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도무지 추스를 수 없을 듯 묘한 심정이 만들어지는 것을 어찌하랴!
어제 퇴근길, 일터를 나서면서 유튜브 강의를 들으려다 멈췄다. 내 눈을 솔깃하게 한 창이 떠 있었다. JTBC 국악 오디션이었던 <풍류 대장> 편이었다. 출퇴근 시간이면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유튜브 강의를 듣는다. 내가 생각해도 유난스럽다. 이런 나를 알면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공부 못해서 환장했느냐고.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다. 당신은, 공부를 할 수가 없어서 환장했다고. 어미 아비가 원하는 것 다 해줄 테니 공부만 해라. 진즉 좀 할 것을, 그 어미와 아비는 저 세상으로 가시고 내가 어미가 되어서야 공부 덜 한 것이 후회된다. 열심히 강의를 듣는다. 어제는 아니었다. 어제는 내 온몸과 온 정신을 축 늘어뜨리고 싶었다. 질질 끌어당기면서 길을 걷고 싶었다. 업보처럼, 비밀을 담은 투명 주머니 꼬리를 흔적만 남아있는 꼬리뼈에 매달고 집을 향하여 천천히 걷고 싶었다. 좀 더 길게, 좀 더 탱탱하게 주머니를 만들어 달면 아바타의 형상을 닮을 수 있을까.
국악인 김준수의 '나 가거든' 영상을 켰다. 심사하러 나온 가수 성시경이 어느 부분은 미친 듯 불렀다고 해서 나도 좀 미쳐보고자 했다.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는 듯한 드센 겨울바람이 무서워졌다. 아침과 다른 저녁 바람 앞에 몸을 내놓기도 전에 벌써 무서웠다. 조금 전까지 천하를 다스리는 제국의 공주로 살다가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로 떨어져서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처럼 발발 가슴이 떨렸다.
하늘은 잔뜩 밀도 높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듯싶은데 차마 이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강도가 조금 낮춰 비를 내리는 선에서 멈춰주는 조물주. 당신을 향해 고마움을 담아드리자고 음악을 켰다. 오늘 같은 날은 좀 미쳐버리면 되지 않을까. 미치듯이 노래를 불렀다는 김준수의 음악을 들으면 맨정신으로 통과하는 것이 힘든 상황을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김준수. 그는 늘 미소년의 기운을 지닌 국악인이다. 섬세한 외모 때문인지 젊은 국악인치고 제법 대중성을 갖춘 국악인이다. <풍류 대장>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더더욱 가까워졌다. 그가 부른다. 일찍이 유명세를 누린 드라마의 주제곡을 성악가 조수미가 불러서 국민 음악 같기도 하다.
쓸쓸한 달빛 아래 내 그림자 하나 생기거든
그땐 말해볼까요. 이마음 드러나 주라고
문득 새벽을 알리는 그 바람 하나가 지나거든
그저 한숨 쉬듯 물어볼까요.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나는 왜 살고 있는지. 새벽을 알리는 바람 앞에 서면 깨우칠 수 있을까. 누구에게 나를 말할까. 달빛 아래 내 그림자 생긴 들 내 마음 들어줄 이 어디 있을까. 한숨을 쉬고 나면 삶에 끼인 오물이 좀 씻기어질까. 이미 쉰내 나는 나이에 사춘기 소녀가 되어 촘촘해진 저녁을 헤쳐 걸었다.
어젯밤에는 아침에 이미 아침 일기를 마무리한 덕분에 퇴근 시간이 가벼웠다. 여유가 좀 생겼다. 마음이 느슨해졌다. 풀어헤치고 싶은가 하면 더 강하게 응축시키고 싶은 무엇이 있었다. 사람인데, 인간인데, 어느 하루 도무지 추스를 수 없을 듯 묘한 심정이 만들어지는 것을 난들 어찌하겠겠는가. 지니고 안고 담아두었다가 다시 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닥가닥 끄집어내 놓고 쓰다듬으면서 나의 매일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싶은 날이었다. 그리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어제 퇴근길에는 자꾸 울고 싶었다. 느닷없이 눈물이라니. 괜히 가슴이 아리고 꽁하게 뭉친 어떤 응어리가 작은창자 중간쯤에 도톰하게 맺혀있는 듯싶었다. 울그락푸르락 순간을 단위로 한 강한 해일이 이는 내 심사에 주문을 걸었다. 적당히 생각하고 살렴.
내일 아침 4시, 메시의 경기를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보려고 하면 어서 자야 한다. 오늘도 출근길 40분 걷기를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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