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들어 출근길 끝에 만나는 생물이 까마귀이다.
이번 주 들어 출근길 끝에 만나는 것이 까마귀이다. 일터 공간으로 제법 넓은 잔디 공간이 있다. 일터 대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일터 주역인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마음껏 잔디 공간을 나뒹굴며 사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까마귀 떼였다. 발 움직임만 보면 영락없는 사람이다. 아장아장도 보이고 어기적어기적도 보인다. 갓 걷기에 성공한 아기의 걸음에 제법 세련되고 두루 모은 힘으로 뒤뚱 걸음을 옮기다가 번쩍 우주 속으로 자기 세계를 넓히며 나는 생물, 까마귀 떼다.
녀석들은 내게 어제까지 까치였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내게는 까치였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제2 경비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서야 까마귀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왜 그랬을까. 온몸이 까막까막 까마귀인데 나는 왜
까치라고 하였을까. 오래전부터 내 머릿속에 있는 까치의 이미지는 까마귀 친척이되 몸 배 쪽에 하얀 털 모음이 있는 것인데 온통 까만 저 녀석들을 왜 까치라고 부르고 있었을까. 어이하여 분명한 어조와 문장으로 까치라고 부르고 까치라고 읽고 까치라고 썼을까. 아무런 반성이나 죄의식도 없이 까마귀 대신 까치를 모셔왔는가. 오늘은 이를 좀 분석해보려 한다.
'까치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지요.' 한민족 모든 이들이 잘 아는 전래 동요이다. 전래 동요는 말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어린이용 노래이다. 지닌 짐이 무거워 자꾸 나누어 분류하는 것을 해대는 인간들이 구분 짓기 놀이로 둘레를 고정한 것이 어린이용 노래라는 것이다. 굴레를 뒤집어씌웠다. 눈에는 상관없이 귀로 듣고 입에 익은 이 노래는 어린이의 세계를 졸업하고 청소년의 세계로 이직하면서 안녕을 고하였다. (참,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도 이 노래를 잘 알고 있을까. 내일 좀 알아봐야지.)
'안녕'이라는 것처럼 쉽고도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안녕을 늘 말하지만 흰 두부 반으로 썰기처럼 쉽게 두 쪽으로 나누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람살이이다. 까치는 명절 특유의 즐겁고 신나는 세상과 연결 지어 노래 부르면서 친해졌다. 청소년 세상에 나와서 세상을 보는 눈이 깊고 넓게 보기로 전환하니 어떤 나라에서는 명절 축하 파티의 문을 여는 조류는 까마귀란다. 까치는 어둠 조란다. 생의 혼돈기, 자기 영혼을 도저히 다스릴 수 없는 시기인 청소년기, 즉 사춘기와 오춘기를 지내는 자에게 세상은 모순과 애매함과 모호함과 혼돈 범벅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까치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안에 존재하게 된다.
까마귀라는 것이 또 그렇다. 우리 생에서 까마귀는 못된 놈이었다. '식전 마수에 까마귀 소리'라 했다. 밥 먹기 전 음험하고 흉한 소리의 까마귀라는 뜻이다. 불길함의 징조라는 것이다. '송장 먹은 까마귀 소리'도 있다. 못된 소리를 말한다. 까마귀는 검다. 검은 것은 더럽다. 더러운 것은 까마귀였다. 까막 고기라는 별명도 있었던 것 같다. 내 머릿속 까마귀는 더럽고 지저분했고 심지어 무서웠다. 어쩌다가 씻지 않은 날이면 일에 바쁜 내 어머니는 '까마귀가 아저씨 하겠다.' 혹은 '까마귀 사촌 같다.'로 어서 씻기를 명하셨다. 녀석, 분위기도 그렇다. 가끔 매도 생각이 날 정도로 어릴 적 까마귀는 거세어 보였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느 민족에게는 또 길조이며 과학적인 분석으로도 영리하단다.
밑도 끝도 없이, 아수라장에서 지식이며 상식이며 삶의 지혜를 익힌 소녀는 청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니 뇌세포가 방황을 시작했다. 오직 위로 위로 성장할 것만 같았던 DNA는 우주 순환의 제 원리에 밀렸다. 자신감이라는 것이 춤을 추는가 하면 추락의 구렁텅이를 다녀오기도 한다. 생을 까치와 함께 할 것인지 까마귀와 함께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육신이며 영혼이며 자기 안에 들어서 있는 전통과 새로운 문명이 양립하지 못한 채 가야 할 길을 흐리게 한다. '어디로 갈거나.' 김영동 선생님의 이 노래를 얼마나 많이 중얼거렸던가. 조물주를 향해 얼마나 많은 순간을 머리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던가.
세 살 버릇 여든 가고(요즈음 너무 많이 쓴다.) 깨복쟁이 시절 추억으로 평생 산다. 떡잎 시절 배우고 익힌 것이 될성부른 나무의 성품을 고정한다. 아무리 변화하고 돌변하고 돌연변이 같아도 사람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 터득하고 축적된 사고가 평생 간다. 그렇지 아니하던가. 나 어릴 적 길조는 까치라고 배웠네. 내게 선물을 울어다 줄 새는 흥부네 집 제비가 아니라 까치였다네.
이곳 일터에 옮긴 것이 2년 다 되어간다. 까마귀 떼가 요즈음 갑자기 왔겠는가. 경비 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일터 광장 잔디 밑에 지렁이 등 먹을 것이 많아서 늘 온단다. 나는 두 해 가까이 까막까막 까마귀들을 봐 왔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까치라 고정하였다. 왜? 너무 친근했다. 가끔 출퇴근길에 만나는 길냥이들이 내 곁에 내 절친처럼 앉아 한참 내 곁을 지킬 때면 느꼈던 동물에 대한 친근감을 요 며칠 일터 아침을 수놓는 까마귀 떼에게서도 느낀 것이다. 가끔 그들과 묵언의 대화도 즐겨 했다. 내 삶을 나누고 그들의 삶을 듣기도 했다. 잘 먹고 힘차게 날아오르라고 기원의 퍼포먼스까지 해줬다.
내 뇌 속에 담긴 까마귀가 아니었다. 죔죔 거리면서 먹이를 빼먹느라 잔디 아래 부리로 쪼는 모습이 참 귀여워 보였다. 어쩌다가 같은 구멍을 파게 되었는지 나란히 앉은 혈연과 잠깐 다투는 듯한 모습까지 다정하게 느껴졌다. 부리 마주치면서 몇 번 툴툴거리다가는 곧 바로 다정한 걸음으로,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발길들이 아기자기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병아리 떼 종종 종종'이 생각날 만큼 무리 지어 잔디밭을 활보하는 모습이 보는 사랑스럽기도 했다.
당연히 까치였다. 정말이지 내 보폭으로 하나나 둘 정도 곁에 내가 서 있는데도, 그것도 핸드폰 필름을 가까이 더 가까이 대면서 사진 촬영을 하는데도 전혀 거부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녀석들도 있었으니 길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집에 사는 식구처럼 느껴졌다. 살림 같이하면서 내가 살펴야 할 식솔 같기도 했다. 당연히 길조 까치가 생각났고 까치라 여겨졌고 까치라 부르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많은 수가 잔디밭에서 뛰놀고 있었다. 날고 먹고 걷고 춤추고 있었다. 내 두 눈 망막과 수정체와 시신경이 기억해낸 것이 있었으니 까치의 이미지였다. 아, 하얗게 푸짐한 뱃살이 보이지 않았다. 여럿, 동안 찍어둔 사진들을 열어보았다. 오늘 찍은 사진들도 살펴 보았다. 없었다. 녀석들은 까치를 까마귀와 구분하기 위해 조물주가 구성해 둔 허연 뱃살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 이것은 까마귀로구나. 까마귀였구나. 가만 귀담아 들어보니 '까악까악' 울음소리들이 내 청신경을 강타했다. 내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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