은 미혼으로 보였다. 상당히 젊은 층이라 여겨졌다. 저 연배에 드높은 수준의 경제학자구나 생각하니 강의를 듣기도 전에 일렁이는 존경심이 뇌 한편을 출렁였다. 일단 한번 보자.
경제이므로, 내게는 난중지난(難中之難) 경제이므로 제 속도로 영상을 돌리기로 했다. 시작부터 보통 영상과는 판이하게 구별되었다. 마치 '오픈을 멋지게 하는 영화 목록 열'을 찾듯이 '시작이 참 인상적인 경제 강의 목록 열'을 챙긴다면 적어도 2, 3위 안에는 들 정도의 색다른 시작이었다. 진행자까지 확 당겨 이끌어가는 강의였다. 강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젊은 경제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등장하는 경제 분야의 강사 대부분의 상용어인 '몇 개월 전 제가 인플레이션이 틀림없이 온다고 했습니다'라는 멘트도 분명 있었을 듯싶다. 신경 곤두세워 듣기 시작한 것이 중간부터라서 이 문장을 이야기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다. 비록 말하지 않았더라도 이 강사, 이 문장을 몇 개월 전에 야무지게 주장했으리라 싶다. '모든 길은 내게로 통한다'는 문장이 떠오를 만큼 확고한 신념에 자기 생각은 정확한 정답이라는 것을 용감하게 강조하였다. 방향을 틀어 생각하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끔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 강의 내용을 요약하곤 한다. 역사나 세계사, 문학, 철학, 심리학 등 소위 인문학 분야 강의는 요약하고 싶은 충동이 자주 인다. '여태 이런 내용을 알지 못했다니', '아, 유튜브 있어 이런 중요한 내용을 이렇게 쉽게 듣는구나', '이참에 어느 한 분야 택해 본격적인 공부를 좀 해 볼까' 하는 여러 생각이 들 만큼 곳곳에서 참 좋은 강의를 듣는다. 돈 풍선(? 전문 용어가 있는데~)이라도 좀 쏠까 싶을 정도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어쩌다가 듣는 경제 분야 강의는 그렇지 못하다. 단 한 번도 '대단한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본 적이 없다. 오늘 들었던 어느 젊은 대학 교수의 확 부러진 정확도를 과시하는 강의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사에 관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로 인해 경제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력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순수 경제 쪽으로 각을 틀면 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일까. 대체 저 경제학자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무지의 수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강의를 들었다. 젊은 경제학자는 '내 강의를 쉽게 또 듣기는 어려울 것이오'의 뜻이 담긴 마지막 멘트로 강의를 끝맺었다. 잘 참고 오늘은 강의 중간에서 '댓글'을 찾지 않았다. 신기했다. 대부분의 댓글들은 이 젊은 교수의 강의에 탄복했다. '이제야 교수님을 만나다니오', '대단하십니다' , '현재 상황을 제대로 요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거의 모든 댓글들이 칭찬과 감탄 일색이었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만 바보이구나. 나만 멍청한가? 이 나이 되도록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아무 곳에도 쓸모없는 몇 문장을 드세우고 나니 진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멋진 경제인'인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꾸준히, 그리고 여전히. 내 능력 안에서 소비하고 내 능력 안에서 재활용도 하고 내 소득 범위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 푼 두 푼 모아 내 좋아하는 것도 사서 모으고 한 푼 두 푼 모아 기부도 좀 하고, 한 푼 두 푼 모아 더 크고 넓게 살아가려고 열심이다.
공부도 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 사서 읽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일 때가 있었다. 아하, 그런데 내 수많은 도서 목록에는 경제 분야의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그래, 그것이 문제였구나. 일언반구. 억울함을 드러낼 필요도 없겠다. 나는 경제 쪽의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경제 강의에도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겠다. 사람들은 어찌 저리 영리할까. 어쩌자고 나 빼놓고는 모두 다 충분히 이해한 상태인 것인가. 저들은 모두 경제 특수교육을 받았을까. 이런 유의 질문을 할 자격도 없다.
내 안쓰러운 허리를 달랠 겸 며칠 더 드러누워 경제 강의를 몇 들어볼 생각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 경향 정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내 바라는 바는 아마 지극히 어리석은 문장을 듣고 싶었을 게다. 누구 경제 전문가라고 나와서 내게 이렇게 말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당신 이 주식 사시오. 크게 돈을 벌 것이오.' 경제 바보의 전형이다. 요행을 노려 쏘는 화살이 누군가의 계시를 받아 촤악 과녁 한가운데에 꽂히길 바라는 어리석음을 살았던 것이다. 나의 경제는 내 육신에 담고 있는 창자처럼 구불구불 휘어진 길일 것임은 당연했다. 한번 벗어나 볼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현대인으로 살아보기 위해서.
오늘 본 영화는 '전쟁 그리고 사랑'이었다. 아마 덴마크 영화일 것이다.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보고 있을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은 열 장면 정도 되어 깨달았다. 좋은 영화라서 계속 봤다. 참, 그림도 한 장 그렸구나. 오랜만에. 영화 '환상의 빛' 여주, 누구던가. '유미코'던가. 그녀를 그렸다. 뜻대로 그려지지 않아 무지 힘들었다. 정밀묘사 쪽인데도 80퍼 정도의 닮은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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