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여차 것으로

반응형

 

 

여차 것으로

- 혹시 '여차것으로'가 맞지 않을까?

 

스페어. 연습 삼아. 그러나 본 무대에 내놓아야 할 것이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한 걸음 걷는 것도 숙명이려니 하지 않으셨을까. 우리 엄마는 늘 걷고 있었다. 눈만 뜨면 걸었다. 뜀뛰기도 하셨을 거다. 혹 주저앉기도 하셨겠지. 엄마 너그러움을 신체에 선사하여 가만히 천장을 보고 누워 계시던 것은 '여자 저차 해서' 이미 병든 몸이셨을 때다. 그런 우리 엄마, 앞 문장에서 쓴 '여차 저차'의 '여차'가 아닌 또 한 의미의 '여차'라는 낱말을 사용하곤 하셨으니, 자 보자.

 

"아이, 으짜거시냐. 니 아부지가 오늘 손님들 오신다는데 말이다. 언능 해야 할 것이면 해야 지야. 안대로(주워들은 것 혹은 알고 있는 대로) 들은 대로 해 봐야 지야."

아마 바깥일과 바깥손님 접대로 바쁘셨던 아버지가 급히 무슨 음식을 해서 내놓을 것을 명령하셨을 때였겠다.

"으째 그렇게 니 아부지는 바쁘다냐. 하루만 더 빨리 말씀하셨으면 이러지 않을 텐디 말이다"

"그래, 엄마. 집에 계시는 날이 없네. 엄마가 너무 힘들어."

"아니어야. 남자 바깥에서 바쁜 것은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어야."

"그 능력을 좀 집에서 내놓으셔야지 엄마만 온갖 일을 다 하시느라고 힘들잖아요."

 

좀처럼 이렇고 저렇고 답을 하지 않고 살던 나도 재빨리 뭔가를 해내야 하느라고 정신없어하시는 엄마를 보면 화가 나기도 했다. 서당 훈장 어르신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신 우리 엄마는 아부지의 '탓'은 전혀 하지 않고 우선 바쁘셨다. 혹 기쁨이었을까. 응하라 하면 재빨리 응하는 것이 보람이셨을까. 이렇게나 한심스러운 생각까지 하는 이 딸도 이유가 있다. 어쩌자고 늘 밖으로만 도는 남자가 능력자로 보이셨을까.

 

내 눈에는 엄마가 능력자이셨다. 아버지께서 주문하는 모든 일을 해내셨다. 집 옆 텃밭에 가면 온갖 채소가 자라고 있는 것이 큰 자원이었으리라. 다락방에 비치된 말린 나물거리랄지 집 뒤안(뒤뜰)에서 실하게 자란 과일들, 어릴 적 눈에는 운동장만큼이나 드넓던 장독대 항아리 속을 꽉 채운 찬거리들이 든든한 힘이셨으리라.

 

어쨌든 바쁘게 된 우리 엄마, 어떤 일이나 어떤 음식을 처음으로 해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면 하시던 말씀이 있었으니

"아이, 어찌것이냐. 해내야 하니가 하자야. 이번에는 상 내놓으면서 처음 해야 해서 여차 것으로 했으니 맛보시고 부족한 것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하자야. 그러믄 뭔 맛없다고는 하지 않으실 거다. 해서 내놓은 정성이 있는데 어찌 함부로 말씀들 하시겄냐. 글고 니 아부지가 모시고 온 손님들은 아조 예의범절이 뚜렷하신 분들이니께. 처음 했다는 음식 갖고 뭐라고 하지 않으실 것이여. 어서 하자야."

 

 

결코 연습 삼아 하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우리 엄마는 늘 '여차 것으로', 즉 '연습 삼아'라고 말씀하셨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우리 엄마, 여차 것으로 해내어도 손가락 끝으로 맛보면 손가락을 쪽쪽 빨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해내셨다.

'우리 엄마는 최고의 요리사'

우리 엄마 요리 솜씨를 어쩌고저쩌고로 시로 써서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 엄마 덕분에 나도 음식을 맘만 먹으면 참 잘한다.

 


사전 속 '여차'는 내가 원하는 의미의 낱말이 아니었다. 오픈 사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여차 것으로, 여차 꼴로 - ‘연습 삼아’의 남도 사투리

반응형

'문학 > 내 어머니의 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뉘가 난다고~  (66) 2023.12.05
으쨌거나 좌우지간  (56) 2023.12.05
느자구 없다  (59) 2023.10.07
꽈상꽈상  (52) 2023.10.04
응글응글  (7) 2023.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