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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소국, 내년을 기약하면서 안녕을 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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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 내년을 기약하면서 안녕을 고하다.

 

 

수국. 녀석들이 내 필름에 담긴 날이 7월 16일이었다.

 

 

수국 9월

 

 

찬란을 향하여 달리던 수국

 

 

10월의 수국은 알았으리라. 오늘, 12월 중순의 자기 운명을!

 

 

 

쉽지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실천했던, 겨울에도 일찍 출근하기와 아침 40분 이상 걷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상 시간이 삼십 분 늦은 시각이었다. 금요일처럼 빨리 눈을 뜨지 못했다. 서둘러 준비했지만 출근길 출발 시각은 일곱 시를 넘어섰다. 금요일보다 20분을 늦게 집을 나섰다. 

 

 

왼쪽 입술 귀퉁이가 크게 부르텄다. 이를테면 입술이 쥐었다. 입술 끝에서 시작하여 살갗까지 두둑하게 부풀어 오르고 그 안에는 터질 듯 액체가 가득 들어섰다. 고름일 것이다. 주말 이틀 연고를 발라도 잠잠해지지 않는다. 점점 번져간다. 직선거리로 잰 상처의 너비가 2센티 미터는 되겠다. 지저분해 보여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 시절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지난 주일 몸이 부대꼈나 보다. 월드컵 중계를 보느라, 내사랑 휴가도 손님맞이였나 보다. 이번 주는 느긋하게 보낼 필요가 있겠다. 아프면 안 된다. 내 일터, 내 공간은 내가 있어야 한다.

 

 

초강력 추위가 내일 저녁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아직 코트는 세 번째 레벨에 머문다. 네 번째 코트부터는 정말로 무겁다. 느긋하게 보내려던 계획을 취소해야겠다. 이런. 금방 세운 계획인데 이게 뭔가. 가을바람에 새털 날 듯 한다더니 왜 이렇게 가벼운가. 참 채신머리없기는. 이번 주 매일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을 검색해보니 오늘내일은 그래도 가벼운 코트를 입을 수 있는 날씨이다. 마음껏 걷자고 하며 열심히 걸었다. 금요일의 출근길 코스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금요일 아침에 내게 큰 힘이 되었던 일출을 기대했다. 아파트 둘레길을 반쯤 돌면 일출이 보이는 지점이다. 제대로 동쪽이다. 첫 번째 순례길에서 볼 수 있으려니 했는데 막막하였다. 옅었지만 아직 어둠이었다. 두 번째 순례길을 기대했다. 여전히 아니었다. 그래도 일출의 기운이 서서히 모양을 내고 있긴 했다. 야트막한 붉은빛이 힘 바랜 어둠을 밀쳐내면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금요일보다 늦은 출근이었는데도 아직 일출은 또렷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그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파트 둘레길을 세 바퀴를 돌면 출근이 너무 늦다. 아쉬움을 필름에 함께 담았다.

 

 

서서히 제 목을 드러내고 있는 일출!

 

 

 

달 떠 있더라, 출근길! 해와 달의 공존!

 

 

일출 시각으로 하루를 시작했을 옛사람들을 떠올려봤다. 아니 일출맞이 의식을 치르듯 어둠 속에서 아침을 미리 준비하시던 내 어머니의 몸빼 차림이 생각났다. 그녀는 대체 그 작은 몸 어디에서 그 거대한 힘이 생겨났을까. 아마 평생 일출 이후 이불속에 드러누워 있었던 날이 0에 가까울 것이다. 내 어머니의 반이라도 좀 닮자. 온전히 걸을 수 있는 나의 남은 날은 제발 좀 열심히 걷자. 부지런히 살아내자. 단 하루가 남았다는 심정으로 바지런히 좀 살아보자. 조심스레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일터에 도착했다. 입술 부르틈으로 자기 상태를 드러내는 나의 육신.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않을게. 

 

 

일터 대문 경비 할아버지께 큰 소리로 아침 인사를 드렸다. 부지런한 양반. 건강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퇴사하셨더란다. 완쾌되시고는 다시 일터에 발을 들여놓으셨다고 들었다. 공부의 깊이가 느껴지는 분이다. 검은빛이 뚜렷한 얼굴색으로 뵐 때마다 건강이 걱정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큰길까지 나오셔서 길 청소를 하신다. 뵐 때마다 대단하시다는 생각에 나의 아침이 진지해진다. 

 

 

일터에 들어서면 거의 매일 일터 대문 반대쪽의 하늘을 핸드폰 필름에 담는다. 오늘도 찍었다. 대문을 넘어서서 일터 본 건물을 향해 좌회전을 한다. 이어 두 번째로 필름에 담는 풍경이 있다. 오늘 그곳에 건물 담당 경비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긴 낫을 들고 계셨다. 그 옆 길 위 수레가 있었고 수레 안에 꽉 차 있는 것이 있었다. 식물이었다. 소국. 

 

 

할아버지가 소국을 잘라내고 계셨다. 아, 아팠다. 쓰라렸다. 한편 오늘 이 시각에 나를 출근하게 한 것은 조물주의 계획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행이다. 오늘 이 모습도 필름에 담을 수 있어 참 만만다행이다. 수국. 녀석들이 꽃망울을 맺으면서부터 시작되었던가. 사실 초록초록 상황에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수국이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수국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국화과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어쩌다가 가끔 했을 것이다. 내 일터 본 건물이 시작되는 귀퉁이, 바둑판 넷의 넓이 정도밖에 되지 않은 너비에서 자라는 수국. 미니단지. 2년째 출퇴근을 하면서도 녀석들의 정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할 만큼 어느 날 문득, 마침내 송올송올 가지마다 맺힌 것이 있었으니 꽃망울이었다. 

 

 

할아버지는 봐주지 않으셨다. 무더기 속 몇은 아직 '꽃'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가차 없었다. 냉혹하고 매정하고 무자비하셨다.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신데. 먹먹해졌다. 몇 초 아찔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나는 '아차~' 하며 재빨리 핸드폰을 들이댔다. 잘려서 쌓이는 소국들의 슬픈 곡소리가 나의 청신경을 울렸다. 한편 내년, 새 생명을 기약하는 잘림이기에 기꺼이 수긍하는 녀석들의 굳은 다짐도 읽혔다. 할아버지는 찰칵찰칵 울리는 나의 사진 찍기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시고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다른 날 같으면 이미 여러 번 허리를 펴고 무슨 사진을 그리 찍냐며 내 행동을 건드셨을 것이다.

 

 

출근길, 사진 찍기로 요란스러운 나의 행동 끝에 꼭 하시던 말씀은 대체 그 많은 사진을 찍어서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매번 간략하게. 설명해드렸다. 찍은 것들은 대부분 골라져서 버려진다고. 거의 매일 쌓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거짓을 늘어놓았다.(정말이지 언제 일주일여 시간을 만들어 내 인터넷에 담아둔 정보 제거하기를 해야 한다. 특히 사진들!) 바로 자기 곁에서 들리는 필름 작동의 소리에도 할아버지는 묵묵히 소국 자르기를 그치지 않으셨다. 단 한 순간도. 어느 한 가지 남김없이 잘라내어 수레에 모두 담은 다음에서야 허리를 펴고 내게 눈을 주셨다. 나는 처음 본 꽤 거대한 낫이었다. 상식적인 낫 크기의 세 배는 될까. 

 

 

점차 스러져가던 수국!

 

잘린 소국은 어디로 가게 될까. 불에 탈까? 퇴비가 되기 위해 쌓일까. 일 년생 화초이면서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다년생으로 살아내는 녀석들은 가지가 제법 단단해서 퇴비로 사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녀석들은 아마 어느 집 통 난로에, 혹은 어느 단독주택 마당에서 불멍을 위한 불쏘시개로 적당하다. 이글이글 어떤 사람들의 눈 속에서 자기 생의 마지막 빛을 내면서 어떤 생각으로 이승을 하직할까. 녀석들의 남은 생이 궁금하다. 비록 한낱 수레에 실려가지만 나, 수국을 위해 수레의 바퀴 자국, 자국마다 레퀴엠을 수놓아주리라.

 

 

모두 잘려 수레에 실려 삶의 무대를 떠나는 수국.

 

 

수국을 제거하시는 경비 할아버지

 

 

 

나, 수국을 위해 레퀴엠을 듣는다.

 

 

꽃 몇 송이라도 꺾어와 압화로라도 만들어볼 것을. 후회된다. 아쉽다. 여러 달 나의 소중한 친구였던 수국! 오늘 수국을 보냈다. 나는 매일 아침 녀석들의 천변만화를 보면서 당신들의 다큐멘터리 같은 생을 내 삶에 이식시켰다. 나의 한쪽 심장 귀퉁이에 올해 수국의 일생이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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