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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소용돌이 잠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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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일고 있는 소용돌이를 잠재우기 위해서 바삐 생활이 진행되어야 할 듯싶다.

 

소용돌이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왔다. 나의 현 상태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차라리 반가웠다는~, 이 모순이여!

 

 

일곱 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이렇게 이른 출근이 참 오랜만이다. 어제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니 길은 텅 비었으리라. 기대와는 달랐다. 아직 옅은 봄볕 위의 거리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뒷산으로 아침 운동을 나서는 이들이었다. 아마 물병을 넣었으리라 짐작이 되는 가벼운 배낭을 등에 메고 등산 스틱을 두 손에 들고서 한 곳을 향해 열심히 걸음들을 옮기고 있었다. 덜 여문 희망, 혹은 이미 희망을 잠재운, 그러나 곧은 신념의 걸음들이었다. 어쨌든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 집 뒷산은 철철이 아름다운 풍광으로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끝이 없다. 

 

어떤 이들은 희미하지만 제법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중 오래 전 나의 일터 종사자였던 듯싶은 이도 있었다. 좋지 않은 시력이라는 것을 변명 삼아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냥 지나치는 나에게 그는 속으로 분명 한 마디 던졌을 것이다. 진정 옛 시절 나의 지인이라면. 이것은 분명 정확해졌다. 그이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가는 허리, 몸 옆구리가 확인해줬다. 그는 분명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나를 한번 주시하고는 다시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길을 계속 걸어 나갔다.

'저런 저런. 못된 것. 내가 분명 지 상관이었는데, 저렇게 모른 척하고 지나가다니. 그때도 그랬어. 태생이 저런 것을. 저 여자 옆을 지나가면 한겨울 칼바람이 쌔애앵 몸을 덮친다고. 뭘 바라겠나."

 

어쩔 것인가. 어제, 현재 일터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과의 봄놀이도 그 어색함이 거북스러울 것 같아 참석하지 않았다. 이쯤이야. 지나간, 이미 묻힌 과거를 나의 시력을 나무라면서 다시 들춰 챙기기에는 나의 감각이 너무 많이 닳았다. 뭉그적거리다가 고개 들어 새삼 생생한 기억을 되살려내기에는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 한 번 더, 이쯤이야. 어렴풋이 그가 나의 상관으로 있을 때의 입소문들과 자잘한 사건들도 떠오른다.

 

 

술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그는 술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퇴근 후면 늘 술에 취해 있는 듯싶다고 사람들은 떠들었다. 그의 거무튀튀한 낯빛이 어두워 분명 술병에 걸렸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소문은 지금 생각하니 영 엇나간 것이었구나. 그는 여전히 잘 살고 계시지 않는가. 진정 오늘 아침 길거리에 지나친 이가 분명 그라면. 굉장히 영리한 사람인데 자기 큰 꿈이 사그라지고 이곳 일터에 주저앉으면서 삶을 술에 저당 잡힌 채 끌어가고 있다는 소문도 병행하여 들려왔다. 그 시대에는 그런 것이 용납되었다. 상관인지라, 즉 현장을 뛰지 않고 관리 감독만 하는 자리라 가능한 일이기도 했으리라. 물론 그가 일선에서 온몸으로 움직여야 할 때는 기라성같은 존재였다는 이야기도 같이 떠돌았다. 어쨌든, 그인 듯도 싶고, 그가 아닌 듯도 싶고, 그일 수도 있고 그가 아닐 수도 있어서 근시와 원시와 난시를 모두 지닌 나의 시각은 현장을 그냥 지나쳤다. 아무런 뒷생각도 남기지 않고 다음 걸음을 내디뎠다.

 

 

누구인들 자기 안의 소용돌이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이 있다더냐. 나를 꾸짖느라 가져온 블루 톤의 소용돌이.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하룻밤 새에 변하는 것은 목련의 떨궈짐이나 만발한 벚꽃이 창조한 연분홍 천지가 전부가 아니었다. 태양이 우리에게 주는 빛의 강도도 그랬다. 올해 들어서 처음 보는 새벽녘 이른 시각의, 강한 빛이었다. 더군다나 어제 이 시각의 내가 바라보는 곳에서의 태양은 약하디약한 기운에 곧 올라오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는 정도였다. 오늘은 달랐다. 단 하루 만에 이런 변화를 불러온 힘은 무엇일까. 태양은 우뚝 솟아있었다. 동그란 모양으로 온전한 자기 존재를 내 앞에 떡하니 드러내고 있었다. 따뜻함이 내 온몸에 스며들었다. 추위를 잘 타는 내 육신은 여전히 기모 비슷한 내용의 스타킹을 신었는데 이 차림이 무리가 아닌가 싶어졌다. 집에 돌아가 일반 스타킹으로 바꿔신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질 정도였다. 태양은 내가 일터에 미리 도착하여 일기를 쓰고 있으면 나 다음으로 우리 방에 들어와서 수줍은 미소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 꼬마 아씨의 눈웃음이 내게 주는 편안함을 생각나게 했다. 

 

서서히 일터 실내에 입실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음이 느껴진다. 오늘 아침은 어제 꽃놀이 판에서 만났던 봄 이야기가 떠돌까. 아니다. 옛 같지 않다. 요즈음 아침은 철저하게 어제와 차단된 채 시작된다. 아마 잘 들어갔냐는 인사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아니 사실은 아침 녘에는 서로 눈인사를 하지도 못한다. 바로 자기 자리에 가 자기 업무를 치르기에 바쁘다. 그런 식의 아침 시작이 나는 또 좋다. 어제 불참하여 어색한 시간이 내게 없었다는 것 만으로 다행스러웠기에 오늘 아침의 간결한 시작은 또 내게 적격이다. 

 

나에게 위안이 되는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가 내 안의 소용돌이를 잠시나마 잠재워주리라는 기대로, 소용돌이로 검색하여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점차 공간이 사람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곳곳에 흐르는 인적의 기운이 제법 '쏴'하다. 오늘도 내 안의 어떤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방법으로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는 거다.  오늘 오후에는 이곳 블로그 댓글들을 좀 읽을 참이다. 이곳 들어오면서 긴 댓글이 눈에 띄어 그 댓글 주소창을 열어 그이의 최근 글을 읽었다. 숭고함이 깃든, 연륜의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인생사 뜨고 지는 면면을 모두 볼 수 있는, 고운 마음 풍성하게 담긴 글이었다. 그녀에게 들러서 내 고마움을 올렸다. 당신의 글로 내 생을 돌아볼 수 있어 고맙다고. 곳곳이 나를 참 사람이 되게 한다. 어제 꽃놀이도 참석했더라면 몇 푼의 어색함을 너끈히 물리칠 만큼 내게는 교훈적인 삶의 모습들을 듣고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반성한다. 그깟 어색함을 못 견뎌내다니. 나는 어디로 나이를 먹은 것일까.

 

오늘 긴 댓글을 주신 그분처럼, 나도 곱게 늙고 싶다. 내 맘 속 소용돌이들 좀 어서 잠재우고, 아니, 제발 좀 벗어던지고 고운 삶을 숨쉬고 싶다. 아, 오늘은 꼭 새 그림을 시작하리라. 시작만이라도 하리라. 어쨌든 화지에 연필의 흔적을 남기리라. 따뜻한 아침이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오, 오늘도 아침 일기를 마친 후 업무에 뛰어들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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