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소중함을 알아라. 있을 때 잘해라?
순식간에 나의 아침이 사라졌다. 어제보다 더 이른 시각에 일어났다. 밤새 난방을 켜놓고 잤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 눈을 떠서 이를, 밤샘 난방을 확인한 순간 얼른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어서 끄자, 이런, 아, 하,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아날로그 공책 일기는 썼던가. 쓴 듯도 싶고 그냥 잔 듯도 싶고. 그 와중에 지난밤 일기를 썼는지 떠올리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워낙 감쪽같이 사라진 밤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일 저런 일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거실 바닥에 나란히 선, 두 발바닥이 뜨끈뜨끈했다. 예민한 나의 수면 신경은 생각 없이 뜨거워진 기온을 못 견뎌 하는데 이번 주는 참 피곤했나 보다. 한밤중 한 시가 다 되어 들었던 잠을 다섯 시간이나 줄곧 잤으니 참 잘 잤다. 평생을 불면으로 사는 내게 다섯 시간의 통잠은 드문 일이다.
'어쩌자고 난방 차단을 하지 않고 자버렸을까. 이런, 남자가 또 난리겠군.'
우리 집 남자는 이런 성격 때문에 가끔, 아주 가끔 나에게 지청구(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를 듣는다. 밤샘 난방이나 쓰레기 분리수거나 비둘기가 낳아놓은 알을 꺼내서 버리기 등을 치르는 내게 언성을 높이곤 한다.
"아이고. 지금 지구 환경이 엉망진창인데 하룻밤 찬 기운을 못 견디다니. 더군다나 춘삼월인데, 이런 날 무슨 난방이 필요하다고. 밤새 난방을 켜두었군."
"거참, 양파 껍질은 쓰레기라고. 제발 좀 음식물에 함께 버리지 말라고."
"양파즙 봉지 말이야. 마시고 나면 좀 씻어서 내놓지?"
"거, 내놓은 옷 말이야. 그것 여러 번 입은 것 아니야? 혹시 쓰레기 봉지에 버려야 할 것들 아니야? 아무리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이런 옷을 입겠어?"
"비둘기도 좀 살라고 해. 오죽하면 우리 집에 와서 알을 낳겠어?"
내가 대응한다.
'아이고, 잊었소, 잊어. 깜박 잊었다고요. 워킹맘이 쉬운 줄 알아? 너무 피곤해서 그만 잊었다고요. 어쩌다가 하루 그런 것을 가지고 대개 난리네. 그리고 내가 그랬잖아. 난방 켜고 살고 아프지 않은 것이 낫다고 말이야. 나 몸 아파 병원 다니는 것, 정말 싫어. 나 냉동 신체를 달고 사는 것 몰라? 아픈 것은 당사자 아니면 아무도 몰라.'
'양파 껍질? 그것~, 아이고, 양파 껍질로 차도 우려내서 마시고, 육수를 낼 때도 넣는다고 해서 음식물 쓰레기로 또 헷갈렸네, 그럴 수도 있지.'
'아이고, 당신도 마시니까 당신 마신 봉지 씻을 때 좀 같이 씻어 말려서 버리면 안 되나?'
'엥? 그 옷이 어때서, 아마, 아프리카 여자 중 내 옷 입고 거리에 나가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갈걸? 내가 젊을 적 한 패션 했잖아? 쪼끔 의상이 오래된 것뿐이야. 멀쩡한 것이라고. 뭔 쓰레기야. 내가 늙어서 못 입어 내놓은 것이야. 오해하지 마. 나, 그런 사람이 아니야."
'엥? 비둘기 알? 세상에나, 녀석들이 왔던 처음 해에는 나도 잘 키웠지. 당신도 알잖아. 얼마나 내가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지. 새끼들 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날려 보냈던 것 기억 안 나? 근데 뒤처리 때 말이야, 당신 아무것도 안 했잖아. 장대비 내리던 날, 내가 빗속에 몸 내밀고 쓸고 닦고 했다가 크게 아팠던 것은 기억 안 나? 그때 생각하면 끔찍하단 말이야. 더는 못 해.'
나는 나의 남자가 '살림하는 남자(?)'가 된 이후 내게 퍼붓는 불평불만에 대해 속말에서 그친다. 큰따옴표를 입힌 나의 남자의 문장도 사실 입 밖으로 내놓는 적은 거의 없다. 그도 속으로만 생각을 품고 있지 내게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여 내게 어쩌다가 한 번 이런 유의 불만을 내놓으면 나는 그에게 어미가 자식에게 말하듯 '지청구'를 한다.
"아이고, 사람이 어찌 완벽함? 당신은 뭐, 완벽해요? 그리고 그렇게 노상 따져가면서 산다고, 뭐, 우리에게 보탬이 되는 것 있어?"
이런! 어쩌다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담? 오늘 쓰려던 글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위 내용의 글로 흐른 것은 오늘 아침 일기를 시작하던 때의 생각이 아니었는데. 오늘도 이곳에 들어오면서 동시에 보게 된, 어제 올린 내 글에 올려져 있는 댓글들 몇을 읽고 말았다. 어제 내 방문에 대한 답글이 장문으로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내가 지난밤 자정이 다 되어 올린 글들은 잘 읽지 않는다. 바쁘게 써서, 혹은 아침 일기 글을 재빨리 편집하여 올린 나의 글은 다시 읽으면 참 부끄럽다. 한데 댓글은 제법 읽는다.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것 중 늘 정성 들여 주시는 댓글이 있었다. 그녀.
그녀, 임은 어느,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사는 이의 외로움에 대한 마음을 절절하게 쓰셨다. 71살 평범한 할머니시라는 그녀. 그녀의 일상은 그저 그런 삶이 아니라 참 알찬 생활이신 듯싶다. 나는 마냥 그녀가 부럽다. 그녀가 올린 글을 가끔 살피러 가는데 올라와 있는 사진이며 글들이 참 부럽다. 여유롭고 소담하다. 그녀의 블로그에 들를 때면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오늘 올라온 그녀의 댓글을 데려왔다. 그 연세에 버거킹에서 아침을 사 와서 드시는 것도 부럽다. 나는 내장의 부실로 되도록 집밥을 먹는다. 아무렇게나 주섬주섬, 마구잡이로, 거친 내용물들을 겁나 맛나게, 주워 먹을 수 없는 상태이다. 아, 클럽하우스에서의 운동이며 수영을 하신다는 것이며, 부럽기 짝이 없다. 나는 아마 영원히 하지 못한 생활이다. 남편이 12년 전에 죽었다는 그녀의 친구 리아나. 쓸쓸해 보이는 그녀에게 행복을 안겨주고자 생각하는 일상이 얼마나 고우신지.
나이 들어서 먼저 배우자를 저세상에 보낸 이들의 삶을 말씀하셨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나 결코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무너져 내리려는 순간, 혼자여서 슬픈 생을 가까스로 살아낼 것이라는, 행운의 수공 네 잎 클로버를 한 골목 동네 사람 모두에게 주었다는 참 고운 성품의 그녀.
리아나에게도 네 잎 클로버가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그녀는 리아나를 초대하여 찻잔을 들고 어떻게든, 서로의 마음을 함게 나눈는, 사랑스러운 삶을 풀어낼 것이다. 리아나처럼 슬퍼진다는 그녀의 댓글을 읽다가 남편 없이 긴 시간을 살아낸 여자, 나와 가까운 여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의 ‘리아나’ 이야기에 내 손위 언니가 떠올랐다. 언니는 올해 들어 우리 집에 주중 4일씩을 기거하는 관계로 이곳 블로그 일기에도 제법 등장했다. 지난 일요일 그녀 남편의 묘 이장 끝에 그녀가 말했다. 나와 우리 집 남자를 향해 동시에.
“있을 때 잘하고 살아라. 남편, 없어 봐야 소중한지 안다. 되도록 웃고 살고, 서운한 것들을 되도록 내던지고 재미있게 살아라.”
남자와 여자, 양쪽을 향한 동시 언어가 아니라 나를 향한 메시지였다.
오죽하랴. 긴 세월을 새끼 낳고 살 맞대고 살아낸 삶이 어느 날 문득 혼자가 되고 말았다는 느낌을 안게 될 때, 그 느낌으로 앞으로의 생을 살아내야 할 때 먹먹해진 마음을 누가 알랴. 아무도 모른다. 우리 언니가 늘 말한다. 언니는 그녀, 그녀의 아들딸 가까이 남편을 옮기고 나니 참 마음 편하단다. 그래, 사는 동안은 기분 좋게 살 일이다. 하기는 칼로 물 베는 싸움일랑 하면서 사는 것도 미운 정 고운 정 들이기에는 좋다던데. 나는 그런 싸움도 없이 산다. 그럼 뭐람?
팬텀싱어4의 4회를 오늘 시청하였다. 나는 울었다. 가수들이 참 부럽다. 그들의 생을 나도 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나를 쏙 빠지게 만든 한 남자 가수가 있었다. 그것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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