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MBTI' 성격 검사 결과는 'INFP'였다.
솔직히 말하건대 관심 없었다. 모임에 가면 들먹여지곤 하는 이 검사, 'MBTI'는 내 관심 밖이었다. 가름한다? 아니 가늠하다가 어울릴까. 인간의 성격을 측정해본다? 복잡 미묘하기 그지없는 인간은 정해진 틀에 맞춰서 검사하고 판단하고 그에 따라 판명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Myer Briggs Type Indicator. MBTI. 어쨌든 나는 '검사'라는 것에 정이 가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검사로 인하여 억하심정이 된 적이 있다든지 억울 지경을 당한 적은 없다. IQ는 저 위에 있어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불신이었다. 검사뿐만이 아니다. 이런저런 측정기준을 만들어 사람 혹은 사람일에 이것저것을 갖다 대어 재고 마르고 측정하는 짓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인간사, 당연지사. 되는 대로 살고, 가는 대로 가고, 먹는 대로 먹고, 입는 대로 입고, 그리하여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뭐 있겠나 싶다. 억지 춘향 격인가 싶은데 아니라고 여긴다. 꿋꿋하게 주장하고 싶다. 그냥 살기에도 바쁜데 말이다. 규칙에 얽매임 없이 고스란히 자기 힘 쏟아가면서 살아가는 것도 힘들다. 들이미는 기준이며 분류이며 규칙이라는 잣대들에 정머리가 떨어지기도 했다.
젊은 세대들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나누는 MBTI 등의 성격 검사들에 대해 나는 빈 웃음을 날리면서 적당히 참여하였다. 'E'니 'I'니 환한 웃음 깔깔거리면서 평소 서로에 예측 성격을 짚어보는 것을 얼마나 재미있어하는지 가끔씩 부럽기는 했다. 잠깐씩 함께 살아내기 위해서는 MBTI 대열에 끼는 것이 필요하나 싶어 흔들리기도 하긴 했다. 재미 삼아 할 수도 있으리라. 허드레 작업 삼아 한번 해보기는 해야겠다 싶기도 했다.
결국 하고 말았다. 전문가가 일터에서 하는 강의에 나도 끼었다. 일단 평소 내 성격대로 진지한 참여였다. 검사라는 것은 읽는 즉시 동하게 하는 것을 표시해야 한다는 것을 익히 들어왔다.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딱 한 번씩만 읽고 표시했다. INFP였다. 외향과 내향, 에너지의 방향에 대한 검사에서는 'I'가 완전했다. 인식 기능은 'N'이었다. '감각'이 아닌 '직관'이었다. 판단 기능은 '사고'가 아닌 '감정'이었다. 생활양식은 '판단'이 아닌 '인식'이었다.
세 분야는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왔다. 인식 기능은 아니다 싶었다. 오감을 통한 사건이나 사실을 잘 인식한다 하는 'SENSING'이다 싶은데 '사실, 사건 이면의 의미, 관계, 가능성을 인식하는 쪽이라 판명되었다. 나, 참여자는 자기 육신의 오감이 만나는 세상사에 대한 감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안다. 그런 자기감정의 소중함을 팽개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INTUITION이 뜻하는 '직관'은 영 거리가 멀다 싶었으나 프린트물에 정해진 규칙은 사실과 사건 너머 펼쳐질 또 다른 뜻에 더 가까운 관심사를 지니고 있단다.
어쨌든 친절한 검사표에 적힌 분류표에서 나는 INFP 유형 속에 안착하였다. 이름하여 '잔다르크형'이라고 이름 지어져 있었다. 잔다르크? 내가 잔다르크형? 헛웃음이 나왔다. 전혀, 전혀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내가 어찌 저 역사적인 인물과 같은 유형의 인간일 수 있겠는가.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내향적이면서 그저 조용히, 나의 흔적일랑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것을 목표로 사는 내가 어떻게 잔다르크와 연결된다는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잔다르크' 형은 현세를 사는 인간 종족의 4%대라고 했다. 특이종이구나. 오호라, 내 혈액형이 지닌 특이성과 일맥상통하는구나. 이것, 장난처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가. 의문 부호를 양쪽 망막에 걸쳐두고 더 자세한 설명을 읽어나갔다. 일단 내 일이다 싶으면 후벼 파서라도 제대로 해내는 성격의 내가 아니던가. 성격 검사를 하는데 더더욱 내 나름의 성격을 잘 펼쳐야 하지 않겠는가.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MBTI 성격검사 중 'INFP' 유형, '잔다르크형'의 부주제였다. 나의 철없는 야망에 연결선을 그어도 무방하다 싶었다. 과묵하다, 부드럽고 사색을 한다, 호기심이 많고 공감을 잘하고 온화하고 헌신적이다, 창의적이고 인정이 많고 적응을 잘한다. 낱낱이 파헤쳐 보자. 과묵하다. 우후후 후후. '과묵'에는 '침착'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나는 결코 침착하지 못하다. 어중이떠중이 격으로 늘 생각하다가 흐리멍덩하게 끝나고 마는 소심함이다. 대표 낱말 한 가지가 잘렸다. 부드럽고 사색적이다, 이는 그렇다 치자. 나이 먹을수록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우선 부드럽게 사람을 대하랬다. 내 선배의 처신 방법이었다. 젊을 적 그녀의 질기고 딱딱하고 맺고 끊고 하던 것이 사라졌다. 모든 이들이게 온화했다. 나도 닮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색적이다, 뭐, 늘 혼자인데 사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당히 맞다. 한 낱말을 또 주워 담았다. 호기심이 많다, 공감을 잘한다, 온화하다, 헌신적이다. 이 네 문장은 모두 맞다. 매사 궁금하다. 능력 부족이며 노쇠한 세포들의 시위로 모두 채우지는 못하나 나의 만사에 대한 궁금증은 호기심이 발단이리라. 공감? 나의 전문적인 직업은 '공감'하지 않으면 한 시도 지탱할 수 없다. 하여 나는 공감을 썩 잘한다. 온화하고 헌신적이다. 여기에도 내 직업의 특수성이 작용하리라. 낙락한 표정을 인위적으로라도 지어야 하고 내 몸 바쳐 최선을 다하리라는 심보가 없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특성을 내 직업을 지니고 있다. 하, 그러고 보니 딱 한 가지만 빗나갔다. 과묵하다만 내 성격에서 탈락했다. 내가 판명했다. 왜? 내 일이니까.
그만하면 무난하다. 그래, 해볼 만한 일이다. 어울리는 직업을 보니 이것은 완전한 나를 꾸리고 있었다. '직업을 위해 학구적으로 지식을 습득한다.' 내 평생 책에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딱 맞다. 고개 돌려 '푸'하고 헤픈 웃음을 흘린 것도 기꺼이 고백한다. 왜? 이곳 블로그에서 자주 말한 듯싶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은 이제 내게 실루엣으로만 남아 있다.
고등학교보다 대학에서 일을 잘 해낼 수 있단다. 오, 이것도 딱 맞다. 나의 이상이다.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다. 뛰어난 소설가 등 문학 분야의 직업에 어울린다.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싶은 일이다. 교수, 건축가, 정신과 의사 등 나의 관심 분야이다. 건축가에 어울린다고?라고 묻고 싶은가. 나, 이래 봬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기하학을 제대로 살린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며 곡선의 미학을 상징하는 스페인의 가우디며 제주 방주교회에 노아의 방주를 살린 아타미 준까지 흠모까지 하는 건축가들이 제법 있다. 자연을 그대로 살려 건축하기로 유명한, 진짜 좋아하는 어느 건축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문제지만 말이다. 전주에 있는 상산고등학교 운동장 한쪽의 바위들이 자연을 그대로 살린 응원석 겸 학생들의 휴식처라는 것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나, 이래 봬도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다. 물론 이어진 직업 속에는 '목사'며 '성직자'도 함께 있었다. 이것은 아니다.
강사 선생님의 설명 끝에 참여자들을 향한 질문이 던져졌다. 그들에게 '나'의 성격 유형을 맞혀보라고 하셨다. '이분은 어떤 유형일 것 같나요?' 오, 내 일터에서 함께하는 이들 중 몇이 나의 MBTI 성격 유형을 정확히 맞혔다. 'INFP요.' 아, 나는 감탄사를 대여섯 번이나 읊었다. 놀람과 아쉬움이 함께 묻어난 탄성이었다. 'ISFP'라고 말해주기를 바랐을까. 이런.
'INFP' 유형에 잔다르크가 연결된 것은 칼 융의 심리 유형서 잔다르크를 '내향 감정형'으로 분류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잔다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배우자와 가족 관계 등의 해석도 참 재미있었다. 그토록 웃기는 일이라고 제쳐두었던 일이 해보니 또 해볼 만하더라.
내일은 상을 치르러 간다. 여전히 직장에서는 '코로나19'가 생존 중이어서 발인에만 참석하기로 했다. 아침 일기를 쓸 수 없겠다. 저녁 일기는 써야 할 텐데. (일터 동료 한 분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나는 당연히 그분과 가까이서 생활을 했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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