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리코더 연주를 듣는 여름 한낮
며칠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유유자적을 호흡한다. 느지막하게 시작한 하루로 나 자신을 질타했던 날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늘도 느기적느기적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 첫눈을 뜬 시각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새벽 5시 30여 분. 화장실을 다녀오고 이를 닦으려니 했던 것이 방향을 튼 것은 화장실 앞 아이 방 침대 때문이었다. 어제 잠깐 요통의 근본적인 문제가 혹 잠자리 때문이 아닌가 싶어 침대들에 누워본 것이다. 아이 방 침대에서 무려 삼십 분을 평화로웠다. 오늘 아침의 시작이 늦은 이유이다.
요통의 이유를 역추적하느라 일요일 베란다 화분 정리를 돌아보니 가끔 하던 방식 그대로였다. 계단식 진열대를 몇 분 들고 있기는 했지만 크게 무리한 것은 아니다 싶었다. 최근 내 생활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봤다. 화단 정리가 아니라면 뭘까. 요통은 오래도록 앉아서 일하는 것이 문제라는데 일을 할 때면 나는 대부분 선 채 활동을 한다. 늘 서 있는 것도 문제일까. 그렇다면 자고로 인간사 모든 일은 '적정선'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살았나 보다. 탈이 나는 것은 '적당히'를 겁 없이 지나친 후 오감의 본능이 저지르는 즐거움에 푹 빠질 때 발생한다고 하지 않은가.
최근 들어 오감이 주는 즐거움에 무작정 빠졌던 것이 무엇인가. 제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옛 같지 못한 내장들을 위해 먹고 싶은 욕구를 땅에 묻은 지 4, 5년은 됐다. 요즈음 야식을 먹는 이들이 신기할 정도이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허벅지 통증으로 책임감 없는 의사를 만났다가 차라리 운동이다 싶어 출퇴근을 걷기로 바꿨다. 삼겹살 1킬로를 우그적 우그적 한 번에 씹어먹으면서 내 체질은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것을 자랑하던 내 미식의 허황도 퇴출하였다. 음식 탐욕이야말로 정신 수양이 덜 된 것이라는 어떤 이의 일침에 다소곳이 생활하기를 애써 실천하고 있다. 조용히! 조용히 살기를 생활화한 것이 꽤 되었다. 욕심을 버렸다지만 자식에 대한 욕심을 여전히 무한정으로 담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 해서 하나 있는 자식도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같이 사는 사람이야 워낙 120살 건강을 예정으로 제 몸 제 스스로 잘 챙기고 있으니 털끝만큼도 내 살핌이 필요하지 않다. 과연 요통을 발생시킨, 적정선을 넘어선 내 탐욕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내 생의 부푼 풍선 놀음이 여전히 위태한가.
타고난 능력도 없으며 별스러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매달리는 것들이 떠오른다. 적당히 하자. 화초 재배도 그렇다. 어이쿠. 이번 주 일요일에는 식물들 모두에게 물을 주는 날이다. 호스도 망가졌는데 무거운 물뿌리개를 들고 어찌 물 주기를 한단 말이냐. 이제는 멈춰라. 적당히 해라. 줄 하나 더 가진 채 활쏘기에 임하라는 말도 있다. 현재 딱 맞게 마련한 줄조차도 들 힘이 부족하다. 어서 화분 수도 줄여라. 희망하던 대로 관엽식물만 두고 모두 없애라(아, 식물들의 통곡 소리에 심장이 들썩거린다.). 블로그에 하루도 빠짐없이 글 올리기를 하겠다는 루틴이라는 것도 제발 멈춰라. 어제 쓴 글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읽어야 하는 블로그 친구들의 입장을 고려하거라. 제발 그 어중간한 글 좀 그만 올리라는 단체 시위라도 해 오면 어떻게 할 셈인가. 부디 미니멀리즘 외치면서 깔끔 타령 좀 그만해라. 늘 버린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붙잡고 있는 책들. 용어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 몇 년이냐.
끝도 없이 떠오르는 내 생의 부산스러움이여. 나 스스로 안쓰러움이 민망하여 들춰내기를 멈췄다. 가만 허리 돌리기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허리 아픔이 문제이다. 허리잖아, 정신이 아니잖아. 정신은 말짱하지 않은가. 육신의 불협화음을 치료하자는 것이 아닌가. 다시, 가만, 최근 몸놀림들을 떠올리거라. 그래, 그것일 수도 있다. 그것! 그렇게도 밤새( 비록 서너 시간이나 네댓 시간에 불과할지라도) 몸 가누기가 불편한 잠자리인데 오죽하겠는가. '베개 높이 베고 자기'가 문제일 수도 있다. 역류성 식도염을 치료한답시고(4주일 약 복용 후 약에 의존할 것이 아니다 싶어서) 층층이 베개를 쌓아서 수면에 드는 것. 내 잠자는 모습을 본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이렇게 외칠 것이다. '참 희한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밤이구려!'
늘 해 오던 방법이다. 베개 높이 베고 자는 것이 허리 아픔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없다. 복합적일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이제 영육의 조화가 미끄러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커진 머리, 축적된 연륜이랍시고 뻣뻣한 자세로 도도해져 가는 내 영혼. 동행은 풍성한 종 모양의 도표로 그려지는 정상분포 곡선, 인류가 지닌 운명 그대로를 그려내가고 있다. 내 육신은. 영육의 합이 일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오차가 커질수록 점점 더 내 생은 비뚤비뚤, 구불구불, 복잡하게 꼬일 것이다. 영육의 평온한 동행에 원만한 합의를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어서. 열심히 복근 키우기!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리코더 연주가 서성거리는 내 영혼을 붙잡는다. 한 아이 있네. 여름 무더위를 떨쳐보려네. 무심코 뒤져보는 책장 위에서 데구루루 동그라미 소리로 떨어지는 리코더가 있네. 무더위에 바깥 나기는 아니다 싶다는 엄마의 말씀을 받아들이자. 리코더를 입에 갖다 댄다. 함께 하는 양손 손가락들과 두 입술과 혀의 움직임이 무더위를 뚫고 나아가네. 아직 온전한 일상을 익힐 생을 살지 못해 리코더 첫 배움 이후 서툰 입놀림과 박자에 떠밀린 손가락 운동. 저 건너 공사 완성을 위해 쉼 없이 움직이는 공사판 아저씨의 죽죽 흐르는 땀의 소리와 합주를 하네. 서툰 리코더와 '닥닥 다그닥 다그닥' 규칙적인 리듬의 반복으로 무엇인가 연결하는 공사판 아저씨의 두드림. 내 이명 위에 펼치는 한여름의 랑데부! 곡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까.
중앙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국가 이름 속에 담긴 뜻을 공부했다. 영화 '환상의 빛'도 다시 봤다(분명 내 옛날 기록에는 봤다는데, 꼭 처음 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그 시대의 도리를 꼭 살아야 하는가. 아, 그리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에서 그만 고꾸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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