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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남자가 왔다 - 정월 초이튿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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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이튿날 1 - 남자가 왔다. 

 

 

 

설날이면 우리 집은 꼭 떡살을 쳐서 흰떡을 만들었다. 이 사진처럼.  이를 방앗간에 가 가래떡으로 빼왔다. 몸매 날씬한 가래떡은 얼마나 맛있었는지. 반달 비슷하게 썰어내는 어머니의 손을 보면서 한편 부럽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다. 썰기 전의 맛을 다시 낼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남자가 왔다. 우리 집 세대주를 말한다. 이것저것 정월 초하룻상을 위해 만들었을 음식들을 싸들고 왔다. 남편 퇴직 후 고향 마을에 들어와서 사시는 시 작은 어머니가 만드셨을 것이다. 음식 솜씨가 대단하시다. 이번에 나를 쉬게 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였을 것이다. 시 작은 어머니는 명절이면 꼭 큰집에 반찬 한 상을 차려 넣어주신다. 

 

 

싸 온 음식은 여러 종류의 재료로 만든 전에, 도토리 묵 등으로 상당한 양이다. 나 혼자 먹는다면 일주일 이상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찬을 싸들고 왔다. 가던 날 긴 한숨을 내려놓고 현관을 나서던 것이 떠올라 아내 없이 친가에 가는 심정이 얼마나 좋지 않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큰 부피로 퍼 낸 한숨이 가슴 한편 크게 아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크게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남자는 의외로 씩씩하게 집에 들어섰다. 낮 한 끼를 설 차례를 지낸 상 뒤끝, 남은 음식 중 가져온 것들을 데워 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기대한 대로 맛있었다. 떡국에 피 가득 찬 만두를 넣어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오손도손 원앙 부부처럼.

 

 

자정 전 수면은 내 팔자에는 없는가 보다. 어젯밤에는 잠에 들고자 애쓰는 것을 포기했다.

"잠 안 오면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하면 되지, 뭘?"

이라고 나무라시던 어느 유명한 노 의사 선생님의 유튜브 영상이 생각났다.

 

 

그제 밤에 시작한 영화를 봤다. <지중해>라는 영화였는데 초반에 영 끌리지 않는다. 평점 5점 만점 중 4점을 넘은 영화를 그냥 넘긴 적이 없었다. 대부분 평점 값을 했다. 이 영화는 애써 끝까지 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았다. 중간에 자울자울, 흐려진 정신머리로 본 것이 이유일 수도 있다.

 

 

점차 바깥 기운에 어두움이 가신다는, 느낄 수 있는 새날의 기운이 강해진다 싶어 수면에 도움이 될 영상 하나를 켰다. 'NASA'라는 낱말이 타이틀 속에 담긴 영상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제 밤 이 명상으로 잠이 들지 않았나 싶어 다시 켰다.

 

 

영상은 처음 얼마 동안 옅은 소음 비슷한 소리가 있다가 점차 잦아들고는 이내 묵음과 블랙 화면, 소리와 블랙 화면, 다시 묵음과 블랙 화면 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정확한 것은 일곱 시간 넘게 담긴 내용을 눈 뜨고 확인할 수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아마 오늘 새벽은 이 기운으로 수면을 다녀올 수 있었지 않나 싶다. 

 

 

3시 정도에 시작된 잠을 여섯 시에 깼다가 다시 잠들어서 8시쯤에 끝냈다. 눈을 떠서 유튜브 강의를 잠깐 들었다. 무슨 내용이었을까 떠올려 보자. 새벽 6시에 한 번 깨어났다가 유튜브 '최준영 박사님의 지구본 연구소' 중, 구 터키 관련 내용의 강의를 틀어놓고서도 두 시간을 더 잤다. 더해진 두 시간의 잠에 나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이어 듣고 본 영상이 무엇이었을까? 당시 잘 봤다 싶은 내용이었음은 확실한데 구체적인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를 어찌하나. 이럴 때면 내가 벌써 치매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렵다. 정말이지 아침잠에서 깨면 꼭 빨딱 일어나야겠다. 진정, 내일 아침부터는 말이다.

 

 

아홉 시가 넘고 열 시에 가까워지면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섰다. 이불을 개키는데 남자가 들어왔다. 괜히 미안하여 이불을 개는 척하면서 어서 오라고 말했다. 불필요하다 싶은데도 괜히 미안해졌다. 이런 나의 기분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죄스러웠다. 순전히 우리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다. '시집가면 그 집 사람이다. 친정 쪽으로는 눈 돌리지 말아라.' 결혼 이후 명절 때면 친정을 간 적이 거의 없으니 이번 설의 독수공방은 꽤 마음 지저분해지는 일이기도 했다.

 

 

미안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폰으로 주문한 것들을 사 왔는지 물었다. 오늘은 대형마트가 문을 열지 않았단다. 방울토마토를 구워 먹고 싶었는데. 사실 그제와 어제 혼자 지내면서 편한 것은 뱃속이었다. 대파와 양파, 무, 청경채, 콜라비 등을 육수에 삶고 그 위에 올리브유와 식초, 유자차를 뿌려 샐러드로 먹으니 간단하기도 하고 또 무난하다. 참 달걀 프라이 둘도 해먹었다. 

 

 


다음 내용은 한 꼭지를 별도로 마련한다. '정월 초이튿날의 일기 2'는 다음 회차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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