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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악몽을 꿨다. 바로 일어나 한 시간을 걸었다. 액땜을 했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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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꿨다. 바로 일어나 한 시간을 걸었다. 액땜했다 하자. 

 

 

 

꿈으로 검색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왔다.

 

 

어제저녁 장어구이를 먹었다. 내 음식 섭취의 역사에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배부름을 느끼고 음식 섭취를 멈췄다. 간헐적 단식의 효과일까. 아님 역류성 식도염의 한 증세일까. 혹 건강 검진 후 건강한 몸을 유지하겠다는 깨달음을 몸이 몸소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일까. 1월 2일인데다 월요일이었다.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았다. 맛있는 장어구이를 먹으면서도 주류 섭취를 소주 한 모금에서 멈춘 것도 처음이다.

 

 

거리가 고요했다. 길 위에는 사람도 드물었다. 세 번째에 와서야 가게를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눈에 띈 덕분에 처음 가게 된 가게는 소탈해 보이는 주인아줌마가 손수 만드신다는 밑반찬부터 참 맛있었다. 특히 무 물김치는 압권이었다. 아마 대여섯 번은 다시 채워달라 했을 것이다. 순박해 보이는 아줌마에게 다시 올 것을 약속드렸다. 더군다나 장어는 위장에 좋다고 해서 자주 먹는 편이다. 술도 먹지 않아서인지 오늘 아침, 새날 잠에서 깬 입 안 느낌이 정상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내장 쪽에서는 쾌청했다.

 

 

눈을 떴다. 여섯 시가 되기 전이었다. 애써 다시 자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끔찍한 악몽 끝이었다. 잊히기를 바라면서 다시 잠들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생생함이 극에 달해서인지 눈이 감기지 않았다. 잠든 시각이 새날 2시에 가까웠으므로 긴 시간 잠에 취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견딜 수 없어 여섯 시가 못 된 시각에 몸을 일으켰다. 수면복 그대로에 털북숭이 펄 목도리가 달린 최고 난방의 코트를 걸쳤다. 검정 벙거지형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둘레길 세 바퀴에 출근길의 2분의 1 걷기를 합하여 한 시간을 걸었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아 아무렇게나 걷기에 참 좋았다. 길과 나와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아침 태양만 존재하는 듯싶었다.

 

 

제법 가뿐해진 몸이 겨울을 감싸 안았다. 체감하는  그대로 정신도 그렇다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잊기 위해 버릴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름하여 잡일을 한 시간여 했다. 그런데도 불쑥불쑥 악몽이 생각났다. 잊히면 좋으련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너무나 생생하여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닌지 우선 걱정되었다. 결국 '꿈 해석'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고래로 경험에 입힌 구전으로 표집되는 방법이라면 곧 삶의 연륜에 의해 집약되는 정통 해석일 수 있지 않은가. 이를 신뢰하기로 했다.

 

 

아, 늘 푸르렀으면! 지리산 어디쯤을 찍은 것이다. 언제였을까.

 

 

다행이다. 내가 꾼 악몽은 결코 악몽이 아니었다. 길몽이었다. 평소 걱정하던 것이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번뇌가 사라지니 깨달음이 온다는 인간 삶의 순리를 말한다는 해석이었다. 아, 천 번 만 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꿈은 꿈이라지만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일처럼 꿈을 꾼 후 눈을 뜨면서는 극에 달한 공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길을, 겨울 새벽길을 무작정 나선 것이었다.

 

 

다행이다. 나름대로 꿈 해석을 현재 상황에 맞춰보니 번뇌를 정리한다는 것이 맞다 여겨졌다. 하지만 어쨌든 우주 만물의 일거리 중 가장 불완전한 것이 사람살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실제 현실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 부지기수이다. 조심하자.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신중하게 살자.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 조심하기로 하자. 새해 꼭두새벽 정월 초하루에, 초이틀, 그리고 초사흘까지 합하여 하루하루가 생의 본디 본모습을 산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정초 올해, 아니 평생 겪을 모든 악몽을 오늘 경험했다고 치자. 액땜이라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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