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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솜 누빔 내피가 있는 코트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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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 누빔의 내피가 있는 코트를 입었다.

 

 

 

오늘, 초겨울 노을

 

 

 

솜 누빔의 내피가 있는 코트를 입고 출근했다. 조물주에게 두 손을 들었다. 아직 두 발까지는 아니다. 어제, 거칠게 몸을 움직여야 할 업무가 있어 니트 스웨터에 가을용 바지를 입었다. '오메, 겨울이 와부렀네.' 그래, 단풍은 이미 짙게 물든 지 오래전이다. 낙엽 되어 공중 낙하하는 소리 사사 사사 바쁘다. 겨울이 가을의 등을 떠밀고 도착해 있었다. 겨울을 달래기에는 가을의 힘이 쇠잔한 후였다. 

 

 

어제 겨울이 내 일상에 정식 등판했다. 출근할 때는 온몸을 움직여 바쁘게 걸어서인지 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점차 기온 상승과 더불어 능히 견딜만하려니 기대했는데 11시 즈음 두통과 함께 추위가 밀려왔다. 냉한 기운이 온몸에 스쳤다. 추웠다. 제자리 걷기 등 온몸 움직이기를 시도하여 몸을 달래야 했다. 감기를 달면 안 되는데 싶어질 정도로 맨살을 엿보는 옷감 구멍으로 매운바람이 침입해 왔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생각에 안도하기는 했으나 겨울이 통째로 무서워졌다. 재빨리 퇴근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난방을 켰다. 그나마 아침 일기를 아침 시간에 거의 써둔 덕분에 빠른 속도로 저녁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퇴근 후 우유 더하기 견과류에 달걀 프라이를 더한 저녁 식사를 치렀다. 반신욕으로 육신 달래기도 소화했다. 그제 밤부터 보기 시작한 영화 '러스트 앤 본'도 4분의 1쯤 보니 이미 본 영화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평소보다 이른 잠에도 들 수 있었다. 오늘 아침은 다섯 시에 눈이 떠질 정도로 제법 잠을 잘 잤다. 

 

 

경험을 잘 활용해야 미래가 순탄하다. 과거는 미래의 아버지이다. 오늘, 출근 준비를 하는데 어제의 경험이 확 떠올랐다. 그래, 내 육신은 이미 인생 포물선의 하향 선상에 위치한다. 더군다나 나는 인생 칠십까지만 살기를 소원하고 있지 않은가.(이 소원으로 나는 가끔 내 옆사람으로부터 참 속이 없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러나 진심이다. 짧고 굵게 살고 싶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어찌 그가 말한 적처럼 꾸며졌다는 설도 있다지만, 어쨌든) 어제의 나를 위한 말씀이겠다. 정신차리자. 내 몸의 온도를 제대로 파악하자. 입자. 입어야 산다. 한 달 전부터 햇볕에 내놓아 소독해둔 겨울 코트들을 살펴봤다. 코트들을 추위 대체 난이도 순으로 쫘악 차례를 세워 걸어뒀다. 난이도 1의 코트를 들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곳, 간절기와 정식 겨울의 중간 정도를 커버해 줄 정도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천의 코트이다.

 

 

소국도 겨울맞이를 서두른다.

 

 

 

이렇게 겨울이 나의 올해 의상 무대에 입성하는 것을 허락했다. 오늘 내가 입은 코트는 물론 블랙이다. 블랙 마니아인 내게 딱 맞다. 미인에다가 멋쟁이에다가 미적 감각이 대단한 둘째 언니가 입던 옷이다. 평생 이타주의를 실천하고 사시는, 천사의 삶을 살고 계시는 그녀는, 적어도 30년 전에 이 옷을 구매하여 입었을 것이다. 제법 열심히 활용했을 듯싶다. 의상 전체를 흐르는 선에 고상함이 감돈다. 이를 보면 그녀가 애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착용하여 만들어진 수준 높은 때깔이 흐른다.

 

 

명품이다. 옛 주인처럼 곱게 늙고 세련되게 낡은 옷이다. 수준 높은 품위도 겸비하고 있다. 천은 거의 원상 그대로라 여겨진다. 어디 한 군데 흠집이 없다. 거기에다가 떼고 붙일 수 있는 솜 누빔 내장을 겸비하고 있다. 기온 변화에 따라 유동성 있게(아이고! 주식 떠오르네. 유동성이라는 낱말, 사실 징그럽기도 하다.) 착용할 수 있다. 하여 몸을 보호하는 정도를 변신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1년 만에 다시 입은 코트가 새롭고 어색했다. 옷매무새를 다지는데 영 낯설기까지 했다. 제아무리 엔틱이지만 요즘 패션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 때문일까. 세상 돌아가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깊지 않아 대충, 아무렇게나 의상을 걸쳐 입는데 올해는 유난스레 낯설었다. 아마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몇 번 보세 옷을 구매해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역류성 식도염 발병 이후 복부를 압박하지 않은 편한 옷들이 필요했다. 비록 몇 푼 되지 않은 것들이지만 최신 것이다. 싸구려라도 유행을 담고 있는 의상이리라. 몸이 새삼 패션에 눈 뜬 것일까. 

 

 

오늘 아침 출근길!

 

 

 

겨울옷이 나의 2022년에 처음으로 진출한 것을 기념하면서 남은 올해 하고 싶은 일들을 잘 해낼 수 있기를 빌었다. 올겨울은 부디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기를 기원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를 모델 삼아 강추위를 이겨내고 팔팔 끓는 육신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솜 누빔 내장을 지닌 겨울용 제1 코트는 참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퇴근 무렵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선배 한 분의 뇌경색 발병이다. 엄청 씩씩하게 사는 분이어서 놀람의 정도가 컸다. 퇴직 후에도 바쁜 현역이 손을 요청하면 마다하지 않고 일을 오실 정도였다. 소식 전하시는 분이 말씀하셨다. '그 나이도 아직 늙었다고 할 수도 없어. 한창 일할 나이야 요즈음은. 그리고 그 양반 얼마나 활동적이셨는데. 젊으나 나이 먹으나 건강 조심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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