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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꼬실꼬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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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실꼬실하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꼬실꼬실하다'는 '고슬고슬하다'의 방언으로 검색된다. 이 글에는 남도 방언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렇게나 맑고 깨끗한 이불이 있는 침실이 한때 나의 소망이었다. 무료 사진 사이트 픽셀(https://www.pexels.com/ko-kr/search/%EC%9D%B4%EB%B6%88/)에서 가져옴

 

아마 오늘 같은 날이었을 게다. 사람 살기에 참 좋은 날. 과학적으로는 사람의 체온이 마중 나가고 싶어 하는 기온. 사람의 눈이 만나 말끔하게 자기 상태를 점검하여 세척하고 싶어지는 건강한 조도의 볕. 온몸이 원시의 천으로 자신의 덩어리 외형을 감싸고서 휑한 곳이라도 좋으니 나앉아 선탠을 하고 싶을 정도로 건강한 습도를 갖춘 날. 그런 날이 오늘.

 

이런 날이면 우리 엄마는 꼭 빨래를 했다. 긴 겨울을 날 수 있는 이불 빨래. 가난의 이불은 계절을 달리하지 않았다. 아마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날을 덮었을 이불. 이전 해 겨울의 시작부터 올 가을의 끝까지 사용했을 이불. 말하자면 연중 행사의 날.

 

엄마는 다른 날보다 더 이른 시각에 잠에서 자기 신체를 일으켜 세웠다. 오늘 우리 엄마는 좀처럼 간섭하지 않는 자식들의 새벽잠까지 건드셨다.

"아이, 언능 일어들 나자야."

"으으, 엄마 왜 벌써 깨워."

"어제 말했지야, 오늘 빨래하는 날이라고 야. 언능 읽어들 나거라, 언능언능."

온순함을 천직으로 타고난 나는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가 나의 어떤 상태 변화를 채근할 때면 바로 선한 대응을 했다.

"알았어. 엄마. 뭐 해야 해?"

이때 동생이 외친다.

"엄마, 나는 빨래 안 할 거야. 내 이불은 디러워도 괜찮고 똥이 묻어 있어도 괜찮해. 엄마 나 깨우지 마. 나는 안 빨아도 된다고, 엄마, 지발 나는 깨우지 마."

일부러 코 골기를 시도했다가 채 1분되 되지 않은 시각에 또 잠이 든 동생은 댕글댕글 이불로 온몸을 똴똴 말아 깊은 잠이었다.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에 철저하게 세뇌당한 상태의 삶을 사시던 우리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래, 더 자그라이."

이어 하신 말씀은 딸들을 향한 것이었다.

"아이, 저 이불은 놔두고 하자이. 안방 것, 니들 방 것, 사랑채 것 모두 거둬 와라 이!"

대부분 언니가 싸들고 나오고 나는 아마 이불 한 두장, 그것도 제일 가벼운 것 한두 장을 들고 나와 아직 떼지 않은 눈곱을 거슬려하면서 엄마 앞에 서 있다. 엄마가 설설 끓고 있는 데운 물에 찬물을 받으면서 말씀을 이으셨다.

"다 내 왔으먼 안방 아랫목에 니들 옷으로 몸 좀 싸고 쉬고 있어라이. 또 불르면 그때 나오고."

언니와 나는 해진 겨울 옷들을 꺼내 몇 겹으로 복부를 덮고 아랫목에 누웠다. 언니가 말을 한다.

"아이, 너는 자라야. 내가 할 것이여. 나 혼자로도 충분해야. 내 힘이 얼마나 씬지 너도 알재이?"

 

셋째 딸 우리 언니는 정말로 힘이 셌다. 우리 할머니가 늘 그러셨다.

"우리 집 대들보여야."

내 기억 속 셋째 언니는 책이나 공책을 펴 들고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내게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언니는 우리집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영락없이 맞는 말이었다. '건너마을에 최 진사댁에 딸이 셋 있는데 그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제일 예쁘다던데~' 가수 조영남이 번안해서 부른 이 가요의 의미는 우리 집 셋째 딸을 말하는 노래가 분명했다. 물론 외형적인 미모는 최고가 아니었지만 우리 할머니가 늘 외치시는 마음의 모양새는 우리 집 네 딸 중 최고였다. 마음이 이쁜 우리 집 셋째  딸!

 

언니는 정말로 저 혼자 어머니의 도우미 노릇을 했다. 자기 말대로 최선을 다했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우리 집 대형 일꾼이 해야 할 정도의 일은 언니는 다 해냈다. 엄마가 미지근한 상태의 물로 만든 다음 빨랫비누를 풀고 양잿물 비슷한 소독제를 만들어 물에 더하면 다음 일이 언니의 일이었다.

"아이, 들어가서 밟아라. 여기저기 빈틈없이 밟아라. 니기들 뭐 먹고 뭐 먹은 것 다 묻었을 텡게 보지란히 밟아야 지대로 빨래가 된다이."

언니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밟았다. 말이 운동 삼아 빨래 밟기이지 우리 셋째 언니 무진장 힘들었을 게다. 두 번째부터는 물이 찬물이었으니까.

 

빨래 끝 마당을 종단시킨 질긴 노끈에 온몸을 의지한 이불들을 보고 우리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 집 보물덩이 셋째 딸이 말했다. 불협화음 같지만 한편 다시 생각하면 참 어울리는 이중창이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이불을 다 널고 물기 그득한 두 손을 앞치마 같은 겨울용 몸빼에 탈탈 털고 난 다음 약 셋을 센 다음이랄 수 있는 시각이었다. 동시에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두 사람의 소리 합창이 있었다.

"꼬실(한 박의 숨표가 존재한다), 꼬실하다."

"꼬실(역시 한 박의 숨표가 존재한다), 꼬실하다."

 

하늘도 참 꼬실꼬실한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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