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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소주 한 잔과 오징어 땅콩으로 하루를 마감했던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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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잔과 오징어 땅콩으로 하루를 마감했던 어제. 

 

 

 

아마 공동묘지로 검색했으리라.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흐트러졌던 아침 기상 시각이 요즈음 나의 생활을 일그러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아침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은 큰맘 먹고 재빨리 일어났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시각이 여섯 시 십 분여. 어젯밤 터미널을 다녀오는 길의 몇 걸음이 다시 내려간 기온과 거친 바람의 체감온도로 위축되었다. 오늘 아침 의상은 어젯밤부터 정해졌다. 아침 출근 준비가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아직 세탁하지 않은 초겨울용 블랙 니트 코트가 벨벳, 검은 캉캉치마를 감싸는 옷차림이다. 기모 스타킹도 신었다. 뒤늦게 찾아온 추위가 여러모로 훨씬 사납다. 남은 기운을 모두 불태우고 사라지겠다는 일념으로 덤비고 있다는 느낌이다. 꽃샘추위가 제 위상을 과시한다. 오늘 아침 추위도 그랬다. 그냥 걸친 채 내 의상으로 존재하게 하려던 머플러가 아파트 밖 둘레길을 몇 걸음 내디디면서 목을 감싸기 위한 용도로, 오른쪽과 왼쪽, 양 갈래로 넘겨야 했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묘 이장 작업에 함께했다. 며칠 전부터 한양 땅으로부터 들려오는 언니의 흐느낌에 영 마음이 아파 마음 한편 쓰라렸다. 이곳에서는 나와 나의 남자가 있어 제물 등  준비를 맡아해야 했다. 특히 제물은, 땅속에 있는 이의 부인과 아들과 우리 내외가 묘를 파헤치는 시작 시각 전에 올라가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했다.

 

종갓집 대가족을 이끌어 온 언니가 어련히 알아 하려니 했는데 금요일 밤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마트에 가서 북어포 한 마리 말려 놓은 것하고 과일 한 가지 약간, 음료수 적은 양으로 한 병을 좀 준비해다오."

"북어포? 그런 것을 어디 가서 사지?"

"집 앞 마트 크잖아. 거기 가면 있어."

"좀 미리 사놓지. 지난주에 이곳에 있을 때 말이야."

"나는 애(자기 아들)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로 아버지에게 이제 서울로 가자고 말한 후 끝내려니 했거든. 근데 방금 김서방(나의 남자를 일컫는다.)이 나한테 카톡을 했더라. 그것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근데 내가 온몸이 떨려서 못 나가겠다. 왜 이렇게 힘드냐."

"참 내, 뭐가 떨려. 형부 죽은 지가 이십 년이 넘었어. 새삼 슬플 게 뭐야. 관둬. 그리고 아들딸이 잘 자라서 지네들 돈으로 최고급 공원묘지에, 아빠 외로울 것 같다고, 자주 찾아뵙고 싶다고 한양 가까이 모셔간다는데 기뻐해야지."

"그래도 그게 아니어야."

"뭐, 그게 아니라는 거야. 그만 좀 질질 짜고. 기쁘게 좀 생각해. 북어포는 김서방 골프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 오라고 할게. 그 사람이 준비하랬으니 잘 알겠지."

 

'징헌 년. 니는 남편 쌩쌩하게 살아있어서 모를 거다.'

아마 위 문장을 언니는 혼잣말로 내뱉었을 것이다. 잘 안다. 그 슬픔 얼마나 크고, 그 세월 혼자서 두 아이 키우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녀의 손가락을 보면 잘 안다. 그녀의 손가락은 정상적이지 못하다. 긴 세월 오질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 듣지 않게, 정말로 열심히 살아 자식 둘을 키워냈다. 새벽 네 시 출근하여 식당 일을 해냈다. 

 

공동묘지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우리 집 남자가 제물을 준비해 왔다. 그는 제사를 지내면서 올려야 할 축문도 준비했단다. 일종의 산신제이기도 할까. 

서기 2023년 3월 26일, 당신의 아들 OOO 삼가 아뢰옵니다. 여기 당신의 유택이 자녀들이 사는 곳과 너무 많이 떨어져서 당신을 늘 외롭게 두고 말았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에 오늘 당신을 이곳에서 아들딸이 사는 곳 가까이 옮겨 모시고자 합니다.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삼가 술과 과일을 올립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시옵소서.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지낸 조카와 어쩌면 마지막 사적인 만남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나름대로 서운했나 보다. 한 마당 거한 식사라도 준비해서 먹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 일요일 저녁 늦게 내려왔다가 바로 자고 다음 날 아침을 먹은 후 새벽같이 길을 나서서 이장해 간다는 것에 서운했나 보다. 그는 아침 식사 시간 잠깐, 조카를 차에 태우고 오가는 길 사이사이, 화장장에서 기다리는 시간, 점심시간 잠깐, 그리고 기차역으로 자기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가는 차 안에서 조카에게 세상사 살아가는 바에 대해 열심히 말을 해댔다. 얌전하고 성실하고, 올곧게 자란 조카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모부의 말씀을 경청하고 수긍했다. 

 

화장장은 엄청나게 붐볐다. 음력 이월 윤달, 묘 이장에 어제가 길일이란다. 새벽부터 뛴 우리는 서울로 떠나는 기차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모든 절차를 마쳤다. 서울로 가 묘를 안치하는 것도 계획대로 진행되었단다. 회사의 일에 온갖 정성으로 사는 언니는 회사 식당에 오늘 어려운 손님들이 오신다며 어젯밤 남편 유골을 안치한 후 다시 내려왔다. 

 

 

 

프랑스의 어느 공동묘지이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형부의 유골함이 안치된 곳은 이보다 훨씬 세련된, 그 앞으로 가족 나들이를 가도 좋을 만큼 전망이 좋고 멋진 곳이란다. 다행이다.

 

 

우리 집 남자는 소주 한 병에 쥐포 구이 몇 장과 오징어 땅콩을 차려놓고 하루를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계획대로 제시간에 끝나서 다행이오."

우리는 소주 한 잔씩을 적당한 간격으로 나누어 마시면서 하루를 정리했다. 자식 곁으로 모셔놓고 보니 너무 기분이 좋고 마음 편하다고 언니는 고마워했다. 나는 시 비슷한 형태의 '이장'이라는 글을 적어서 이곳 블로그에 임시저장했다. 늦은 시각 소주 한 잔이 오늘 아침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기분 좋은 맛이었다. 우리 집 남자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OOO 씨.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가 어디인고, 하고 놀랄 거야."

언니가 맞받는다.

"아이고, 걱정일랑 마시오. 당신 아들딸 가까이 왔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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