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김훈 선생님과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 아무 말 없이 라면만!
22.8.19.
그림을 그리면서 유튜브를 듣는다. 요즘 KBS '홍사훈의 경제쇼'에 재미 붙였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자 구글은 뜬금없이 '~의 뉴스쇼'로 연결한다. 아하, 느닷없는 것이 아니구나. '쇼'라는 글자 때문이었구나. 알고리즘 작동에 헌신적인 구글의 야무진 소행이렸다. 여자 진행자이다. 몇 번 들은 듯도 싶은 목소리이다. 내용을 모두 듣고서야 확인한 진행자는 김현정이다. '김현정의 뉴스쇼'. 며칠 지난 내용인 듯싶다. 초대 손님이 있었다. 소설가 김훈 선생님이시다.
소설가 김. 훈. 그를 존경한다. 신작을 발간하셨단다. <하얼빈>. 안중근 의사의 청년 시절, 그의 생 마지막을 쓴 것이란다.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후 무려 50년이 지나 쓰실 수 있었단다. 일본 경찰관이 안중근으로부터 받은 신문 조서를 젊은 시절에 읽고는 꼭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신 후 50년. 안중근의 청춘을 읽고 선생님의 고단한 청춘 시절(신문사 입사 시절, 유신 시절)에 꼭 써 보고 싶으셨단다. 함부로 운신할 수 없었던 김훈 선생님의 청춘 시절, 늘 안중근의 글을 떠올리면서 '빛나는 이 청년의 삶'에 감동받으셨단다. 휴가 끝나기 전에 읽고 싶다. 신작이라는데 도서관에 비치되었는지 모르겠다. '또 한 사람'에게 대여 명령(?)을 주문해야지.
<칼의 노래>, <현의 노래>, <흑산>, <자전거 여행>, <남한산성>, <라면을 끓이며> 등. 떠올려보는 책들마다 매번 밑줄을 긋다가 그만 멈췄던 기억들이 또렷하다. 밑줄을 그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남한산성>은 베껴보려니 했는데 욕심 뿐이다. 어쨌든 미어 터지는 책장을 떠들어보면 김훈 선생님의 책이 아마 열 권은 넘을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꼭 있어야 할 것만 있는', '정갈한' 문장에 매료되어 책을 놓을 수 없다.
'꼭 있어야 할 것만 있는' 문장으로 글을 쓰는 것은 나의 가장 큰 소망이다. 많은 작가의 글쓰기 안내에 등장하는 조언이라서가 아니다. 능력은 부족한데 욕심만 꽉 찬 나의 문장은 늘 산만하다. 나의 명사들은 홀로서기를 하지 못한다. 늘 형용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나의 문장 속 명사, 형용사, 동사들은 각자 임무를 단단하게 수행하는 데에 서툴다. 늘 부사들의 간섭이 필요하다. 낄 곳, 안 낄 곳을 모르고 삽입되고 낱말들은 꾸역꾸역 자기 자리를 수성하느라 피곤하다. 비비 온몸을 꼬아가면서 각자 지닌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요란하다. 허우적대는 긴 문장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데 쉽지 않다. 김훈 선생님의 문장을 읽으면 나는 그만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존경한다.
'꼭 있어야 할 것만 있는', 김훈 소설 문장의 뛰어남을 드러내는 이 구절을 한 낱말로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낱말을 떠올렸다. '깨끗하다', '깔끔하다', '청결하다', '단정하다', '바르다', '정갈하다', '단아하다', '경건하다' 등. 김훈 선생님의 문장을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는 낱말을 찾고자 하였다. '정갈하다'를 택했다.
'정갈하다'와 '깔끔하다'가 마지막까지 맞붙었다. '단아하다'와 '경건하다'가 함께 견주었다. '단아하다.' 언어 습관 때문인지 '한복'이 떠올랐다. '경건하다.' 현실을 벗어나서 초월적인, 종교적인 이미지들과 자칫 외양의 강조, 권위적인 상황에 연결된다 싶어 제외하였다. 판단과 결정이 쉽지 않았다. 김훈 선생님의 소설 속 문장들의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낱말로 어떤 것이 좋을까.
인터뷰를 들으면서 4B연필을 입에 물고 휴대폰의 화면을 크게 키웠다. 모자를 쓰신 선생님의 모습은 늘 그대로이다. 일흔다섯이시라는데 내 눈에는 아직 오십 정도로 보였다. 그의 얼굴이 곧 그의 문장인 듯싶었다. 참 선한 얼굴이시다. 사전을 열었다. '깔끔하다'는 '솜씨가 야물고 알뜰하다'가 제2의 의미로 붙어 있었다. 아, 이것이다. '깔끔'이다. 야물고 알뜰한 솜씨는 선생님의 문장 구성과 내용을 동시에 안고 있는 낱말일 수 있겠다. 말하자면 '음과 양', '외양과 내실', '적과 흑' 등 양면을 모두 다지고 있다는 생각에 제대로 찾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결정을 위해 '정갈하다'를 열었다. '정갈하다'는 '깔끔하고 깨끗하다'라는 의미 해석을 달고 있었다. 야문 솜씨, 알뜰함의 의미를 안고 있는 깔끔함을 담고 있으니 그렇다면 '정갈하다'이다. '정갈한' 김훈 선생님의 새 문장들을 읽을 수 있다니 미리 행복하다.
'포수', '무직', '담배 팔이'라는 낱말이 선생님이 소설을 쓰는 내내 등대 역할을 했단다. 멀리서 빛나는 등대처럼 작가를 인도했단다. 안중근 선생님은 포수셨고 무직이었으며 '이토 히로부미 사살'에 함께 움직였던 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담배 팔이. 선생님은 위 세 낱말은 외부의 세력에 의지하지 않은 진정한 청춘의 언어라고 하셨다. 두 분은 조서로 확인한 바 우물우물 사건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단다. 우덕순도 안중근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자유로이, 내 개인 의지로 한 것 뿐이라고 조서에 답했단다. 나는 조선 국민이고 젊은이이며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를 꿋꿋이 말하는 두 분의 신문 조서 내용에 진정한 청춘을 읽을 수 있으셨단다.
선생님은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의 너무 다른 '동양 평화론'을 이야기하셨다. 이토 히로부미는 봉건을 근대화하고 문명화하고 서구화로 개화시켜 약육강식 하에 동양 여러 나라를 일본 아래 무릎 꿇게 하는 것이었다. 안중근은 동양 각 나라들이 자율적으로, 서로 도우면서 평화로운 상황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 안중근과 우덕순은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 '이토가 온다는데 우리 죽이러 갈래?' '그래 가자.' 거대한 담론이나 거창한 계획이 없이 바로 '가자', '우리 이토를 죽이러 가자'고 나선 두 청춘의 아름다운 선택을, 빛나고 아름다운 서른 한 살의 청춘을 적으셨단다.
세 갈래의 길이 만나는 하얼빈.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안중근과 우덕순. 그 시간 하얼빈으로 오는 이토. 황해도에서 기차를 타기 시작하여 압록강을 건너서 아들들을 데리고 오는 안중근의 아내. 이 세 길의 접점이라는 의미를 크게 두고 '하얼빈'을 제목으로 쓰셨단다. 물론 편집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선생님이 올린 제목 '하얼빈에서 만나자'는 탈락했다고. 제목 '하얼빈'은 단 세 글자로 무정하고 단호한 언어이면서 명징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비극적인 아내의 길, 운명을 안고 가는 안중근, 야망을 불태우러 오는 이토의 '하얼빈'을 말씀하셨다. 영웅 안중근이 아닌 청춘 안중근을, 총을 쏘아 이토를 사살하는 거사 중심의 안중근이 아니라 할 일을 다한 듯 묵묵히 죽음에 임하는 안중근 태도가 소설의 중심이라고 하셨다. 인간 안중근의 모습, 총구를 쥔 자의 흔들림, 쏘고 나서 환희보다 혼란을 느끼는 안중근. 그러나 자기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안중근. 선생님은 안중근은 성공했다고 말씀하셨다. 이 거사의 핵심은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동양 평화론을 주장하는 것이었는데 서방 언론의 양심있는 기자들은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했기에 성공한 삶이었다고. 어서 <하얼빈>의 안중근을 읽고 싶다. 고마운 김 훈 선생님!
선생님은 책 한 권을 끝내면 다음 작품은, 고된 노동은, 다시는 안 하리라 하는데 곧 또 하게 된다고.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어쩌면 나는 또 '책을 사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주문을 염하면서 나의 단골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사이트를 열지도 모르겠다.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어야 하므로. 김훈 선생님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라면만!
이 글에 앞서 오래 전에 그려둔 모작 하나를 올렸다.
제목은 '도끼날이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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