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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배워야지 - 뜨개질을 배우리라, 올해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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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야지 - 뜨개질을 배우리라, 올해 안에!

 

 

 

 

무료 사진 사이트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많은 것을 배워왔다. 공부해야 산다. 배워야 산다.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배워 익히고 생활화를 한 삶의 주제가 '배움'이다. 새벽녘, '으흠'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방문 밖에서 들리면 재빨리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책. 책. 책. 오직 책을 친구 삼아 사는 사람이 참삶이다. 부모님의 요청에 걸맞게 책과 함께 살게 되었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에 욕심이 많다.

 

성별에 따라 적합한 일이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되던 시기를 살아왔다. 그에 상관없이 배움의 열정을 불태웠다. 목공 작업을 배웠다. 사포질로 나무의 겉면을 부드럽게 다듬고 난 후 온몸으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촉감은 굵은 동맥에 흐르는 피를 생기 있게 달군다. 톱질하세, 톱질하세, 흥부전을 열심히 읽어서일까. 가늘디가늘지만 오른 다리에 힘을 가득 실어 나무판을 고정한다. 두 손에 강한 정신력을 투입하여 온몸으로 치러내는 톱질로 내 원하는 너비의 판을 추려낸다. 깔끔한 마무리는 목욕재계 후 느끼는 영혼 정화와 맞먹는다. 못을 박아 판과 판을 연결할 때면 못질에 따라 생성되는 리듬과 가락으로 즐겁다. 못질을 할 때면 나는 리듬과 가락을 창조하여 연주한다. 줄눈을 세는 작업까지 접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도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나무 냄새에 푹 빠져 있을 것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심이 특별한 목수 연필을 귀 뒤에 꽂고.

 

페인트를 칠하는 것도 참 좋아한다. 올해 초 내 일터 공간이 너무 지저분하다 싶어 돌아보니 벽면 페인트가 문제였다. 본부에 페인트를 사달라고 주문하였다.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얼마든지 사 드릴 것이다. 그런데 일손이 없다. 어떻게 칠을 할 것이냐. 인상 찌푸리고 서서 예산 담당이 사선을 겹으로 쏘아대는 눈초리로 물음표를 드러냈다. '걱정 말라. 내가 하겠다. 내가 일 년을 살 공간이다. 내가 칠하겠다.' '엥? 페인트를 칠하겠다고요? 어떻게요? 큰 대 자이 근육을 자랑하는 우리네 남성들도 쉽지 않은데 어찌 가냘픈 당신이 페인트를 칠하겠다는 것이오? 더군다나 이 넓고 높은 공간을. 벽면 저 위까지요?' 내 답에 문장으로 된 대응은 차마 내뱉지 않았지만 황당함을 숨기지 않았다. '천정은 빼고 벽은 모두 칠할 것입니다. 주문에 맞게 페인트를 사주십시오.'

 

거뜬히 해냈다. 1년을 여러 사람이 거칠게 사용할 공간의 벽면이니 굳이 젯소 바탕을 칠할 필요는 없었다. 내 눈을 위해 시력에 좋은 색상으로 두 개의 페인트 색을 만들었다. 1차 작업으로 롤러 페인팅을 마치고 넓은 납작붓으로 2차와 3차를 한꺼번에 마무리하였다. 신났다. 마스킹 테이프도 붙이지 않았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 자를 대고 선을 그은 듯 반듯하게 해냈다. 페인트를 내놓으래서 준비해 줬지만 과연 해낼까 싶었는지 현장 조사를 하러 올라오신 예산실 쪽에서 말씀하셨다. '직업을 바꿔도 되겠네요.'

 

목공일이며 페인트칠하는 것을 이렇게나 잘 해내는데 사회 통념상 거뜬히 해내리라 생각되는 일을 배우지 못한 것이 있다. 뜨개질이다. 오늘 오후에 본 영화 속 주인공이 머플러를 뜨개질하였다. 드넓은 바다를 앞에 두고 푸른 바닷가 모래밭 나무 의자에 앉아 빨간색 털실로 뜨개질을 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참 단아한 모습이었다. 이 영화 곳곳에서 감독은 등장인물들을 마치 설치작품처럼 자리하게 하는데 특히 뜨개질을 하는 모습은 예술이었다. 배우고 싶은, 배워야 한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왜 나는 뜨개질을 배우지 않았을까, 배우지 못했을까. 어쩌다가 이런 비상식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인가. 바느질은 참 즐겨한다. 가끔 맞지 않은 옷이 있으면 좌악 뜯어내 새 옷으로 변형시켜 입는 것도 즐긴다. 한때 몬드리안의 구성 작품에서 생각을 얻어 컵받침 등 거실 탁자 위 물건 받침을 조각 헝겊 잇기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가끔 바느질로 미술 작품도 만든다. 고등학교 가정 시간이었던가. 바느질로 종이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곱게 만들어 'A뿔'의 훌륭한 성적을 받기도 했다. 

 

'사랑도 내리사랑, 배움도 내리 배움'이라는 말이 있던가. 없다면 지금 만들어 사용하기로 하고. 이상하게 우리 집 여자들은 뜨개질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바느질만 하셨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어머니의 바느질 패션 작품을 입고 하늘을 얻은 듯 기뻤던 날이 있었다. 천을 떠 와 직접 틀질을 하셔서 만든 내 원피스는 옅고 짙은 파랑, 크고 작은 동그랑땡 무늬가 춤추고 있었다. 언니들도 뜨개질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하긴 딸 넷 중 저 위 둘은 나이 차가 너무 많아 함께 산 적이 없다. 바로 위 언니야말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했으므로 뜨개질도 할 법한데 아니었다. 

 

올해 겨울에는 나도 배우련다. 뜨개질을 배우련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배워서 가장 간단한 겨울 머플러를 짤 것이다. 아직 덜 늙어서 여전히 '선호하는', 즉 'my favorite'가 꾸밈말로 작용하는 문장을 사용한다. 'my favorite color'가 'deep purple'이다. 진 보라빛 따뜻한 털실로 온몸을 감쌀 수 있는 머플러를 짜서 누구에겐가 선물을 할 것이다. 영화 속 한 아씨의 말처럼 공기까지 함께 떠서 선물하리라. 

 


 

영화 '안경'을 보고 나서 나를 돌아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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