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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나는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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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이다.

 

 

 

 

몇 년 만인가. 내가 어머니가 되다. 파김치를 담다.

 

 

 

“담았니?”

“뭘?”

“오늘 일찍 담으라고 했잖아.”

“화분에 물 주는 날이야. 요즈음 비가 계속 와서 1.5주 째와 3주째로 물주기를 하고 있거든. 곧 끝나. 오늘은 물 많이 먹는 애들만 물을 주거든.”

“아니, 그놈의 화분 물 주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우선 그것부터 담으라니까. 그래야 오후에 숨죽여서 내일 아침에 보내지.”

“알았어. 오늘은 물 주기가 빨리 끝날 거야. 곧 담을 거야.”

“아니, 그것 다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야.”

떡 하니 머리에 떠오르는 뭉치가 있다. 물뿌리개에 물을 담으면서 내다보니 다용도실에 내질러 앉아 있는 뭉치가 제법 덩치 나갈 듯하다. 내 허리둘레보다 부피가 클 듯싶다. 두 뭉치다.

 

 

쪽파 두 단!

 

 

“엄마, 김치 좀 보내주세요.”
“김치? 그래 배추김치 알맞게 익었는데 보내줄게. 밀키트로 된 탕거리도 좀 보~”

“아니요. 파김치만 좀 보내주세요, 파김치요.”

“그래, 파김치가 먹고 싶었구나. 보낼게. 그런데 엄마 동료 중 젊은이들 보니 밀키트로~”

“먹고 있어요. 그것은 알아서 먹을 테니 보내지 말고요. 파김치만 조금 보내주세요.”

’집밥‘이 그리웠나 보다. 녀석. 고향 음식 맛이 생각나겠지.

 

 

얼마나 ‘집밥’이 그리웠을까 생각하니 이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벌써 내일 아침에 ‘〇〇반찬가게‘에 전화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김치류를 보낼 적마다 보내는 쪽이 반찬 가게라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가게 아줌마가 아버지의 동료 부인이고 보니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담 반찬가게 반찬이지 집밥 반찬이 아니다. 이런~

 

 

“애가 파김치가 먹고 싶다는데 어떡하지?”

“그래, 애는 어릴 적 음식 맛을 꼭 챙기는구나. 좋지.”

“파김치만 조금 보내달라는데 어떡하지?”

“어떻게? 너 휴가잖아. 담아서 보내.”

“그래, 내가 담아야지? 그런데 잘 할 수 있을까?”

“그래, 파김치는 담기도 쉬워. 간단해. 얼른 네 집 아래 새로 생긴 ♢♢ ♦♦♦ 마트에 가서 쪽파 한 단 사와. 내일 아침에 담았다가 숨 죽으면 모레 보내면 되겠다.”

어릴 적 키운 이모이니 어쩌면 이모가 담은 김치가 입에 더 맞으려니 싶어 어찌 언니가 ‘내가 담아 보내겠다.’는 답을 하게끔 하려 했다. 언니의 답에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를 어찌한다?

’그래, 오래간만에 엄마다운 일을 해 보자. 파김치? 담기 쉽다잖아. 요즈음 곳곳이 음식 레시피 마당인데 파김치 못 담겠나? 하자. 담자. 맛있게 담아 내 아이에게 보내자.‘

 

 

해도 해도 끝이 없더라! 우리 엄마는 어찌 사셨을까.

 

 

 

재빨리 저녁을 챙겨 먹고 신생 마트로 달려갔다.

“깐쪽파가 뭐야?”

“깐쪽파? 깐쪽파가 뭘까? 그것밖에 없어? 다 팔렸을까?”

“아, 진짜 파 있다. 우리 집에 국물 낼 때 쓰는 파 말이야. 이것 맞아. 어, 근데 무지하게 굵다. 파김치 파가 아닌데?”

“그것은 대파고.”

“그래? 파김치로 먹었던 파는 안 보이는데?”

“야, 깐쪽파는 쪽파를 다듬어놨다는 거다. 돌아봐. 쪽파 있을 거야.”

“아하, 여기 있다. 쪽파라고 있다, 있어. 알았어. 두 단 사 가야겠다. 두 단 담아서 보내고 남은 것은 집에서 먹으면 되겠다.”

“그래, 그래라. 어서 사 가라.”

마트를 둘러보면서 언니와 나눈 전화상 대화이다.

 

 

쪽파 두 단을 샀다. 집에 고춧가루가 넉넉하게 있는지 미심쩍어 유통기한을 확인 후 최신 것으로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나온 김에 내 좋아하는 샤인머스켓 한 봉지도 담았다. 쪽파만 사 오려니, 두 단 사서 안고 오려니 했는데 부피가 꽤 되었다. 결국 쓰레기 봉지 10 리터에 담아왔다. 마트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그만해서 다행이었다. 봉지는 한 짐이었다. 끙끙대며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마냥 뿌듯했다.

 

 

그래, 쪽파 두 단이다. 휴가. 그래, 의미 있는 날이 있어야겠지. 때를 맞춰서 소식이 오는구나. 내사랑! 오랜만에 엄마다운 일을 해 보자. 보낸 파김치를 먹고 너무 맛있다는 톡을 보내오면 내 얼마나 가슴 뿌듯할까.

 

 

화분에 물 주기는 한 시간 반 만에 끝났다. 9시 38분에 시작한 것이었으니(오늘은 시작 시각을 적어놓고 시작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쪽파 담기의 시작 시각은 11시 10분 정도 되었던 듯싶다. 최근 치렀던 요통이 생각났다. 야무지게 단 도리를 하고 시작하자.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쪽파 두 단을 뒷 베란다 세면대(?이곳 이름이 이게 아닌데?)에 풀었다. 푸짐했다.

 

 

 

쪽파 다듬기에 돌입했다. 뿌리 쪽 잘라내기를 해 보니 가장 먼저 자란 나이 든 줄기를 함께 뜯어내어 하얀 뿌리가 보이게 해야 했다. 언니 말에 의하면 줄기 끝을 따 둬야 제대로 간이 배고 맛있게 숨 쉬는 김치가 된다기에 곳곳 전입이 된 곳을 물론 모든 줄기 다듬기를 함께 했다.

 

 

 

서툰 손놀림은 ‘세월아 네월아’를 읊으며 어기적거렸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작은 용틀임이 시작되었다. 처음 단을 풀었을 때 느꼈던 오진 마음은 벌써 와그르르 무너진 뒤였다. 왼쪽 어깨 더수기가 엥엥거렸다. 척추 십몇 번쯤 어느 곳이 위험 감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허리춤에 찬 채 이어폰을 끼고 듣고 있었던 ‘일당백’ 정박 님의 강의 내용은 이미 소음이었고 장단 잘 맞추는 것으로 내 칭찬을 풍성하게 듣고 있는 정영진 님의 진행은 산만한 문제아의 소란이었다. 일어났다 앉았다를 몇 번 반복하고 고개 돌리기 운동을 대여섯 번은 했다.

 

 

 

“하고 있냐?”

“그래(매우 거칠게). 한 단만 사라고 하지 왜 두 단을 사라고 그랬어.”

“니가 두 단 산다고 했잖아. 남은 것은 니들 먹는다고. 하하하하하~”

“이것 끝도 없네, 끝도 없어. 지금 점심시간도 넘고 두 시가 다 되어가는데. 미치겠네, 미치겠어.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어떤 자세로 하고 있니?”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있어.”

“남은 것 큰 양푼에 담아서 식탁에 놓고 서서 해라. 나중에 원망하지 말고 어서 남은 것 들고 일어나, 어서.”

“아냐, 두 단째는 나름 방법을 익혀서 제법 속도가 빨라졌어. 거의 다 해가.”

 

 

 

그 후 서너 번의 전화벨이 울렸다. 받지 않았다. 오후 세 시가 다 되어 쪽파 다듬기를 마쳤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온몸 풀기 운동을 했다. 곳곳 근육에게 안부를 묻고 살살 달랬다. 미안, 미안해. 니들, 내가 아직 덜 아팠다고, 두고 보자고 했을 거야. 알아, 니들 마음 다 알지. 한데 어떡하니, 내 새끼 먹일 파김치인데 정성을 다해야지. 고생했다. 파김치를 담고 나면 푹 쉬게 해 줄게. 미안, 미안해.

 

 

인터넷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어젯밤 언니가 불러준 것을 적어놓았다.

흰 뿌리 쪽 부드럽게 손으로 마사지하듯 만져주면서 씻어주기.

지네들끼리 부딪혀서 흙을 털어낸단다.

이파리 쪽도 양손으로 싸 안고 흐르는 물에 흔들어주면 오물이 떨어져 나가지.

서너 번 반복해 씻고 물 빠짐 그릇에 1, 20분 물을 뺀 후 담아라.

제일 먼저 액젓으로 간 좀 맞추렴.

밀가루죽을 한 국자쯤 만들어서 거기에 고춧가루와 설탕(나는 꿀을 넣었다. 매실 원액을 조금 더하고.)을 넣어 섞은 다음 파에 섞어 부드럽게 버무리렴.

통에 옮겨 담았다가 하룻밤 묵혀 숨 죽으면 아이에게 담아 보내렴.

 

 

평소 하던 일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 읽기도, 그림 그리기도 영화 보기도, 음악 듣기도 하지 않았다. 유튜브 '일당백' 강의를 ‘계속 듣기’로 고정해서 들으면서 오늘은 오직 파김치만 담았다.

 

 

나는 어머니였다.

 

 


이전 회에는 무료 사진 사이트 '팩스베이'에서 가져온 소녀를 그려 올렸다. 좀 더 아름답게 그렸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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