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 올 첫 번째 여정 중 하나인 건강검진을 치렀다. 2023년 1월 2일!
2년마다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 이것 참 애물단지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이것을 꼭 해야 하나 싶어 답답했다. 어쩌자고 국가 기관에서 하는 일이 이처럼 억지인가 생각되기도 했다. 연말 급작스레 치르게 되는 상황이면 황망하기까지 했다. 홀수와 짝수로 나뉘어 두 해에 한 번씩 치러야 하는 이것은 12월이 되면 다음과 같은 쪽지를 수시 보내왔다. 올해 해당이 되는 사람은 꼭 해야만 합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터 내 메시지가 이틀 간격으로 날아들었다. 골칫거리이고 앳가심이었다. 멀지도 않은 곳에 있는 종합병원에 가는 길이 왜 그리도 귀찮았을까. 너무도 머리 무겁고 싫었다. 나 한 사람이 벌금을 물고 끝나는 것이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병원은 질색이었다. 누구인들 그러지 아니하랴 만은.
덧붙여 진행되기까지 한다.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 번, 꼭 이 분야 건강검진은 하시오. 의무라는 것을 선포하는 안내장이 날아든 지 몇 년 됐다. 살만큼 살았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세포들이 생성되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켜내면서 살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힘없이 사그라드는 것을 보호하고 병든 것을 어서 찾아내어 살살 달래면서 살아야만 되는 연배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올해 정기검진을 해야 하는 해이다. 생일 끝자리가 홀수이다.
어제 점심을 먹은 후 곡기를 끊었다. 심지어 물도 참았다. 입안만 적시고 뱉어냈다. 좀 더 정확한 검사를 하고 싶었다. 의외의 결과를 맛보았다. 잠자리가 참 편했다. 내장을 비우니 이렇게 몸이 편하구나. 이를 실감하고 나니 아침을 거르는 간헐적 단식 방법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과 저녁 먹기가 아니라 아침과 점심을 먹는 것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물론 불면의 밤에 배가 차 있지 않으면 더 잠들기 어려울까 싶어 망설이던 차다. 어쨌든 어제 점심 한 끼 식사 후 음식을 끊었다가 오늘 아침에 눈을 뜰 때 몸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가능하다면 하루 한 끼도 참 괜찮다고 생각되었다. 최근 들어 만질 수 없었던 푹 꺼진 배, 그 아래 편히 밤을 쉰, 나의 내장들의 숙면이 느껴졌다. 사랑스러웠다. 징그러운가?
새해 1월 2일. 휴가다. 이 주일 전부터 세운 계획이다. 정초 건강검진부터 꼭 하리라. 문제가 있으면 재빨리 처리하고 별스럽지 않은 몸이라면 2년을 또 걱정 없이, 넋 놓고 지내고 싶었다. 사실 걱정되는 것이 있어서였다. 최근 들어 유독 몸이 좋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을 조정하는 관리사가 따로 있어 내 육신과는 별개로 감각이며 마음 상태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식사는 내가 내 손으로, 고이 든 수저에 의해 음식물들을 몸속으로 들쑤셔 넣었는데 어떤 별개의 존개가 따로 있어 내가 느껴야 할 감각을 조절하고 있지 않은가 싶었다. 식사가 끝나면 늘, 내 안에 영과 육이 별개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인생을 살고 또 다른 내가 나의 영혼을 끌고 가는, 또 하나의 생이 존재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몸은 하나인데 두 갈래의 길을 사는 신인류의 삶!
분명 내 딴에는 알맞게 했던 식사인데 예상하지 않았던 미감이 혀 위에 남아 떠돈다. 먹어서는 안 될 음식물을 애써 피하면서 섭취하였는데 뜻밖의 반응이 별스럽게 도드라진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식사 후 몸의 혹은 마음의 반응으로 정신까지 고달팠다. 어떤 날은 죄고 적정 상태의 최정예 부대가 내 안에 들어서 있는 기분인가 하면 다음 끼니에서는 금세 어떤 존재가 내 안에 들어와서 부린 변덕이 활활 타올랐다. 때로 배 속이며 입 안에며 뇌 속에 미묘한 감을 누군가 배태시켰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의 기분은 고통이었다.
분명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었다. 역류성식도염을 넘어 위라던지, 크고 작은 장이라던지 아님 위와 창자의 중간다리 십이지장이라던지 뭔가 심사 뒤틀린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보다 더 힘든 것은 어떤 날은 틀림없는 정상궤도를 달리고 또 어떤 날은 그럭저럭, 또 어떤 날은 정도가 심해 입 안에 괴물이 사는 느낌이었다. 그런가 하면 애써 평온은 되찾으려는 내 온순함이 우리 부모며 형제에게 속병은 없었으니 나도 괜찮으리라는 확인에 딱 들어맞을 정도로 기분이 말끔한 날도 있었다. 오리무중이었다. 이게 뭐란 말인가, 대체.
어쨌든 결론에 도달하고 싶었다. 결판, 아니 승부를 짓고 싶었다. 내가 이기건 내 안에 어떤 녀석이 이기건, 나와 녀석 중 어느 한 존재에 승리를 밀어주기로 하여 결론을 짓고 싶었다. 끝장을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사실은 위내시경을 하기 위해 침대에 가는 몸을 눕히는 순간까지 나는 달달달달 떨었다. 정말이면 어떡하지? 내사랑이 떠올랐다. 어떡한담.
줄곧 하던 대로 일반 내시경을 했다. 건사해 주시는 주인님의 명령에 기계식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었다. 누우시오. 왼쪽으로 누우시오. 일반이라고 하셨지요. 첫 번째 신호로 입 안에 고인 것을 크게 삼키시라고 드릴 것입니다. 그럼 크게 삼키십시오. 그리고는 줄곧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으시오. 그리고 꾹 참으십시오. 시작합니다. 괜찮지요? 자 시작합니다. 풋풋하지만, 아직 여리고 무른 낯빛의 젊은 의사가 위내시경 준비를 점검하면서 나를 단속했다.
앳된 얼굴의 간호사에게 청했다. 손을 좀 잡아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천리만리 내 앞에 놓인 길이 너무 길어 보였다. 목구멍 마취만으로 진행되는 위내시경은 내 두 눈으로 또록또록 내 내장으로 가는 길의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것이 내 것이구나. 2년 만에 다시 보는구나. 옛길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만나는구나. 살아있어 다시 확인하는구나. 내 소중한 것들이구나. 내 안쓰러운 조직들이구나. 내가 곱게 다듬어 동행해야 할 또 다른 나이구나. 내 생명의 길이로구나. 부디 안녕들 하거라. 고맙다.
자, 십이지장으로 갑니다. 깊이 들어가므로 조금 힘들 것입니다. 꾹 참으십시오. 십이지장은 괜찮습니다. 이제 위로 옵니다. 스스스스, 미세한 소리라도 있었으면 좀 더 견딤이 나았을까. 내 눈에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소리는 전혀 없다. 티끌 움직이는 소리라도 귀 속 달팽이관 아래 얹힌다면 좋겠다 싶었다. 내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는 조물주의 예하 부대가 있어 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꽉 쥐고 있었다. 나는 침 삼키는 소리조차 꾹 삼키면서 녀석이 가는 곳을 뒤쫓을 따름이었다. 부디 안녕들 하기를, 부디!
위에 염증이 있을 뿐 괜찮습니다. 2년 후 다시 뵙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 씩씩하다 싶은 모습에 참 잘 생기신 외모의 젊은 의사 선생님, 님은 내 몸 곳곳에 참 조심스레 안녕을 확인해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당신, 참 고우신 간호사님, 당신은 꾹 잡은 내 손의 압박에 호흡 조절도 힘드셨을 텐데 기꺼이 견뎌주셨군요. 그 고운 인내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을 붙잡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꼭 가슴에 심어드리고 싶었다.
종합병원을 나서면서 바라다본 하늘의 구름 주머니들은 뽀얗게 볼 호흡을 하는 하얀 천사들 같았다. 혈압까지 지극히 정상이었다. 다음 검진 때까지 2년을 또 멋지게 살아보자. 열심히 움직여 보자. 종합병원이여, 또 잠시 안녕.
딱 100개의 임시 저장 글을 되찾았습니다. 아마 그 이전 댓글은 영영 안녕을 고한 듯싶습니다. 임시저장시켜둔 글도 영원히 그곳에 임시저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우선 50여 개의 글을 한글 문서 방으로 옮겨담으면서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을 통감했습니다. 많이 반성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임시 저장을 한 후1개월 내에 완료된 글로 옮기지 못할 때는 그냥 버리기로 기준을 정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제대로 될지는 지나 봐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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