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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꽈상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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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는 꽈상꽈상 말려야 뒤탈이 없다.

 

 

이런 가을이아.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막내딸인 나는 늘 어설펐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내 딴에는 붙들고 앉아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결과는 기대하고 있던 정도의 반이 되지 못했다. 몸은 작고 야위었다. 힘을 들여 해결해야 하는 일이면 아예 내 몫을 배당하지도 않았다. 몸은 자꾸 넘어지고 육은 자꾸 문드러지고 내 육신에 걸쳐있는 영은 늘 흐물거렸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우리 엄마는 그런 딸을 잘 알았을 거다. 하여 가벼운 일감만 내게 안겨줬다.

“아가, 이것 한번 해 봐라.”

“...... .”

묵묵부답의 막내딸에게 톤을 조금 낮추고 조심스러움을 가미해 말을 이으셨다.

“이런 일이라도 해 봐야 안 쓰겄냐. 먹고 살아야지야. 어찌꺼나. 그리 힘도 없고 뱃심도 없어서 뭐를 하고 살 수 있을까나. 니 언니 좀 봐라. 저리 잘 먹고 잘 자고 얼마나 심(힘)이 좋냐. 이 어미 대신해서 살림살이까지 척척 하는 니 언니. 나이가 니보다 두 살 더 먹었을 뿐인디. 어찌 이리 다르다냐. 하기사 앞뒤 꼭지 삼천리 뺑 돌아간다 육천 리 왔다 갔다 구천리니 이마빡 뚝 나와서 영리한 것은 같으닝께 으짜든지 공부는 열심히 해서 대학도 가고 잘 살어라야. 공부함스로 살먼 그것이 최고지 어쩌겄냐.”

 

이마가 툭 나온 나는 어릴 적부터 영리한 운명인 듯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듯 살아왔다. 우리 집 일꾼들 모두 나만 보면 그랬다.

“앞뒤 꼭지 삼천리 뺑 돌아간다 육천 리 왔다 갔다 구천리”

를 읊으면서 놀려대곤 했다. 이 문장을 들을 때마다 안방 땟자국 가득 담고 있는 깨진 거울 앞으로 가 앉아서 내 얼굴을 살폈다. 그들의 언어가 용서되었다. 심지어 정답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으짤 것이냐. 우리 엄마 말마따나 사실 그런 것을. 사실인 것은.

 

놀려대는 말을 들으면서도 말 한마디 내놓지 않고서 가만 듣고 있으면 우리 엄마는 조금 전에 내 앞에 내민 빨래를 삼 등분 하여 한 묶음만 내 손에 들리게 했다. 더 적은 양의, 더 부드러운 양의 빨래를 들려주면서 마을 옆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가득 흐르는 냇가로 가서 빨아오라고 했다. 빨래를 하는 것에 앞서 우선 집 밖으로 나가게 하려는 목적이 컸다. 나도 기뻤다.

“엄마, 내가 잘 빨아서 가지고 올게.”

“아이고 우리 딸, 그래 일도 해 봐야 살 수 있어야.”

 

빨래가  꽈상꽈상 마르고 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온. 아무래도 우리 나라는 아닌 듯하나~

 

내게 내민 일거리는 아주 가벼운 수건 정도. 물 흐르는 곳에 가서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있는 넓은 바위 빨래판 위에 수건 서너 개를 놓고 빨래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마을 옆 산 아래를 흐르는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재미는 내 일과 중 가장 신나는 것이었다. 특히 마른 가뭄 끝에 왕창 쏟아지는 폭우 끝 그곳은 사방으로 흐르는, 폭포 못지않게 쏟아지는 산속 물이 으랑창창 쏟아지는 소리가 장관이었다. 폭우 끝에 말이다. 말하자면 시내가 강이 되곤 했다.

 

수건 두세 장 혹은 서너 장은 그때 모이는 사람들의 빨랫감 중 가장 적은 양이었다. 나는 대충 빨래를 해서 한쪽에 눕혀두고 이 사람 저 사람 구경을 했다. 물속에 가는 몸을 세우고서 이 집 저 집 꼬마 손들이 자기 집 빨래를 하느라 바쁜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평화로웠다. 그렇게 보내는 세월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따뜻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대중 속에서 내가 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친구들은 힘이 참 셌다. 야무지게 빨래를 해서 꼭 짜 나뭇가지에 널었다. 큰비 지나고 난 후 말끔해진 이 세상 온 천지, 갈래갈래 나뭇가지 위에 너풀너풀 빨래들이 걸려있다가 마침내 노닐기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싱그러웠던지.

 

문제는 내가 가지고 온 수건 두셋, 혹은 서넛이었다. 나는 두 팔에 힘이 없었다. 두 팔의 말초신경을 곤두세워 수건을 꼭 짤 힘이 없었다. 우리 집 수건은 나뭇가지에 널어놓을 수가 없었다. 물기가 너무 많아 나뭇가지들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결국 조심조심 친구들 몰래 수건 두셋을 대야 안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뭔 금싸라기라고 그리 중하게 싸 왔냐. 빨래하면 꽉 짜서 가져와야지. 어서 말려야 또 쓸 것 아니냐.”

“...... .”

“으째 이리 가져왔냐. 좀 힘센 친구들한테 짜 주라고 좀 하지 그랬냐? 하기사 친구들이야 즈그 집 빨래 짜야지. 어찌 우리 것까지 짜고 있겄냐마는. 들고 오느라고 더 힘들었겄다야. 가서 쉬어라, 어서 쉬어. 좀 눕든지.”

 

한숨 자고 일어났던가. 마당 한쪽 빨래를 너는 대쪽 위로 내가 빨았던 수건들이 걸려있었다. 하루 이틀 지나 모두 말라서 맑은 바람에 나풀거리면 우리 엄마 늘 말씀하셨다.

“뭔 일이든지 꽈상꽈상 꽉 말려야 되야. 저 봐라. 얼마나 말끔하냐. 치적치적 물기 남아있으면 벌레 끓어야. 세상일도 다 그렇단다. 뭔 일을 하면 꽈상꽈상 깨끗하게 해부러야지. 미적지근하게 하면 뒤탈 생기고 뒷말 생기고 고린내 풀풀 나고 재미없어야. 으짜든지 빨래부터 꽈상꽈상 꽉 말려라. 어떤 일을 맡아도 꽈상꽈상 해내거라.”

 

우리 엄마. 그곳에서도 꽈상꽈상 빨래 말리느라 바쁘실까. 여름 홑이불 여럿 빨아서 널었더니 습도 50 앞뒤에서 노는 가을바람에 꽈상꽈상 참 잘 마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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