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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나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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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 있을까.

 

 

젊을 적 내가 쬐끔 보여서 가져온 사진 - 출처: 픽사베이

 

 

퇴근길을 왕복했다. 말하자면 오늘은 출근길을 한 번 가고 퇴근길을 퇴근길, 출근길, 퇴근길의 쓰리 쿠션을 찍었다는 것이다. 골인 지점은 물론 우리 집. 

 

퇴근길, 늘 들먹이는, 일터에 충성 혹은 일터에서 최고의 무능력자인 나는 어제도 일터 근로자 중 가장 늦게 퇴근하던 중이었다. 일터와 내 집 사이 중간 지점을 걷고 있던 즈음, 대형 평수로 구성된 유명브랜드 아파트의 건너 위치한 미니 공원에 막 들어서려던 때였다. 순간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다니는 길, 즉 미니 공원 입구의 휘황한 색깔을 입은 벤치에 세 사람의 노인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벤치는 내가 걸어야 할 길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그 길을 걸어가면 손을 굳이 뻗지 않아도 노인들이 나를 붙잡을 수 있는 가까운 위치였다. 이럴 때면 나는 벤치 옆을 걷기가 부담스러워 사잇길을 통하여 공원으로 들어선다. 미니 공원 벤치에 사람이 앉아 있으면 사이사이 나 있는 오솔길이 나의 길이 된다.

 

어제 점심 후 커피 물을 조정하려던 내가 식사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그가 앉아 있는 우리 팀 휴게실에 들러 딱 한 마디 문장을 던졌다. 일터 내 옆방 우리 팀 한 부서의 팀장이었다.

"3일 연휴 뭐 했어요?"

"비가 와서 3일 내내 집에 있었어요."

"에구머니나, 아이들 많이 서운했겠네요."

바로 옆방인데도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이것이 전부였다. 사적인 내용이었다니 대단한 행사였다. 일터 우리 팀은(대부분 팀이 그러하나 우리 팀은 더더욱~) 업무상 이야기를 나눠야 할 일이 없으면 단 한 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는다. 

 

 

 

진정 돌아가야 할까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큰길과 오솔길 중 어느 곳으로 진입할 것인가를 순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퇴근하셨어요?"

그였다. 그가, 일터 내 옆방 동료, 오늘 딱 세 마디를 주고받았던 그. 그가 내게 전화를 넣어왔다.

"아, 지금 퇴근 중입니다."

'에구, 진즉 퇴근했다고 해야 맞는데.'

"저기, 그것 있잖아요? 오늘 제출하기로 한 거요. 하셨어요?"

"예. 그대로요. 우리 오후에 모두 모아두었잖아요. 그대로 제출했는데요. 무슨 일이지요?"

"아, 저 위 총책임자가 전화를 해 왔는데요. 우리 팀 제출물 중 4번 팀 것이 없다고 해서요."

"어, 이상하네요. 쌓여있는 그대로를 제출했는데요."

"예. 알겠습니다."

 

올해 들어 그와 나눈 최장 시간의 대화였다. 

'내일 봐요.'

어이쿠, 한 마디라도 좀 더하지. 어쩌면 이런 사람이 있을까. 그럼 너라도 하지 그랬냐고 내게 던질 것이다. 당연지사. 나는 던지고 싶었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한데,

"그래요. 내일 봐요."

그는 내가 '그'라는 글자의 'ㄱ'자도 꺼내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내 마음은 즉시 요동쳤다.
'분명, 박스에 들어있던 그대로 제출했는데, 이게 뭔 일이람.'

아,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서류 어느 부분을 수정해야 해서 내 방으로 가져와서 내 것을 꺼내서 수정 절차를 밟은 것이 생각났다.

'그럼 수정하고 교체하면서 4번 팀 것을 내가 빼놓은 채 제출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제출물 제출과 관련하여 내가 했던 행동을 돌이켜보니 우리 팀 네 곳의 제출물을 분명 확인까지 하고 제출했던 것이 생각났다. 각자 해야 하는 싸인과 옆방 팀장이 해야 하는 싸인까지 확인했던 내 행동이 떠올랐다.

 

다시 가야 할까?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방향을 돌렸다. 내 집과 일터 사이 중간쯤에 위치하는 미니 공원 사잇길을 걷고 있던 나는, 우산을 돌리고 내 몸을 돌려서 다시 일터로 부지런히 걸었다. 쏟아지려는 나를 향상 독설을 재빨리 주워 삼키면서 열심히 걸었다.

'괜찮아, 뭐, 그랬다면 어쩔 수 없지 뭐. 늙어서 그러는 것 아니야. 요즘 젊은 사람들도 건망증으로 많이 고생들 하잖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집으로 걸을 때의 속도에 두 배 더 한 빠르기로 걸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대응하자고 마음다졌으나 쉽지 않았다. 몸이 내달렸다. 일터 앞 가게 아저씨의 눈초리가 눈에 잡혔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늘 늦을까. 모두 다 퇴근하고 한참 지난 시각인데,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길래 저렇게 질주하여 되돌아온담.'

 

다행히 일터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좀처럼 이용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달렸다. 내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팀이 쉬는 공간에서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 제출물이 어디로 사라졌는가가 분명 문제인데 늙은 내가 괜히 책임을 지고 제출한다고 했다가 그만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더 크게 다가왔다.

'늙은이가 왜 그 일을 책임져서 하겠다고 했을까.'

사실 내 일이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그의 반대편, 내 다른 쪽 방을 사는 이가 해야 할 일인데 갑작스러운 출장이라며 내게 맡겼던 것이다. 그이가 미워졌다. 어쩌자고 이 늙은이에게 그런 큰일(?)을 맡긴 것일까. 영리한 줄 알았는데 앞뒤 분간 못 하는구나. 젊은이들, 싱싱한 낯빛에 건강한 몸을 지닌 이들이 우리 팀에도 나 빼고 둘이 더 있는데, 어쩐다고 이 엄청난 책임의 일을 나한테 맡겼을까? 

 

내 방에서 그 문서 제출물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어쨌든 내 수중에, 내 일터 범위 내에 그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행인 거다. 일단 나를 벗어났다는 거다. 그렇담 최종 제출처인 본부의 앞 단계에 분명 문제가 발생했을 거다. 늙은 내가 사각 바구니에 모아서 담아 제출한 본부 그 이전 단계의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을 거다. 

 

슬프다. 나를 내가 믿을 수 없다니. 분명 내가 조금 전에 했던 행위이고 돌이켜보니 내 행위가 적나라하게 기억되는데 그런 나를 믿지 못해서 확인하러 간다. 예전 같으면, 후에 내 잘못으로 드러날지라도, 미안하다며 잠깐 정신줄을 놓고 사나 보다 하고 웃으면서 풀어버릴 것을 나는 혹 젊은이들에게 누가 될까 두려워 정확하지 않지만 내 잘못인 듯도 싶고 아닌 것도 같은 내 잘못을 정확히 확인하러 나선다. 내가 했던 언행을 떠올려볼 때 전혀 하지 않은 행동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지레 겁을 내고 있었다.

 

순전히 늙어서이다. 내 늙음의 여파로 젊은 사람들의 일을 거슬리지 않나 싶어 걱정되고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저 늙은이가'라고 할까 봐서 두렵다. 떳떳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한다. 내 소심한 성격 탓이려니 하면서도 진짜 나이 들어 살아갈 세상이 무섭다. 정신 바짝 차리자.

 


오늘 가서 확인해 보니 내 행위로 인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우리 팀 제출물을 모아서 제출하였으므로 우리 팀의 제출물을 받았던 동료가 우리 팀의 제출물을 검토해 보니 우리 팀 *번의 어여쁜 젊은이가 뒷면에 꼭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더란다. 하여 남은 세 곳의 제출물만 저 위로 제출하고 우리 팀 *번의 일을 오늘 아침에 제대로 하게 하여 올렸단다. 나의 조바심에, 나의 속 좁음에, 나의 소심함에 십자가를 그었다. 불경으로 색칠을 했다. 내 어릴 적 살던 곳, 내 고향에 있던 팽나무를 내 영 안에 모셔와 그 뿌리 아래 술을 부었다. 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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