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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느자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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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자구 없다.

 

 

느자구가 있이 살려면 매사 감사의 인사를 달 드릴 것.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절대로 ‘느자구 없다’라는 말을 들을 일은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리 엄마가 막내딸에게 강한 어조에 강력한 힘을 담아 가끔 말씀하시던 문장이다.

 

“아이, 너, 엄마가 하시던 말씀 중에 ‘느자구 없다’는 말 들은 것 생각 안 나?”

“그래. 기억이 나. 자주 말씀하셨지. 느자구 없다는 말은 들으면 안 된다고 그러셨잖아. 그런 말은 절대로 듣는 일이 없이 살아야 한다고 말야.”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 말씀을 하시던 구체적인 상황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다. 다만 늘, 이런 말은 듣지 않게 살라고 하셨던 듯.

 

어젯밤 들이마신 소주 석 잔은 이마트 산 치킨구이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자. 이상하게 나는 육류 중에 치킨은 일부러 찾아 먹고 싶지는 않은 음식이다. 내가 나의 무한 식탐을 떠올려 보건대 진짜로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이 늘 먹자고 하는 음식이 ‘치킨’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어떤 이유로 배달을 시켜서 내 눈 앞 식탁에 놓여있지 않은 이상 일부러 치킨을 꼭 시켜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내 입 속 미각은 왜 치킨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은 것일까. 다음에, 다음에 더 세밀하게 분석하고 사고하고 판단하여 글을 써 보기로 하고. 자, 돌아가자.

 

어젯밤 쭉쭉 들이켰던 소주 석 잔 덕분에 오늘 아침 새날의 시작이 늦었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이불 속을 박차고 나왔다.

‘인간, 그것참 요상한 동물인 것은 맞다.'

다른 때 같으면 분명 머리가 아프고 눈알은 뻑뻑하고 온몸은 느글느글해야 맞는데 오늘 아침은 아니다. 소주를 석 잔이나 마셨는데도 몸이며 정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었다. 그저 기분이 괜히 내 몸을 이불 속에 가둬뒀다. 아마 여섯 시 알람 기상 시간부터 일어났으리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죽치고 누워 있었다. 변명하자면 이렇다.

‘나, 누구누구는, 수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의 3일을 심하게 고생했으니까 말이요. 어젯밤 술 석 잔을 들이마신 것도 고생스러웠던 시간을 무마시키기 위해서였어요. 토요일 아침이잖아요. 좀 더 누워 있어요. 좀 쉬워요. 충분히 비정상적인 아침을 시작해도 전혀 무리가 아니오. 오늘 아침은 정상적인 무리의 대열에서 벗어나도 돼요.’

내가 나를 고이 세뇌를 시킨 덕분에 여유 널널하게 아침을 지냈다.

 

아홉 시 삼십 분을 지나 열 시로 긴 바늘이 다가갈 즈음 언니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야, 그렇지? 느자구 없다는 말 생각나지? 니 블로그에 올렸어?”

벌떡 일어났다. 언니의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텅’하고 나를 울리는 우리 엄마의 말씀.

“사람은 으짜든지 느자구가 있어야 된다이.”

그깟 3일을 좀 힘들었다고 소주 석 잔을 바락바락 마시면서 속내를 욕지꺼리로 퍼부은 어젯밤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래, 다시 또 시작하자. 느자구가 있는 사람이 좀 되자. 그깐 일도 이겨내지 못해서 어찌 느자구 있는 삶을 살겠느냐.”

 

‘참, 한데 '느자구'라는 말은 뭘까?’

궁금증이 이어졌다. 표준어국어대사전을 찾았던가.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느자구'라는 낱말 뜻을 찾은 순간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는 것.

‘세상에나, '느자구'라는 말이 이런 말이었어?’

 

‘느자구’ - 흔히 남도(?)에선 "느자구 없다"라는 말은 "어이없다"라는 말의 뜻과 동일.

‘느자구’ - 항문의 주름을 사투리로 이르는 말. 괄약근과는 다른 용어로 괄약근은 항문의 근육을 이르는 반면 느자구는 항문이 온전하게 기능하기 위하여 있는 주름을 뜻하는 말.

‘느자구 없다’ - 형용사인 ‘싹수없다’의 다른 말.

 

아, 생각난다. 마을에 나가면 어른들이 조심스레 하시던 말씀.

“저기 저 사람들, 누구네 자식들이여?”

“나도 잘 몰라. 인사를 해야 알지.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헌티 인사도 안 허고 느자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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