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프랑켄슈타인이 조정하는 듯한, 거구의 바람신이 다녀갔다.
밤새 최강의 힘을 비축해 뒀다가 드디어 자기 자랑을 하려는 듯, 바람 신이 다녀갔다. 프랑켄슈타인이 조정하는 듯한 거구의 바람이었다. 며칠 계속되는 불면의 밤 때문이었을까. 살아온 내 기억 속에는 찾을 수 없는 세기였다. 날카로운 칼날을 발톱에 장전하여 인간 세상으로 덤벼들었다. 살얼음을 입은 토네이도가 집 앞 빈터를 헤집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공포 소설 속에서 작품 최고의 신을 위한 의도 속에 창작한 바람 같았다. 잠들 수가 없었다. 이를 어쩐담.
며칠 전부터 걱정 하나가 있었다. 날씨였다. 아이가 휴가로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당직을 열심히 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 안쓰러웠다. 군인 월급에 여행비 걱정을 하는 듯싶었다. 생일 선물로 일금 50만 원을 입금해 줬다. '기회만 되면 여행은 많이 다녀라'는 문구까지 톡에 써넣었다.
12월 31일생이다. 부모 품을 떠나 유학을 떠난 후 성인이 되기까지 줄곧 아이는 생일을 거의 친구들과 지낸다. 어떤 초호화 생일 파티보다 지인들과 축구나 야구 등 운동 경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 끝에 생일 축하 노래를 듣고 케이크를 잘라 먹으면서 치르는 생일이 최고의 기쁨인 듯싶었다. 부모는 함께 할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정과 구정을 모두 모이는 시댁의 연초 행사 일정 관습도 이유였다. 그저 당연한 듯 살았다.
어린이 시절이 지나면서 생일 선물을 전할 수 없었다. 머리 맞대고 아들 생일이니 우리 무엇을 선물하자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섬세함이 나도 아이 아빠도 지니고 있질 않았다. 내가 내 친정어머니가 하시듯이 아들을 위한 생일 아침 의식을 치른다. 부모 밥상에 아들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끓여 올린다. 나는 캘리그래피를 써대는 흥미를 지니고 있으니 멋스럽게 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써서 사진을 찍어 보낸다. 이것이 전부였다. 아이는 지인들에게서 받은 선물 사진이며 생일 파티 영상을 찍어 우리에게 보내면서 자기 탄생의 날을 기념해 왔다.
올해는 제주 여행 비용을 생일 선물로 입금해 줄 수 있어 참 기뻤다. 이제부터는 생일마다 여행비를 입금하여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 벌써 뿌듯했다. 생일 선물로 현금을 입금하자. 좋은 생일 선물 방법이라 여겨졌다. 자본주의를 용쓰면서 사는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인 증여세 문제를 잠깐 열어 보자. 성인 자녀에게 현금 입금은 절대 불가하다고들 한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메모를 남기고서 입금을 하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소규모 경제를 운영하며 사는 팔자인지라 뭉텅이 현금을 증여하겠다는 생각을 추호도 할 수 없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하여 현금을 입금한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렇게나마 생일 선물을 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단돈 50만 원이지만 아이가 큰돈으로 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없지 않아 있었다. 노동의 대가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자기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자기 힘으로 꾸려나가야 할 앞날이지 않은가.
고귀한 생일 선물이라는 생각에 뿌듯해하던 것이 그만 일주일여 근심 걱정으로 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일기 예보 속 기호들이며 숫자들의 상징이 무서워졌다. 아이의 제주 여행 일정과 딱 들어맞았다. 연휴 기간 내내 최악의 한파란다. 올겨울 최고의 냉기란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최저 기온이란다. 여행 목적지인 제주에는 폭설이 내린단다. 일반인이라면 폭설로 하루 결근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군인의 신분이고 보니 두려워졌다, 솔직히. 휴가 일정을 정확히 보고하고 나오겠지만 군대 하루 결근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걱정이 컸다. 이를 어찌한담.
아이는 MZ세대이다. 알아서 하겠거니 하면서도 연휴 관련 일기예보 뉴스에 관해 네 번의 소식을 전했다. 조심스럽게 뉴스가 있는 url 주소를 복사하여 보냈다.
"알았어요."
첫 번째 나의 알림에 대한 답이었다. 아, 하지 말 것을 하다가 두 번째 날씨 관련 내용 안내를 또 했다.
"알아보겠지요."
군대에 있으니 같이 떠나기로 한 후배들이 알아볼 것이라는 답이었다. 세 번째는, 마침 전화를 넣어 왔다.
"항공사에서 연락이 오는 것에 따르기로 했어요."
그리고 네 번째. 구정 전날 또 한 번의 톡을 날리고 말았다. 이런 주책. 참았어야 했다.
'오후부터 북극 한파 남하, 폭설 대비'라는 타이틀의 뉴스였다. 사이트의 주소를 보냈다. 주소 끝에 '아무래도~'를 덧붙였다.
"알고 있습니다......ㅎ"
가 이에 대한 답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제주로 출발하기로 한 날짜이다. 목요일에 돌아오는 휴가라니 돌아오는 날만 괜찮으면, 목요일 날씨가 풀어지면, 오늘 출항이 가능할 때 떠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편 하기도 했다. 젊은 청춘, 산간에 너무 묶여있는 생활이 오죽할까 싶어서였다.
밤새 불어댄 회오리바람으로 새벽녘에서야 두세 시간의 잠을 잤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일어나니 여덟 시가 한참 지난 시각이었다. 손위 언니였다.
"얼마나 춥냐, 잠은 잘 잤냐?"
에 이어 자기 딸이 시댁에서 설쇤 이야기, 노산이 될 친정 조카의 임신 소식 등으로 분주했다. 듣기만 하고 대부분 내용에 '알았어', '응', '괜찮아'만 되풀이하다가 짧게 전화를 끊었다 카톡을 열었다.
"ㅜㅜ"
아이의 소식이 궁금해서였다. 항공사에서 보내온 '항공기 결항 안내'의 알림톡과 함께였다. 아이가 덧붙인 글귀가 'ㅜㅜ'였다. 아쉬움이 크리라. 다니던 대학 부근으로 가서 쉬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선후배들과 운동을 하면서 휴가를 보내겠다는 내용일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철저하게 자기 기준으로 산다고들 한다. 최강 한파라는, 전국이 시베리아 한복판의 대기 위에 생활하게 될 것이라는 일기 예보를 접하면서 바로 시작된 어미의 걱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손위 언니는 그런다. '왜 그런 걱정을 미리 하고 있느냐'라고. 요즘 아이들은 각자 잘 알아서 살아간다고. 그런 엄마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자기 아들 키우는 경험을 덧붙이면서 강조한다. 좀 조용히 좀 있으라 한다. 다 큰 자식 알아서 살아갈 텐데 무슨 걱정이냐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 방법이며 생각이며 대화의 방법 등을 나도 일터에서 이미 깨달았다. 하여 늘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레 엄마의 생각을 전한다. 천 번 만 번 생각한 후에 아주 가끔 말이다. 아이가 답할 간단한 단문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가끔 톡 방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요즈음 신문물 중 가장 큰 감사를 느끼는 산물이다. 톡 방으로 생각을 전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얼굴을 맞대고 산다면, 얼굴을 맞대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생활하게 된다면 나는 틀림없이 잔소리쟁이 엄마일 것이다. 그래, 가끔 일찍 내 곁을 떠나보내서 자기 나름의 생활을 아이에게 하게 한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가끔 하는 생각이다. 어쩌다가 한 번씩 말이다.
밤새 바람신이 부리는 힘의 횡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우리 엄마가 내게 하시던 말씀을 떠올렸다.
"너도 자식 낳고 살아봐라."
도청 소재지가 있는, 지금은 광역시인 곳에서 학창생활을 보낸 유학생이었으므로 농사꾼이었던 우리 엄마는 내가 속 썩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시다. 낮과 밤이 불분명한 생활을 평생 하신 내 어머니에게 어떤 주문을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보건대 우리 엄마도 나 때문에 은근히 힘드셨을 것이다. 농사꾼 엄마와 대도시 사람이 이미 된 막내딸은 거의 속내를 드러내는 대화를 하지 못했다.
밤새 바람 신은 무슨 일인지 화가 단단히 나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생생하게 자기감정을 표출하는 바람 신에게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다. 잠들었다가도 다시 깨어나기를 예닐곱 번은 한 듯싶다. 사방으로 닫힌 문이니 태풍 정도의 바람이어야만 실내에서 느껴지는 것이 정상이다. 어젯밤 바람은 태풍을 넘어선 바람이었다. 태풍은 물 기운과의 동행이어서 그래도 한쪽 힘을 나눌 수 있는 뭔가에 젖어있다. 무엇인가 흘려버리면 옅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어젯밤의 바람은 참 특별한 바람이었다. 완전히 메마른 바람이었다. 건조할 때 타오르는 불의 힘을 생각해 보라. 어젯밤 바람은 습도 0일 때의 불바다를 일으키는 바람의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거대한 악마의 송곳이 하늘을 뚫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단 한 번의 움직임이 없이 고요하게 잠든 채로 밤새 숙면을 취한 사람도 있었다. 부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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