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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한 여자가 있었네, 그녀는~ - 시립도서관 탐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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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었네, 그녀는~

- 시립도서관 탐방(?) 일기

 

 

 

 

아름다운 날이었네!

 

 

 

끝난 것이 끝난 것이 아니더라. 오늘은 목요일. 적어도 내일 오후 퇴근 시간 이전에 파김치가 배송되어야 한다. 어느 택배로 가야 할까. 때맞춰 톡이 온다. ‘도서 반납일입니다(도서관에서 온 톡).’ 해석하자면 ‘내일까지입니다.’ 2차 해석에 들어가면 ‘반납은 꼭 제때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음 다씨~는 대여해서 대령하지 않겠습니다.’ 나와 함께 사는, 나의 도서 대여를 충실히 대신해 주는 '또 한 사람'으로부터 온 톡이다. 웁스! 

 

 

아름다운 파김치였네!

 

 

그래, 결정. 파김치이다. '안전 보장'을 최우선으로 택하자. 귀찮지만 더 먼 거리에 있는 지역 본부 우체국 택배로 결정. 지역 본부라서가 아니라 그 가까이 시립도서관이 있기 때문이다. 멋진 하루를 보내기로 하였다. 일석이조. 알뜰생활 실천하여 알찬 휴가를 보내자. 오늘 밤 하루를 돌아보면서 일정을 잘 조율해서 움직였구나를 느끼게 하자. 한영애의 노래 ‘조율’을 들으면서 가자.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 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반찬통 크기에 맞춘 스티로폼 상자를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동여맸다. 작은 얼음덩이 하나에 먼 길 갈 찬거리는 위험하다 싶어 닭고기 살 냉동육 두 개를 더했다. 파김치를 안정시켰다. 고백하건대 자동차를 가동하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짧지 않은 생을 살았는데도 ‘파김치 택배’는 처음이다. 산골 소녀 한양 첫나들이를 나선 듯, 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였다. 이 사람에게 묻고 저 사람에게 물어가면서 마음 다짐을 단단히 했다. 가자. 우체국을 거쳐서 도서관으로. 입대해 있는 아들 덕분에 뜻깊은 휴가를 보내겠구나. 내 할 일을 내 스스로!

 

 

우체국은 평일 오전 시간답게 한산했다. 주차장은 내 '입국'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내 차를 위한 자리, 한 곳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와우! 자동차가 사람을 끌고 다니는 세상에 이 얼마나 값진 환영인가. 고마웠다. 입구 한쪽에 마련된 휴게소는 무채색이었다.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모이신 노인들이었다. 아들딸이며 며느리며 사위 자랑이라도 좀 하시지, 회색조의 노인들은 지친 여름을 조용히 통과하고 계셨다.

 

 

번호표를 뽑을 것도 없었다. 담당자는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어서 오시라며 산뜻하게 맞아주셨다. "김치인데요. 김치를 어디 보내는 것이 처음이라서요. 이렇게 해서 보내도 될까요?" "아, 김치는 모두 다 그렇게 보냅니다. 잘하셨어요. 여기 올리세요." 택배 후 담당자의 친절도를 묻는 사후 전화 확인이 부활하면 참 좋겠다 싶었다. 친절도가 백 점이셨다. 우체국 등원 일 처리는 순식간에, 거침없이, 매끄럽게 해결했다. 나는 능력이 참 대단하구나.

 

 

자, 이제 도서관이다. 얼마 만인가. 아이 어릴 적에 ‘참 교육은 책 읽기로부터!’라는 메시지를 생활화하여 살던 때, 몇 번 들렀던 기억이 있는 시립도서관이었다. 내가 원하는 책을 이곳에서야 찾았다며 당당한 모양새로 대여해와서 내 앞에 대령하던 ‘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에게는 ‘도서 대여 연기’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쓰레기 분리 수거'를 전 세계인 중 가장 잘하고 효과적으로 하는 사람 순위에 적어도 10위 안에는 들 사람이다. 지킬 것을 확실히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사실 두 권의 책 모두 끝까지 읽지 못한 상태였다. 잔뜩 기대했던 두 책은 의외로 내게 커다란 탐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역사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세상이 두 책의 내용이었다. 나는 나의 역사를 타민족의 기록 속에서 들춰보고 싶지 않았을까. 쭉쭉 읽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반납하려고 하니 또 아쉬웠다. 인간. 내가 택한 방법은 도서관에서 마저 읽은 후에 반납하자는 것이었다.

 

 

도서관 정문 입구로 들어선 순간 ‘쏴와와 와~’ 냉기가 훅 불어와 내 이마에 실내 상황을 전달했다. ‘아이고. 겉옷을 준비하지 않았구나. 읽어야 할 내용이 제법 되는데 냉한 실내에서 긴 시간 읽는 것은 무리이다. 정원으로 다시 나왔다. 그늘에 숨은바위 벤치에 앉아 비평서를 읽었다. 제국의 힘에 무너진 근대 이후 멕시코의 현대사(1990년대 즈음까지)를 짚어보면서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우리 민족과 피차일반의 역사이다(현재 상황은 확연히 다르지만). 다음은 시집이다. 역시 멕시코인의 시다. 우리나라 7, 80년대 시인들의 시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물론 라틴 아메리카 쪽이다 보니 자연환경이며 문화가 우리와는 상이하다. 유럽 몇 나라와 얽힌 언어, 앞뒤 분간 없이 스민 서양사상과 멕시코의 신화, 짙은 종교색 등의 표현 방법이며 문장에서 풍기를 분위기는 낯설었다. 시라는 것은 한 낱말, 한 구절, 한 문장들을 씹어 삼키면서, 깊은 되새김질의 과정을 거쳐 온전한 전체가 일구어낸 조화 혹은 일탈, 저항을 읽어야 한다. 우르르 달려드는 여름 태양 볕 아래 민낯의 내 두 다리를 응큼하게 염탐하는 개미들과 함께 소화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실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안내판을 읽었다. 1층은 어린이실, 2층은 무엇, 3, 4층은 무슨 무슨 실. 구조화된 실내 안내판이 시각적인 효과를 한껏 드러내며 나를 이끌었다. 드디어 열람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우체국만큼이나 한산했다. 열람실 앞까지 내가 본 사람의 모습은 딱 셋이었다. 성인 남자 셋!

 

 

‘성인’이었을까? 아니면 ‘어른’이었을까. 어쨌든 들어서기 전 내가 확인한 열람실 문패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다 자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조용히, 마음가짐은 단아하게, 마치 신전에 제를 드리러 들어서듯 엄숙하게, 용모 단정의 면도 살펴서 뽕머리의 뽕도 가운데로, 정중앙이 되게 매만지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고요했다. 긴 시간 죽자 살자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므로 출입구 쪽에 앉기로 했다.

 

 

‘시’를 읽어야 하므로 입구 첫째 줄은 좀 아니다 싶었다. 출입의 산만스러움에서 거리를 둘 수 있는 둘째 줄로 들어섰다. 내가 아는 한 ‘시’는 조용한 곳에서, 고상한 모양새로, 조금은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읽어야 한다. 사람 고집 추스르는 것은 절대로 일시에 해낼 수 없다. 불쑥 든 생각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나를 지배해 온 권력이다. 더군다나 오늘 내가 읽을 두 작가는 ‘니체’와 ‘프로이트’ 쪽이다. 고단수의 철학 쪽을 기웃거려야 할 수도 있다. 한쪽 구석으로 들어가서 심각성도 삼키면서 조용히 진지하게 읽고 혹은 쓰면서 읽어야 한다. 감히 시를 읽는데 아무 곳에서나? 그것은 아니지.

 

 

둘째 줄 구석으로 들어갔다. 흘끗 창 너머 훔쳐본 뷰가 괜찮았다. 난해한 구석을 만나면 잠깐 잠깐 뷰에 취해 머릿속을 느슨하게 풀어낼 수도 있겠다. 두 권의 책과 한 권의 내 다이어리, 몇 년째 내 일상을 담고 다니는 대형 백, 휴대폰을 책상 위에 놓았다. 온통 검은색 천으로 몸을 감싼 여자는 선글라스를 낀 채였다.

 

 

의자를 반쯤 꺼냈을까. 네 번째 줄에 앉아있던 열람실 이용자가 나를 바라봤다. 내게 강한 직선의 눈길을 보내왔다. ‘에구머니나, 왜 하필 이때 아는 사람을 만난담. 이 역사적인 도서관 입실 일에, 더군다나 진지하게 독서를 해야 할 판에 아는 사람이라니. 나 원 참. 가는 날은 정말 장날이구나. 조상님네들이시여. 맞힐 것을 좀 맞히시지, 어쩌자고 이런 날!’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누구더라. 내 또래였다. 혹은 바로 아래 후배?

 

 

‘그냥 앉아? 모르는 채 해? 점심시간도 다 되어가고, 어서 읽고 반납하고 집에 가야 하는데 이를 어쩐담?’ 열람실 이용자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이쿠. 된통 잡혔구나. 에고, 좀 넘어가지. 공부하러 왔을 텐데 왜 저렇게 아는 사람 태를 꼭 내려고 할까.’ ‘선글라스, 이것을 벗고 인상을 좀 쓰면서 앉아? 대개 요란스러운 사람이네. 그냥 좀 넘어가지. 정확히 누군지 기억나지도 않는데.’

 

 

확실한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내 거부감은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났을 텐데 나를 바라보는 열람실 이용자는 더더욱 뚜렷한 자세에 확고한 시선을 실어 나를 쏘아봤다. 보자 보자 하니 제법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보는 듯싶었다. ‘이것, 그냥 나간다? 그냥 대출 연기를 해?’ 함께 사는 ‘또 한 사람’이 낼 화 정도야 내 알아서 반납하겠다고 우기면 될 터인데 뭐 어쩌나 싶었다. 저번에 내 사는 쪽 도서관에 물으니 반납이 늦어진 날만큼 대여 가능일이 늦춰지는 것이니 더 읽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본 기억 ‘그냥 나가, 아니면 그냥 앉아?’ 생각과 함께 동시에 오른쪽 눈을 내리깔고 책상 위에 올려진 책 표지의 문구들을 확인하였다. 뭔가 대여 규칙을 읽은 기억이 언뜻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여 연기 불가’라는 글귀가 읽혔다. 길은 하나. 앉아 읽자. 더는 대꾸하지 말자.

 

 

의자를 모두 꺼냈다. 선글라스 안이지만 두 눈을 야무지게 내리깔았다. '나를 터치하지 말라. 당신과 나의 인연은 오늘로 끝이오. 이런 좀스러운.' 약 1mm 정도의 틈이 존재할 뿐이었다. 의자와 내 엉덩이 사이, 틈의 너비를 말한다. 세상만사 그러하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만 '틈새'야말로 자기 너비의 힘을 내세울 때가 몇 별개로 존재한다. 굵은 남자 소리가 들렸다. 음성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나이는 삼십 대 후반 혹은 사십 대 초반이었다.

“저요.~”

단 한 치의 간격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리의 들려짐과 동시에 내 엉덩이는 쑥 들어 올려졌다. 목소리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저 뒤에 가시면요.”

‘저 뒤? 저 뒤라니. 내가 여기 앉겠다는데, 오늘 읽어야 할 내용과 내 상황을 고려하여 앉은 것인데, 뭐, 저 뒤에. 왜? 왜 내가 뒤로 가야 함?’

“저 뒤에 가시면요?”

“아니, 왜 뒤로 가야 하~”

“아니요. 저 안쪽 복도로 쭉 들어가시면요. 여자 열람실이 있어요. 여기는 남자 열람~”

신의 기운을 받았다. 신은 꼭 이런 때에 필요하다. 신기의 속도로 책상 위에 널어놓은 짐들을 빅백에 쑤셔 박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여자, 단연코 1위였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상대방의 행동과 언어에 대한 ‘의미 확대 재생산력’은 유네스코에 헌정해야 할 정도였다.

 

 

아름다운 날이었네 2

 

 

여자 열람실로 자리를 옮겨 두 시간 넘게 책을 읽고 나왔다. 다이어리에 미니 일기도 썼다. 다이어리에 ‘역자 후기’에 언급한 시를 열 편 넘게 베꼈다. 책을 반납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1년 정기적금통장도 개설했다. 최근 집 앞으로 옮겨 온 은행이 서식지 이주 기념으로 고금리(?)를 적용하여 한정 판매한다는 소식을 읽은 바 있다. 첫 회분을 이체하면서 ‘해외여행 목적’이라는 주제를 달았다. 20년 산 김장김치를 꺼내 되나 깨나 가위로 잘라서 만두 떡국에 얹어 먹은 아점도 참 맛있었다. 휴가가 끝나기 전에 니체를 읽어야겠다.

 

 


이 글에 앞서 그림 하나 또 올렸다. 나의 남친을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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