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레퀴엠이 흐른다.
웅장미와 그 곁을 옅은 잿빛으로 동행하는 차분함을 나는 즐긴다.
(언젠가 꼭 '모차르트의 레퀴엠'에 얽힌 나의 생을 글로 쓰리라.)
출근을 준비하는 동안 임윤찬과 함께했다. 내 좋아하는 낱말 '신새벽‘에, 다섯 시 삼십 분을 조금 넘어선 시각에 은반 위를 노니면서 만드는 임윤찬 세상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승 연주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먼저 그의 짧은 수상 소감 인터뷰와 1시간이 넘는 그의 스승이신 손민수 교수님의 인터뷰 초반까지 듣고 난 후였다.
그의 연주를 듣는 동안 '쓰고 싶다.'는 생각의 분출로 내 동맥이 바쁘게 온몸 운동을 했다. 내 굵은 피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건강한 굵기를 드러내면서 전신을 순환하였다. '쓰고 싶다. 꼭 쓰고 싶다.'를 쉼 없이 내놓았다. 이름하여 '감상 소감'이 되겠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내게 주는 서사를 글로 쓰기에는 나의 글쓰기 능력이 터무니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여 임윤찬을 기회로 클래식 음악 감상 소감 쓰는 방법에 관한 강의를 한번 들어볼까도 싶다.
아침이 부산했다. 딸과 사위의 귀향길을 동반한 신혼 신부의 어미는 일상에 어리숙한 동생을 챙기느라 어제오늘 바쁘다. 어제저녁은 병어며 먹갈치를 크게 한 봉지씩 사들여놓고 손질해서 넣어놓고 먹으라더니 오늘 아침에는 이 이불도 버리고 저 이불도 버리고 이것도 없애고 저것도 좀 치우고 등으로 바쁘다. 집주인인 나는 출근 준비를 군데군데 멈추면서 주인 치레를 하느라 언니가 저지르는(?) 일에 동반하나 통 재미라는 것이 없다. 나는 '상추 겉절이'보다 '상추 씻어 바로 뜯어먹기'를 더 즐긴다. 게으르다. 생활화된 채 산다. 아무런 불편도 못 느낀다. 아니 느끼려 들지 않는다. 한데 언니는 다르다. 종손 며느리에 셋째 딸임을 표본으로 산다. 오늘 아침 나의 출근길에는 헌 이불 한 보따리를 만들어 의류 수거함 위에 떡 하니 버렸다. 내 이불인데, 내 허락도 없이. 오늘 저녁 내 수면이 어제보다 알차게 진행되리라는 생각이 불쑥 드는 것은 뭘까.
"으짜든지 먹고살아야 쓴다.', '으짜든지 웃고 살아라.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그러더라. 뼈만 남은 네 몸뚱이 들먹이면서 보는 사람마다 혀를 차더라. 먹고살아라, 먹어야 살 것 아니냐, 제발!'
며칠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여 아침 일기를 쓰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게 뭐냐, 저게 뭐냐. 어찌 이리 사냐. 청소 좀 하고 살아라' 등으로 언니는 내 출근 시각을 지연시킨다. 맑은 날이었음 이미 해는 중천을 훨씬 뛰어넘었을 시각에야 출근길로 들어섰다.
진짜 장마를 품은 기운이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 묻혀 내 민낯을 쳤다. '후욱~' 자연스레 들이마신 한 주먹쯤 될 듯한 '습기'라는 것이 어벙하게 벌어진 내 입 안에 들어섰다. 순간 입천장까지 점령하여 더운 기운을 죄다 입혔다. 아, 장마철의 더위는 사람의 입 속 세포까지 점령하려 드는구나 싶어 혀끝에 짜증이 돋았다. 온몸을 몇 번 터는 기분으로 퍽퍽 뛰었더니 식도 출입구까지 온 질척거림이 '슈웅'하고 입 밖으로 바삐 떠났다. 기운을 가다듬어 하늘을 보니 폰에 담고 싶은 농무의 춤이 멀리 보이는 산 중턱에까지 범위를 넓혀 있었다. 어제 바라본 똑같은 곳인데 기운이며 풍경을 거나하게 변모시켜 새로운 모습으로 내 눈 안에 들어오는 것에 하늘의 재주가 존경스러웠다. 풍경들은 글로도 옮기고 싶고 그림으로도 그리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수많은 어휘 중 '아름다움'이라는 낱말이 제격인 광경을 끝없이 눈에 담으면서 출근하는 길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졌다. 정말 최첨단의 세상을 살 수 있다면 눈에 보이는 농무와 연무의 조화로운 무용은 그대로 두고 사람이 느껴야만 하는 습한 기운만 차단되는 소스를 지닌 기술은 어찌 안 될까. 어제 아침 행했던 냉욕의 상쾌함이 채 몇 분도 되기 전에 흐트러짐을 확인하고는 오늘 아침은 건너뛴 것이 후회스러웠다. 오늘이라면 어제 느꼈을 상쾌함의 배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 기분의 지속 시간은 훨씬 짧아졌겠지만 말이다. 냉욕의 시원함도 글로 한번 옮기고 싶다.
일터에 다 와 가면서 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쓰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장마의 진드기성 감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이어 내 안에서 진행되는 생각의 주제에 그만 황홀해지고 말았다.
'와우, 나는 왜 이렇게도 쓸 거리가 많은 거지?'
'왜 나는 눈만 뜨면 이것에 대해서, 저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이며 이것들이며 저것들에 대해서 늘 쓰고 싶은 것인가?'
심장의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보폭의 너비를 줄였다. 속도를 최대한 늦춰 걸었다. 보는 이 있으면 이 장마에 무슨 청승일까 싶어 일터 광장 돌기는 취소하였다. '아침' 입구에 매달린 열쇠를 끼워 돌린다. 나의 오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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