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수 있다면 행복한 거다.
이불 속에서 수직으로 몸 일으켜 세우기를 하기 전에 만진 핸드폰의 유튜브에는 서너 시간을 잠들게 해 준 수면 영상이 여전히 ‘소리’를 내놓고 있었다. 고마운 다리였다. 이곳 현생을 건너 잠깐 들렀다 오는 저 생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으니. 도무지 소리의 형상은 어떤 기호로도 표시할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일단 ‘좋아요’를 한번 누르고 그 문을 닫았다. 세상에나 여태껏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구나. 이런 배은망덕이라니! ‘NASA 최첨단 수면실’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영상인데 아무리 첨단의 방법으로 들여다봐도 도무지 소리의 색깔이나 리듬을 읽을 수 없어 아쉽다. 수면의 신에게 닿을 수 있는 묘약을 품고 있는 소리인지.
수면 영상 창 아래 떡 하고 버티고 있는 창이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알고리즘 작동에 깜짝깜짝 놀란다. 왜 유튜브는 이 창을 띄운 것일까. 내게 고해성사라도 드리게 하겠다는 것인가. <유 퀴즈 온 더 블록>이었다. 프로그램을 열었다. 신부님이 초대된 두 회차 모음이었다. ‘신부님이라서 봤다.’라고 하면 안 될까. 된다.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계를 사시는 분에 대한 신비감이 나를 이끌었다. 사실 어느 세월에는 길을 가다가 눈에 보이는 종교 기관(성당 등)에 들러 기도 비슷한 것을 하곤 했다. 친구들이 말하길 ‘별짓 다 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한 분은 유재석과 함께 진행하는 조세호의 사촌 형님이셨다. 하시는 말씀이며 매무새가 조카 조세호 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엿볼 수 있을 만큼 정결하셨다. 신부님이신데 뭘 하겠지만 분명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세상을 이끌 구도자의 혼을 지니고 계심을 역력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흐린 것과는 거리가 먼, 맑고 투명한 삶을 사시겠다 싶었다.
앞서, 조세호 씨가 말하는 본당 신부님과의 대화가 또 어찌나 재미있던지. 요즘 들어 통 성당을 못 나가는데 본당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고 조세호 씨는 죄송하다고 불쑥 말씀을 드렸나 보다.
"신부님, 저, 요즘에 바빠서 성당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특유의 개그 넘치는 표정을 더하여 귀여운 어투로 말씀을 드렸겠지.
조세호의 고백에 본당 신부님이 응대하셨단다. 하신 답에 재치가 넘쳤다.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도 너를 기다리지 않는단다. “
‘너를 기다리지 않는단다.’
유머 정도로 단순하게 여기고 헛헛한 웃음 한바탕 터뜨리고 일어나려는데 숨은 의미가 열렸다. 본당 신부님은 그러셨으리라.
”걱정하지 말아라. 너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하느님이 잘 아신단다. 걱정할 것 없다. 꼭 성당에 나와서 기도를 드려야만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네가 숨 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가능하다. “
조세호 씨가 건네는 한마디의 말에 순수의 뜻이 담뿍 담겨 전해진 것이 본당 신부님의 재미있는 답을 유도했으리라 여긴다. 한편 조세호 씨에게 어떻게든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하라는 기도의 뜻도 담기지 않았을까. 그 신부님의 그 신도라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까지 하면서 이불속 아침을 즐겼다.
또 한 분의 신부님은 적은 값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시는 신부님이었다. 성균관대 공대 고분자공학과를 나오신 분이시란다. 밥집 사장이라는 신부님, 건강한 몸이 커다란 공장에서 씩씩하게 일하실 엔지니어에 어울린다 싶은 분이셨다. 고분자공학이니 연구원으로도 넉넉하게 어울리실 분. 잠깐 훑어볼 수 있는 겉모습으로 무엇을 단정할 수 있겠느냐마는 어쨌든 선입견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대학 재학 중 피정에 갔다가 신의 부름을 받았단다. 180도 바뀐 가치관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면서 살자는 다짐을 하게 하셨고 신학교로 방향을 돌리셨단다. 이렇게 신부님이 되셨다는 신부님.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힘드셨겠지만 나름의 삶을 사시니까 행복하실 것이다. 타인을 위한 삶이라니 얼마나 거룩한 삶인가.
신부님은 취업 등으로 힘든 상태의, 몸도 마음도 가난한 젊은이들을 위한 식당을 운영하신단다. 청년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 시작하셨다는데 식당을 가면 벌써 자기 식당에 가능한 메뉴를 그려보는 삶을 사신다고 한다. 아름다운 직업병이시다. 건강한 몸과 마음 그대로 잘 지키셔서 신부님의 힘이 우리나라의 가난한 청춘들에게 따뜻한 살핌이 되기를 기원한다.
나도 꼭 가야 할 곳이 있으면 생활이 좀 나아질까. 일터처럼 의무적인 곳, 생업에 관련된 곳을 제외하고 말이다. 성당처럼, 교회처럼, 절처럼? 말하자면 그곳에 가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어떤 곳, 있는 동안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다시 세상으로 나가면 좀 더 씩씩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다지게 해주는 곳이 어디 없을까.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바가 꼭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기복을 소원하는 기구라도 좀 드리고 싶다. 그저 묵직한 덩어리가 얹혀있는, 답답한 마음만 조금 편할 수 있었으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현상을 보고서도 체념하지 못하고 죽자 살자 매달려 있는 나를, 그런 상황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기를, 결국 오물 덩어리인 탐욕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하는 조그마한 바람을 지니고 있다. 나 스스로 조용히 다독일 수 있었으면 해서였다.
내게도 그런 장면이 있기를 바랐던 시절이 꽤 된다. 어떻게도 해석이 되지 않던 시절. 어떻게도 할 수가 없던, 미궁의 시절. 어쨌든 내 생을 긍정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계기를 나도 간절하게 기다린 적이 있었다. 빼꼼한 여유도 여전히 다정하게 안지 못한 채, 현세에 머물러있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또 살아지더라. 슬픈 일지만 말이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불안을 안고 사는 청춘들이여, 용기를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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