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번개라도 맞아 천재 예술인이 되고 싶다.
갑자기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천재 예술인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가끔 그런 꿈을 꾸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짓인가? 아니다. 정말로 가끔씩은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이라도 안고 살고 싶다. 그런 내 생이었으면 싶다. 이런~
- 장동선 박사의 '전두측두엽'에 관한 강의를 듣고 쓰는 아침 일기 : 내 전두측두엽에 자기장이 분포하게 하라.
7시 5분이 일터 내 땅에 첫 발자국이 닿은 시각이다. 비록 7시를 넘긴 시각이지만 괜찮다. 시간 조율에 서투른 것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시간 조율에 능숙하지 못하다니. 얼마나 소탈한가. 얼마나 순수한가.
5시 20분쯤 눈을 떴다. 어제저녁에는 아침 일기를 블로그에 올리던 중 잃어버린 탓에 그만 기가 죽었던지라 체념 상태로 드러누웠다. 아마 자정 전에 눈을 감았으리라. 몸도 마음도 푹 가라앉아버린 탓인지 영화도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아날로그식 일기만 쓰고 잠을 잤다. 대체로 잘 잤다.
새벽녘 눈을 뜨자마자 유튜브의 수면 명상을 아웃시켰다.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는 다그침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열린 유튜브의 아랫 주소는 내 지친 뇌세포를 쓰다듬으려는 듯 작동이 이어졌다. 알고리즘은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천재들에 대한 영상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어젯밤 내가 처한 상황을 안쓰럽게 여겼는지 알고리즘이 착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코디 리.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에 대한 영상으로 나를 안내했다.
코디 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시각 장애였다. 네 살이 되던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서번트 증후군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코디는 음악적으로 천재였다. 2017년이던가 그는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마치 처음 본 듯 열심히 영상을 봤다.
나는 클래식은 물론 모든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듣기를 말한다. 듣는 순간 내 가슴을 친다 느껴지면 어떤 갈래의 음악이든지 며칠 환장하면서 듣는다. 바흐를 연주하는 코디가 얼마나 부러운지. 코디의 음악성을 잘 자라게 한 그의 어머니 등 가족들과 주변 음악가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 아름다운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주다니.
코디 리의 영상 끝에서 알고리즘은 지적 유희로 나를 이끈다. 오늘 내 출근길을 생기 있게 한 것은 뇌공학자 장동선 박사님의 강의였다. 공부만 잘해도 될 텐데 저분은 어쩌면 이목구비까지 저렇게 뚜렷한지를 잠깐 떠올렸다가 내게 와 확 꽂히는 영상 제목으로 인해 진지한 상태의 내 청각을 활짝 깨웠다. 그래, 좀 나아지려면 열심히 듣자. 보다 나은 생활을 하기에는 그다지 긴 세월이 남아 있지는 않다. 불현듯 남은 생이 불안하다는 것을 동시에 인지한다.
영상 제목은 'XX를 하면 뇌가 성장한다?'였다. 얼마나 황홀한 제목인가. 육은 쭈글쭈글해가는데 뇌세포가 자란다니. 제법 오래 전부터 나는 글을 읽다가 혹은 영화를 보다가 순간 내 영육이 뒤틀린다 쳐도 토해낼 방법이 없다. 감당할 수 없는 들끓음을 애써 다독거리는데도 영혼은 뒤흔들린다. 차마 내뿜지 못한 통곡을 싸안고 경련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돌아서는 순간 그 장면의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요즈음 나다.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내게 위 제목은 내 혼을 쏙 빼는 마법이었다. 보통 출근길의 내 유튜브 영상 듣기는 1.5배속인데 오늘은 특별히 1.2 배율이었다.
제목은 제대로 나를 유혹했지만 다 듣고 난 내 건방진 뇌세포는 실망스러움으로 두 눈을 뒤집어 까면서 분노했다. 학습하라, 운동을 하라, 사랑으로 섹스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좋은 경험을 많이 하라. 즐거운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라, 그리고 독서하라, 많은 사람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라. 열심히 강의를 퍼부으셨으나 내가 진정 혹할 만큼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물론 뇌는 나를 넘어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통이 가능할 때 성장한다는 등 한 단계 뛰어넘은 방법 등을 말씀하시긴 했다. 쿨라우스투룸 등 새롭게 알게 된 기관도 강의하셨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까지 내가 평소 알고 있던 것 정도의 선에서 그리 멀지 않더라는 것이다. 즉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시지 않더라는 것이다.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저 멀리 찍힌 한 점에 서 있는 몇 요워한 것 말고 말이다. 하긴 뭐 얼마나 구체적일 수 있겠느냐만.
생각건대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으로 뇌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나는 극 천재의 위치에 서 있어야 했다. 사랑으로 늘 섹스를 하라는 것은 제외하고 나는 평생 그림만 읽고 음악만 냄새 맡고 글만 안고 살았다. 나는 슈퍼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 좋아하는 그림 리스트 5위 안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루벤스의 <성모승천 십자가를 세움 십자가를 내림> 이 걸린 벨기에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후문 출입구 문짝 왼편 귀퉁이에 소품 하나쯤 걸려 있어야 했다. 까미유 끌로델이나 프리다 칼로가 되어 내 팬들로 하여금 로댕과 디에고 리베라를 소환하고 회초리를 들게 해야 한다. 이미 시인 실비아 플러스나 김승희나 강은교나 진이정이 되어 분노와 우울과 실존을 거만하게 혹은 순수하게 토해내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요절이라도 했어야 한다.
요절이라는 표제어를 붙일 수 조차 없는 연세를 나는 살고 있다. 가난한 양반 향청에 들어가듯, 주눅이 든 채 떳떳하지 못한 행색으로 쩔쩔대면서 살아낸 세월의 내가 보인다. 가난한 양반 씻나락 주무르듯, 우물쭈물. 이도 저도 못한 채, 한 자리에 선 채, 뱅뱅 거리면서 살아내는 내가 서 있다. 쌓아온 지식도, 통 큰 배포도, 사태를 확 뒤집을 수 있는 용기도 없어 바스락바스락 도로아미타불을 오물거리고 있는 내가 걸어온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으랴. 어떤 것을 더 기대할 수 있으랴.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내세울 일이 있느냐. 그렇게 살아온 것에 천둥 번개가 내리친 둘 무슨 수가 생기겠는가. 좀 더 읽으라. 좀 더 보라. 좀 더 그림을 그리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열심히 노래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걷고, 뛰고, 달리라. 그리고 더 많은 길 위를 탐색하고 더 많은 땅을 밟고 더 큰 우주로 도약할 수 있게 성장하라. 그래, 제발 좀 좀스럽게 살지 말란 말이다.
장동선 박사는 이를 더하여 강의했다. 갑자기 번개 맞고 쓰러졌다가 회생한 이들에게서 발견되기도 한다. 서번트 증후군의 천재 예술인. 그래 나도 가끔 이런 생을 꿈꾸기도 한다.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이라도. 이 무미건조한, 그럭저럭 한 세상을 사는 무덤덤함에서 나를 구출하고 싶어진다. '이런~' 하면서 나를 향해 구토가 따르는 낱말이나 문장을 던지지들 말라. 장동선 박사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뇌 이야기', 즉 전두측두엽에 관한 강의를 듣고 나는 눈 깜짝할 어느 한순간에 내 전두측두엽에 단 한 번만이라도 누구, 자기장이 분포하게끔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아직 꿈도 꾸지 말라고들 하지 말라. 이런 단계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고도 하지 말라, 부디~ 진정 가끔은 휘익 공중 부양하여 세상을 부유하고 싶더라. 높이 드높이 날아다니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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