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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무덤처럼 쌓이는 이면지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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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처럼 쌓이는 이면지를 바라보면서~

 

 

 

이렇듯 재활용을 해왔던 캘리그래피 연습~ 일터에 쌓아놓은 흰종이 산은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일터 내가 이용하는 구간의 책상 아래에는 산더미가 하나 있다. 이면지들이다. 하얀 백지 위주이다. 읽고 쓰고 요약하고 덧붙이고, 검토하고 또 읽고 쓰고, 나의 일터 업무는 주로 흰 복사 용지를 사용한다. 오탈자나 문맥의 흐름은 불량 수위에 서는 것을 즐겨 하는 법이다. 우리는, 나는, 물 먹듯이 A4용지를 손에 들고 산다. 읽고 쓴 후 요점 정리라도 하면 흰 종이에 프린트한 후 살피게 된다. 상당한 양이 잘못되었다 확인되고 또 버려진다. 다음 순서는 으레 새 용지를 집어 드는 것이다. 마르지 않을 샘물을 퍼내듯 본 상자에서 A4용지를 쏙쏙 빼내 또 사용한다. 쓰고 버리기가 반복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버려지는 종이가 수두룩하다. 읽고 쓰고 공부하여 다시 쓴 내용들인데 왜 그리도 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고 마는지. 흰 종이들이 검은 오점을 지닌 채 그만 고개를 숙인다. 마치 지은 죄 큰 듯 이내 고꾸라진다. 쌓인다. 무덤처럼 쌓인다. 무덤이 겹으로 높아지면 산이 된다. 나는 대부분 모아둔다. 일찍이 내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사진도 찍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빴을꼬. 어제 퇴근길이다.

 

 

나의 유전자가 물려받아 그대로 따라 한다. 내 아버지는 못 배운 사람이었다. 소년 가장이셨다. 못생긴 얼굴 때문에 서당 훈장 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시집왔다던 우리 어머니. 새 식구되어 와서 보니 막둥이 도련님이 두 살(열두 살? 흐린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이었단다. 어머니는 두 집 살림하신 셈이다. 시어머니의 살림과 자기 살림을 합쳐서 해내셨다. 남편의 나이 어린 아우들을 제 자식 기르듯 키웠더랬다. 그 아래 줄줄이 자식들도 키워야 했다. 아껴 써야만 입에 풀칠하는 생활이 가능했다.

 

 

천하에 자랑할 만큼 잘생긴 얼굴에 풍채 좋으신 내 아버지는 근검절약의 본보기셨다. 어쩌다가 닭 한 마리라도 잡으면 여린 뼈를 오독오독 씹어 드셨다. 저 딱딱하고(당시 어린 나에게는 뼈의 단단하기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기에.) 흰 뼈는 어떤 맛일까 궁금하여 멀거니 쳐다보는 막내딸을 향해 말씀하셨다. '뼛속 이것이 약이 되는 것이란다. 아비가 먹고 건강해야 내 딸 잘 키우겠지. 우리 딸은 어서 흰 살코기를 맛나게 먹어요. 어서 맛있게 먹어요. 먹고 쑥쑥 커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버지가 부재중이던 어느 날, 닭을 먹던 날이었다. 제법 이빨이 튼튼해진 나도 뼈까지 오독 독독 씹어먹었다. 아, 고소한 약이 진짜로 뼛속에 담겨 있더라. 나는 이후 삼계탕이며 오골계며 닭 종류의 특식을 먹을 때마다 연한 뼈는 씹어 먹는다. 뼛속 양분까지 쪽쪽 빨아먹고 냠냠 씹어 삼키는 습관을 길들이게 되었다. 물렁뼈를 씹어 삼키는 것도 즐겨한다.

 

 

요즘도 닭을 먹으면 야무지게 살을 발가벗겨 먹고 연약하다 싶은 뼈 있으면 씹어먹는다. 내 옆 사람이 그런다. 징그러운 여자라고. 징상스런 여자라고.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진짜로 맛나더라. 내 아버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바가 조금만 더 약했더라도 나는 십분 오해했으리라. '우리 아버지, 진짜로 자기 좋을 일만 하시고 자기 몸단속을 위해서 뼈까지 씹어 잡수셨구나.' 오, 가련한 내 아버지. 오직 자식 교육을 위해서만 세상을 사셨던 내 어머니, 내 아버지.

 

 

 

도스토옙스키의 책 <죽음의 집의 기록> 역자 후기를 시립도서관 문 앞에서 읽고 반납하다. 왜 이리도 바쁠까.

 

 

 

내게 온 A4용지도 닭 뼈 신세가 되었다. 뭉텅이로 쌓이는 흰 종이를 나는 그냥 버릴 수 없었다. 꾸준히 모았다. 쌓이고 또 쌓이기만 하면 아니 쌓음만 못 하리니. 쌓인 힘 커져서 제 몸뚱이를 못 이긴 채 무너지곤 했다. 가끔 손님맞이를 할 때마다 이것은 커다란 짐이 되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종이 산이 무너지곤 할 만큼 높이가 길어졌다. 수시 매무새를 단속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한 박스를 채워 구석진 데에 제쳐뒀는데도 또 한 박스를 다 채웠다. 손님들이라도 오는 날이면 몸체 드러내지 못하도록 단속하느라 바삐 움직여야 한다.

 

 

6월까지는, 적어도 6월 중순까지는, 이면지를 활용할 시간 여유가 있었다. 아침 이른 출근에 먹물을 붓에 먹여 캘리그래피를 쓰곤 했다. 하루에 열 장 이상 글을 쓰면서 하루에 대한 안녕을 소원할 시간을 만들었다. 퇴근 시각 이후에도 잠깐, 캘리그래피 몇을 쓰면서 하루 일상으로 이지러져 있는 내 영혼의 평화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여린 내 마음을 두텁고 튼튼하게 다지는 방법으로 이면지는 활용되었다. 

 

 

얼마 전 큰 행사를 치르면서 꽤 되는 양을 재활용했다. 사용처를 밝힐 수 없어 안타깝지만 참 효과적인 재활용이었다. '그래, 모아두면 어떻게든지 멋지게 사용할 수 있어. 용하게 쓸 수 있다. 후회하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로부터, 늘 듣던 잔소리였다. '아껴 써라, 아끼고 또 아껴라. 모아둬라, 모으거라. 어떻게든 사용할 곳이 생긴다. 티끌 하나라도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적재적소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다.'

 

 

오늘 아침 문을 열고 내 일터 공간을 들어서려다가 의자 한쪽 새하얗게 빛나는 이면지 산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어서 꼭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할 텐데. 부지런해져야 되겠구나.' 내일부터는 단 한 장이라도 캘리그래피를 써야겠다. 바닥 가득 이면지를 펼쳐서 운영하는 깜짝 행사라도 벌일까 보다. 어떤 일이 있을까. 내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손바닥 찍기라도 하게 할까. 발바닥이라도 찍어볼까. 

 

 


출근길 길이를 축소해서 걸었다. 일출 시각이 늦어졌다. 어제오늘 뚜렷하게 느껴졌다. 어둠의 공간에 몸이 아직 하루 시작에 뛰어들려 하지 않았다. 잠깐만 더 눈을 감고 있자고 했는데 여섯 시 삼십 분을 넘어섰다. 재빨리 움직여서 바쁘게 아침을 걸었다. 확실히 날이 추워지고 있다. 추위여, 어서 왔다가 어서 가렴. 벌써 따스한 봄바람이 생각난다. 이런~, 초미니 체크 무늬의 모직 치마를 입고 씽씽 눈보라 치는 거리를 활보하던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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