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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아침 일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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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기가 사라졌다. 

아침 일기가 사라졌다.

 

 

아침 하늘이 황홀했다.

 

퇴근하여 아침에 써 둔 글을 정리했다. 출근길에 찍은 사진 몇을 삽입하여 올리려니 했는데 정신이 혼미해졌다. 잠이 왔다. 택도 없는 시각이었다. 미처 해야 할 일을 마치지 않았는데 무슨 잠이란 말인가. 또한 내 팔자에 오후 일곱 시의 잠이 가능하겠는가. 팔자에 없는 소리. 

잠깐 블로그에서 나가 관심 있게 보곤 하는 인테리어 관련 글을 읽었다. 다시 블로그에 돌아왔다. 귀신 들린 것처럼 나도 모르게 어떤 메시지를 클릭했고 그렇게 몇 번 또 클릭을 한 것이 순간 물거품을 일게 하였다. 써둔 글이 불러와지지 않는다. 나가 다시 로그인을 하고 들어오고 다시 '글쓰기'를 눌러도 '불러오겠습니까?'의 앞부분에 기록되는 시각이 조금 전의 것이다. 글 정리 작업을 하다가 나갔던 시각이 아니다. 결국 오늘 아침 일기로 써 둔 글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 '글쓰기'를 누르면 떠오르는 '몇 시 몇 분의 글이 있습니다. 불러오겠습니까? 블라블라~'라는 문장을 보고 '취소'를 누르고 말았나 보다. 오, 이런. 물론 이유는 있다. 이렇게 생각 없는 행동을 하게 한 원인이 있다.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건너질 않았다. 마음이 하 수선스러웠다. 그런데 그 수선스러움의 원인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음이 한탄스럽다. 이는 영원히 내 안에 있다가 사라질 것이다. 슬픈. 그런 그렇고. 

이 장마철에 너무나 맑은 푸르름에 나는 아마 인도 시인 타고르를 떠올리고 글 속에서 모셔왔던 듯. 조선, 동방의 등불.

 

 

 

아침에 이런 글을 썼던 듯싶다. 

아침 출근길이 늘어졌노라고. 7시 9분에야 일터 안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어젯밤 여섯 시간 정도의 회식에서 마신 세 잔의 소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말짱한 채 자고 일어난 것이 기쁘다고. 하여 '7시 전에 일터에 들어서기'라는 다짐도 하루쯤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노라고. 아침을 휜 엿가락 늘이듯이 잡아끌어 느릿느릿 출근 준비를 했다고.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았노라고. 걱정스러웠던 소주 세 잔의 힘을 이겨낸 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라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였노라고. 아직 내 육신은 양과 음 중 '양'의 범위에 존재한 듯싶어 한없이 대견하다고. 

꽤 긴 글을 썼는데. 황당하다. 어찌 다시 올라오려니 기대했으나 끝내 올라오질 않는다. 오늘 아침 시간에 좔좔좔좔 써 내려간 내가 쓴 글은 결국 사라져 버렸다. 이 방법 저 방법을 써서 되살리려고 해 봐도 감감무소식이다. 떠오르질 않는다. 한 순간의 실수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외치던 어느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격언이던가, 아님 어느 위인의 문장이던가. 가벼운 일상에서 솟아난 생각 몇 줄 쓴 글을 놓쳤다고 뭐 그게 큰 일인가 싶지만 '떵'하고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분명 내 잘못인데도 '티'에서 '동안 쌓아둔 정의 두께'가 부서지려 한다.

네가 저지른 실수인데 이걸 어쩌란 말이냐고 티에서 외친다면 뭐 할 말은 없다. 이런 똥통, 똥바가지 통 등 나 자신에게 제아무리 거친 말을 퍼부어도 결국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래, 또 그러려니라고 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러나 나는 솔직히 이런 종류의 미끄럼을 타는 순간이면 갈기갈기 찢기던 젊은 날의 내 꿈들이 떠올라 참 처참하다. 참 공포스럽다. 뭐, 이딴 일로 처참이니 공포이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 늘 외치곤 하는데 손등 위에 작은 상처도 당사자만 그 아픔을 안다. 참 아프다. 

글이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을 확인한 후 다시 떠올려 써보려고 했을 때의 검은 벽이 또한 문제이다. 이렇게나 다를까. 아침 출근 시 엮어낸 글 줄기들이 내게 안겨주던 황홀 지경은 아스라이 꿈이다. 팔팔팔팔 살아 움직이던 내 영육들이 내뿜던 에너지들을 제아무리 재생산해보려고 해도 전혀 솟아나질 않는다. 삼십여 분 해 본 어떠한 노력도 도로아미타불이다. 멀리, 문장들은 아주 멀리 딴 세상에서 내가 맛보다 만 신비체인 듯 희미한 문양으로 그저 존재한다. 문장을 만들던 그 어떤 생생함도 되살아나질 않는다. 되돌려 제아무리 써보려고 해도 오늘 아침에 자판에 퍼붓던 글귀의 오묘한 매력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대체 이것은 뭐지? 무슨 차이일까. 

아침, 신새벽의 기운이 내게 씌워주는 힘이 이렇게나 크구나 싶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어쩌면 수면으로 하루 영육에 자리한 각종 오염물들을 씻어내 버린 후 새 출발을 감행한 힘이 때 묻지 않은 아침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그 기운 주변에 새날을 어떻게든 멋지게 살아내겠다는 내 소망과 기대감이 더해져 형성된 맥이리라. 선명하게 푸른 새 힘 위에, 맑디 맑게 흐르는 꿈과 소원을 입은 신기에 힘입어 이른 아침이면 막힘 없이 글이 써지는 것이리라. 아, 더더욱 아침 일기를 써야 할 것 같다. 

너무 다른 아침과 저녁의 기운을 동시에 올려놓고 새삼 내 앞으로의 생을 저울질해 본다. 늘 새벽 같아야 할 텐데. 늘 새파랗게 싱싱한 기운으로 살아내야 할 텐데. 늘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소망 덩이들의 요동으로 콸콸콸콸 힘이 솟구쳐야 할 텐데. 

 

눅눅한 장마철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은~ 이 꽃을 보라.

 

 

그래, 문제는 세 잔의 소주이다. 걱정했던 것에 비해 너무 맑은 정신으로 깨어난 아침에 부린 방정맞음이 아 스스로를 경망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가벼움이 몸 무거워진 나를 걸고넘어졌다. 나 스스로 한 약속보다 9분 늦은 출근이었지만 하늘이 너무 맑았고 내 육신은 말짱했고 시럽을 탄 원두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던 때의 나는 너무 행복했다. 이를 아마 주신이 질투했나 보다. 붉디붉은 낯빛 위에 얼룩덜룩 취한 동맥을 내밀던 주신이 나를 압박해 왔다. 오후부터 정신이 맹해졌다. 사나흘 술 속에 몸 담그다 나온 것만큼이나 정신은 노래졌고 뼈는 기운이 빠져 부스스한 소리를 냈다. 아마 오늘 내가 너무 행복해 보였나 보다. 

힘이 빠져도 주신은 주신이다 싶어 울그락 푸르락 주신의 꼬인 눈을 피해 이른 잠을 취하려던 계획은 결국 폐기되었다. 어쨌든 오늘 이 글도 나는 '아침 일기'라 명명한다. 자자. 적어도 오늘은 11시 30분에는 자 보자. 내 육신 곳곳에 여전히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을 주신의 도움을 좀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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