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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눈 내리는 날의 아침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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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처음으로 눈 내리는 날의 아침을 걸었다.

 

 

 

눈 내려 쌓이다. 어쨌든 눈!

 

 

나는 온갖 종류의 음악을 즐긴다. 시시때때로, 때와 장소, 상황 등을 고려하여 그에 적당한 음악을 내 생의 무대로 불러온다. 음악들은, 가지가지 대중 매체들은, 그때에는  대중을 제쳐두고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해서 기꺼이, 그리고 마침내 거룩한 소리를 내게 들려준다.

 

 

종교의식이나 제사, 체육 행사 등에 사용되었다는 그리스나 이집트 등의 고대 음악도 종종 듣는다. 덕분에 파이프 오르간이며 하프, 리라, 금, 슬까지 다양한 악기 소리에도 친근하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나는 여러 악기를 대형 화보로 그린 적도 있다. 물론 일터에서 내게 하달된 업무의 하나였지만 말이다. 석기시대 원시 음악도 상상 속에서 마음껏 즐기곤 한다. 그 재미가 얼마나 큰지 나 아니고는 어느 누가 알랴. 겨울, 이 무거운 옷들 모두 벗어 던지고 그곳만 가린 채 온 세상을 휘갈기면서 뛰어노는 환희, 음악도 함께하니 얼마나 즐겁겠는가. 

 

 

시작되는 일출!

 

 

이 아침에 무슨 음악이냐고? 오늘 아침은 화분에 물을 주느라고 지난주 금요일부터 시작된 새 패턴의 출근 경로에서 한 코스가 생략되었다. 아파트 둘레길 걷기를 1회만 실시하였다. 산 아래 고지대에 서 있는 건물이어서 매섭고 독한 칼바람이었다. 내 여윈 볼에 상처를 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필 오늘 새벽,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 경기 중 메시의 골에 흥이 나서 이것저것 검색한 어느 유튜브의 내용이 문제였다. 고혈압은 겨울 새벽 마른땅을 가를 정도의 바람에는 집 나서지 말라는 투의 내용이었다. 머리통을 감싸 안고 길을 걷고 싶었다. 화이트 증후군이라지만 살짝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오늘 아침도 12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이었다.

 

 

눈이 내렸구나. 눈이 내려와 땅 위에 안착해 있었다. 늘 그 자리에 고정된 채 주차되어 있는, 생산된 지 20년이 가까워져 가는 나의 늙은 차 위에도 제법 눈이 덮여 있었다. 마음으로만 자리 잘 지키고 있느라 수고 많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지나쳤다. 지붕에 눈 쌓이니 내 차 옆에 자리하고 있는 최신식 최첨단의 차와 똑같았다. '푸하하하하' 속내 세차게 구슬리는 무음의 소리를 저장하면서 길을 걸었다. 어제보다 더 늦은 시각이었지만, 어제만 못한 일출이었지만, 사진으로 남겼다. 일터 가까이에 가서는 아주 작은 놀이공원 안으로 나 있는 길을 필름에 담았다. 눈이 덮혀 있으므로 오늘은 특별 세례를 받아 내 앨범에 필름 한 컷으로 입력되었다. 

 

 

자꾸 여러 음악이 떠올랐다. 이런 날은 유튜브 강의를 끄고 멋진 음악을 들어야 하는 아침이지 않은가. 어김없이 진행되는 내 행동에 어깃장을 놓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눈이 와 있지 않은가. 저 눈, 올 겨울 첫눈인데 환영사는 못 할지라도 환영 음악이라도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사시사철 특별한 날을 인간계에 만들어주려고 애쓰시는 조물주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잘린 소국이 있던 곳

 

 

아파트 현관을 나서 한 발,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는 음악을 생각했다. 눈이 내렸다가 녹으면서 살얼음이 내려앉은 길바닥 위에서 내 발바닥의 감이 느끼는 것은 쇳소리 나는 헤비메탈이었다. 내 조심스러운 걸음 위로 에릭 크랩튼의 'ALL YOUR LOVE'가 배달된다면 참 신나는 출근길이 될 것 같았다. 꿋꿋하게 서 있는 나의 똥차 위 눈 침대 위에 NINA SIMONE의 'SINGS THE BLUES'가 펼쳐지면 얼마나 포근할까. 시간에 쫓겨 아파트 둘레길을 두 바퀴 돌아야 할 것을 한 바퀴만 돌면서 갖게 된 안타까움을 슈베르트의 '송어'라면 달래주지 않을까. 

 

 

어쨌든 쌓인 눈!

 

 

일터에 도착했다. 싹둑 잘린 소국이 있던 단지에 특별한 눈빛을 쏘아 보낸다. 빈터. 그곳 남은, 짧은 가지들과 낙엽들 위로도 엷게 눈이 내려 있었다. 엊그제 쓴 소국 관련 일기의 댓글에 어느 블로그 친구님이 안타까워하며 적으셨던 내용이 떠올랐다.

'소국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는 모습도 참 예쁜데요.'

아, 경비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부지런하실까. 단 한 번도 갖은 적 없던 경비 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일었다. 이틀, 아니 사흘만 참아주시지. 그리 오래 사셨으면서 어쩌자고 사나흘 후의 일기도 예상하시지 못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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