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남아 일터의 오후 한나절을 살았다.
나 홀로 일터에 남은 오후를 보낼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아침이 편했다. 일터 사람들이 무리 지어 야외 모임을 하기로 했단다. 산으로 들로 봄꽃을 찾아서 친목을 다지러 가는 길을 마련했단다. 당연히 가야 하는, 함께해야 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어제 오후 퇴근길에 불참을 알렸다. 뜻밖의 알림이었는데도 나의 일탈은 전혀 일탈로 읽히지 않았다. 가볍게 접수되었다. 일단 마음이 무겁지 않아 좋았다.
오늘 뒤늦게 알게 된 같은 방 사람들은 한 문장 정도의 아쉬움을 표했다. 다행이었다. 잘 다녀오라는, 가서 봄꽃이 펼지는 무대에, 향연의 주인공들이 되어 잘 즐기라는 말로 함께 가자는 형식적인 물음을 고이 접었다. 하면서 나 혼자서 방황을 좀 하되, 일터, 잘 지키다가 퇴근하마고 답을 더했다.
사실은 어제 오후 갑자기, 나에게 사는 재미가 무엇일까라는 주제에 부딪혔다. 사춘기에 갓 입성한 소녀처럼, 찬란하게 공중을 수놓던 목련, 한순간인 듯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펑펑 울고 싶었다. 자기 몸도, 자기 마음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돌입하고 만다는, 진짜 사춘기 시절을 사는 소년처럼, 또, 순간의 도약인 듯 온 세상을 연분홍 봄 우주로 활짝 열어버린 벚꽃 무리에 취해 내가 봄인지, 사람인지, 봄이 봄인지 요정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놓인 듯싶었다. 그저 단체로 떠나는 꽃 잔치에 참여한다는 자체가 싫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냥 혼자서! 오늘 오후는 혼자서.
오전을 바쁘게 보내고 의례적인 점심을 먹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래, 나도 결국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랄랄랄라 봄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가뿐함이 한편 부럽기도 했다. 그저 그러려니,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이려니. 나는 왜 쉽게 넘기지 못하는가. 일상 어느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이들과 웃고 떠들면서 보내야 한다는 것, 그 어색함이 여전히 힘들다. 여전히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못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올바른,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나은 사람들이다. 단지 마음을 나누고 살지 않는 것뿐이다. 그럭저럭 어울려 살아내는 삶이 힘들다는 것은 사회성이 부족한, 못난 인간이랄 수도 있겠다. 나는 나를 잘 알기에 이를 인정한다. 하여, 한동안 오늘 무리 지어 함께 하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후회하기도 할 것이다.
저녁이라도 가서 먹을까 했으나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 합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그대로 서 있게 하고 싶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상황 속에서 내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살아왔는가를 새삼 생각해보고 싶었다. 수많은 세월, 늘 이런 상태를 반복하면서 살아낸 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멈추지 않고 살아냈다는 것. 지금 이 상태의 나를, 나의 속마음을 살피고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상태로 그 긴 세월을 버텨냈냐고. 어찌 죽지 않고 살아냈냐고.
나도 가끔 나 자신이 용하다. 둥개둥개 몸뚱이를 업어 달래주고도 싶다. 수고하고 있다고. 그래, 나를 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거침없이 내사랑, 나의 아이라고 외쳐대곤 했지만 가만 나의 호흡을 열어 살펴보면 내 안에 숨어있는 뻔뻔함이 한몫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는, 나는 참 염치가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누구 못지않게 또한 어울려 살아내고 있다. 무릇 사람 사는 삶이 그저 그렇지 않던가. 나도 모르게 그윽하게 묻혀서 살아내더라는 것. 살아지더라는 것.
오후 두세 시간을 나는 나로 살기도 또한 제대로 해내지 못하였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다음 주부터는 내가 맡은 업무 중 거금이 지원되는 사업도 시작해야 한다. 힘을 내자. 층층이 쌓인 일들과 거침없이 만나기 위해서는 악바리 근성이 필요할 때다. 나아가자, 또. 오늘까지 살아낸 것처럼 내일과 모레, 앞으로의 나날들도 또 살아질 것이다.
맞춤법을 위해 다시 읽어보는 글이 참 맛없다. 갑자기 가수 '코드 쿤스트'가 자선 판매장에 내놓았던 '이상한 거울'이 생각난다. 지금 그 거울 속 나를 좀 봐보고 싶다. 얼마나 정 없이 보일까. 얼마나 마른 주걱처럼 맥없어 보일까. 아, 얼마나 나의 생이 한심스럽게 느껴질까.
나는 가끔 나의 온 생을 그저 날수를 죽이는 것에 매몰되어 살아온 것이 아닌가 여겨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눈물을 삼키느라 바쁘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자기 한 몸 어찌하질 못한 채 두리번거리는 늙은 여자. 다행이라 여기자. 아직 내침을 당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다. 그냥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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