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정월 초하룻날의 아침을 걸었다.
출근 시각에 맞춰 눈을 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휴일 아침 출근일 기상 시간에 일어났다. 어제 이 집에 사는 또 한 사람이 쪄 놓은 고구마를 먹었다. 몸이 이에 반응했다. 고구마는 나의 몸이 역류성 식도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이미 나의 몸 반응으로 확인한 바 있는데도 설마 하는 심정으로 섭취한 꼬마 고구마가 둘이었다. 예전에 먹던 양에 비하면 10분의 1밖에 되지 않을 텐데 여지없이 선포한다. 당신은 역류성 식도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약한가를 나 스스로 증명했다. 환우들의 카페에서도 고구마는 먹어서는 안 될 음식물이라는 것을 여러 번 읽었다. 하룻밤 새 6 혹은 7, 아니 8 킬로그램이었을 수도 있는 몸무게가 빠졌던 날도 먹었던 주요 음식물 중 하나가 이 고구마였는데 나는 또 일을 저질렀다. 미니고구마 둘을 귀염성 있는 이빨 운동으로 배 속에 집어넣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새해 첫날 눈을 뜨면서 시작된 나의 철학 주제는 '대체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어야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이다. 대체 얼마나 겪어야만 할까. 아직 덜 아팠구나. 곁에 어른들이 계셨다면 분명 던지셨을 문장이다. 이 나이에도 이를 되풀이하고 있다니 나는 정말 많이 부족하구나. 그러나 새해 첫날이다. 더 나아가 집착하면 한 해가 영 틀어질 것이니 여기서 멈추자. 크게 요란한 반응은 아니라는 것에 중점을 두자. 나는 참 여린 인간이라고, 좀 더 긍정적으로 판단하자. 안쓰러운 사람.
내장을 쫙쫙 비웠다. 비웠다는 것만으로는 너무 좋았다. 영혼이 활짝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각을 조금 넘어서 있었다. 휴일에 이렇게 빨리 이불속을 벗어난 것은 드물다. 가자. 걷자. 출근길 노선을 걷자. 입고 있던 실내용 옷에 낡았되 보온성은 내 코트 중 최고 그룹에 속한 것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정월 초하룻날치고는 제법 부드러운 날이었다. 겨울 기운을 만끽하면서 걷기에 매우 적당했다. 실제 온도와 체감 온도의 차가 거의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제 버릇에 무너져있는 한 사람이 안쓰러워 그러는 듯 사알살 마음 처진 이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듯했다.
여덟 시로 다가서는 시각이었다. 길 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두 바퀴를 걷는 동안 서너 사람을 봤을 것이다. 아침이 본 궤도로 들어선 지 한참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왜 기침을 하지 않는 것일까. 실내에서의 하루 시작은 이미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문을 열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집안 공기가 너무 좋은 것일까.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기쁨을 가족과 함께 만끽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느 세월에나 내 아이와 함께 새해 첫날을 맞이할까.
어쨌든 길의 처음과 끝이 보이는 범위 안에서 앞뒤 아무도 없이 정월 초하루의 길을 나 혼자 걷는 기분이 참 묘했다. 내일도 걸으리라, 모레도 걸으리라. 이번 겨울을 돌아다보고 들여다보니 아파트 둘레길을 아침마다 두세 바퀴씩 걷는 것만으로도 제법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미 얻은 적이 있다. 듣기로는 올겨울 추위는 최고점을 다녀온 듯하다고 했다. 매일 걷자. 오늘 아침처럼 쉬는 날도 빠짐없이 걷자. 몸 가벼워진 상태에서는 걷는 걸음에 의한 만족도가 한층 상승한다. 쉬는 날 이렇게 보낸 아침이 참 기쁘다. 더군다나 오늘은 정월 초하룻날이다.
여덟 시 삼십 분이 가까워지면서 뒷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내려오신 분들을 몇 만났다.
"그곳 일출은 오늘도 찬란하던가요?"
아이 어릴 적 두세 번 뒷산 새해 일출을 본 적이 있다. 휘황찬란했던 새해 첫날의 비상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뭉텅이로 모인 것이 나를 질리게 했다. 이후 나는 되도록 새해 첫날 아침 일출은 이불속에서 상상 속 형상으로 맞이했다. 끝없이 들어선 높은 건물들로 인해 제 모습을 또렷이 보여주지 못하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의 일출도 이미 온 세상으로 자기 모습을 확산시킨 후였다. 새해 첫날 아침, 빛의 세례를 받으면서 아침 운동을 끝냈다. 온몸과 영혼이 산뜻하다.
우리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자. 신규 사업을 하려는 분들은 야생에 사는 토끼를 잡는 꿈을 꾸라. 하고 싶은 일이 여러 가지거든 꿈속에서 토끼 여럿을 키우라. 공부에 매진하는 이들이여, 꿈속에서 토끼를 만나거든 맛난 먹이를 토끼에게 먹이라. 하는 일이 어서 풀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꿈속에서 토끼에게 물리라.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토끼를 꿈에서 만난다면 걱정거리가 순조롭게 풀리리라. 연애 혹은 임신을 계획하는 이들이여, 꿈속에서 사이가 좋은 두 마리의 토끼를 만나길. 예술가들이여, 꿈속에서 토끼가 새끼를 낳는 모습을 보라. 토끼와 관련된 길몽들이 참 많다.
나는 어떤 꿈을 꿀까.
도와주세요.
'임시저장' 글이 모두 날아가버렸어요. 어찌 해야 할까요. 백여 편에 가까운데요. 너무 슬퍼요. 이를 어찌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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