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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니체를 모셔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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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모셔 오다.

 

 

 

 

아마 여기도 조계산    또 한 사람의 사진첩에서 가져오다. 이 글 속에서는 그가 되겠다.

 

 

바삐 나가 바깥 밤을 걷고 왔다. 상현달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점 후 문득 차( car) 생각이 났다. 손가락 꼽아 세어 볼 필요도 없었었다. 무려 2주일 넘게 차를 세워 뒀다. 방전? 급히 인터넷 검색을 했다. 답은 여러 갈래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10분 이상 몰아야 됩니다요. 30일 지나도 괜찮던데요? 여러 갈래로 흩어진 답을 듣고 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를 어쩐담. 방전이 되었다면 보험을 부르는 것도 문제다.

 

 

오직 나는 운전만 하는 사람이다. 엔진 오일 넣기, 엔진 갈기 등은 물론 자동차 검사까지 해 본 적이 없다(한번 했던가?) 이런, 혼자 있는 날 문제가 터지면 안 되는데. 몰골이 엉망인지라 밤이 내려온 후에야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시동은 잘 걸렸다. 엔진은 싱싱했다. 생각해 보니 엔진을 간 것이 몇 주일 안 되는 것 같다. 긴 세월을 나와 함께 한 녀석. 십 분 여 시동을 걸어 주차장 한 바퀴를 돌고 '십 분'이라는 말이 생각나 주차 위치에서 전진과 후진을 몇 번 더 했다. 아홉 시 즈음 십분 여 차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몇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 19의 재유행이 사람들의 발을 묶은 듯싶다. 

 

 

여러 날 사진을 찍지 못해 상현달을 찍어 볼까 했으나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휴대폰을 바꾼 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 똑같은 달을 찍는데 어떤 이는 조작해 놓고 찍은 듯 선명하고 나는 상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어서 배워야 되는데 자꾸 미룬다. 달과 함께 몇 걸음 하는데 참 시원했다. 한낮 무더위가 꿈같았다. 바람은 자꾸 붙잡는데 불안한 마음이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게 했다. 어서 씻고 자야 한다. 자기 전에, 자정 전에 블로그 글도 어서 써서 올려야 한다. 오늘 오후에 그린 그림도 한 장 올릴 참이지 않은가. 실패작이니까 일기를 올리기 전에 살짝 올려두자. 아하, 두 장이구나. 오늘은 블로그에 일기와 그림 둘 하여 세 건을 올리겠구나. 그림도 글도 자꾸 올리다 보니 너무 서툴어 그만 버리는 것이 맞는데도 태연하게 올려진다. 낯이 두꺼워졌다. 나도 익명성을 놀게 된 것인가. 그러면 아니 되오만!

 

 

한참 배 불러가는, 부드러운 포만감에 젖어가는 상현달을 등 뒤에 놓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니체' 생각이 났다. 그가 쓴 책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을 보라>를 읽었다. 니체 철학을 우리나라 철학자들이 해석한 책도 한 권 더 읽었구나. 워낙 유명한 철학자라 당연한 듯 읽었다. 현대를 사노라면, 무릇 현대를 숨 쉬는 지성인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할 의무로 생각되었다. 니체니, 비트겐슈타인이니. 오래전 일이다. 세속의 맛에 덩실덩실 푹 젖어 사는지 오래되어 책의 자세한 내용들도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내 영혼을 뒤흔들었던 충격의 강도는 뚜렷하게 떠오른다. 나는 몇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서너 시간의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가만 그때 충격의 서슬 퍼런 날을 데려와 내게 새겨져 있는 니체를 모셔와 본다. 

인생은 덧없다. 인간의 생은 그다지 별 볼 일 없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허무를 과거에서 만난 연유로 인간은 또 기어코 살아내려 한다. 죽자 살자 열심히 산다. 이미 스러진 것, 이미 없어진 것,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존재로 인해 인간은 삶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은 곧 내 삶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인간은 그 죽음을 위해 뭔가를 한다. 어쩌면 인간의 생이 곧 죽음이라는 것은 참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노력이 인간을 가치 있게 한다. 각자 생의 의미를 만들어 살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또 나날이 새로워져 간다. 날이면 날마다 뭔가를 하려고 한다. 하려고 해야 한다, 인간은! 인간이므로!

그리하여 하여 신은 죽었다. 왜? 신은 죽지 않잖아. 신은 몰라. 신에게는 죽음이라는 요소가 없으니 죽어라고 자기 존재, 자기 가치, 자기 의미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 없어. 신은 허무를 모르고 신은 질병을 몰라. 신은 그러므로 굳이 살아내려는 필살기를 찾으려는 뭔가를 해낼 필요가 없잖아. 그렇게 지내는 신이 무슨 가치가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신은 이미 죽었다. 

언뜻 생각난다. 내게  자리 잡아 있는 니체 님이시다. 그래 '님'이시다. 나는 책을 통해 그를 만난 후 그를 사랑하고 말았다. 여전히 사랑한다. 심지어 '이성'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존경한다. 꿈처럼 환상처럼 혹은 현실처럼.

 

 

나는 그렇담 신인가? 급기야 좁쌀스러운 내 생각은 내 안의 나로만 살아가는 내가 대체 누군가 싶어 져서 니체를 모셔온 것이니. 나는 좀처럼 뭔가를 해보려 들지 않는다. 막내딸로 자라서일까. 어릴 적부터 늘 내 곁에는 내 생활에 보조를 맞춰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굳이 내 몸 움직여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차리지도 않은 상이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야금야금 먹고 한껏 취하기만 하면 됐다. 하여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면 급 쫄아든다. 여하튼 무슨 일이 벌어지면 곧장 옆사람부터 부른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서 지금 요런 상황이야. 그는 달려오든지 전화로 해결하여 누군가를 보내든지 하여 내 일상을 잽싸게 수선해준다. 심지어 도서 목록을 톡으로 올리면 책도 빌려 온다.(이런, 무슨 자랑이라고!)

 

 

내가 이미 죽은 신이 아닌 이상 사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책 속에서, 그림 속에서, 음악 속에서, 영화 속에서만 놀아서는 아니 되겠다. 현장을 뛰어야 되겠다. 니체도 말했다. '망치' 어쩌고 저쩌고(언젠가 여기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싶다, 아주 가볍고 재미있게). 두 손 불끈 쥐고 마음도 몸도 함께 움직여서 내 일상을 내가 끌어가야 되겠다. 힘차게, 씩씩하게! '혼자서도 잘해요'를 실천하기다.

 

그래, 꼬리를 물어 니체의 사상이 열정적으로 떠오른다. 오늘 내게서 다시 날개를 달았다. 니체는 그랬다. 쉽게 말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뭐든지 네 스스로 열심히 해서 네가 네 삶의 가치를 만들어라. 네가 지닌 물건들에도 네가 만나는 상황들에도  네 주변 사람들에게도 니 노력으로 각각 생명을 부여해라. 곧 죽음일지언정 삶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 맛이야. 알아? '영원회귀'라고. 이것도 내가 한 말이잖아. 쉽게 말해 '순환'이야. '윤회'야. 그리하여 네 생이 죽음 이후 다시 이 세상 속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화양연화'를 살 수 있게 될 수도 있잖아?"

 

자동차를 2주일째 세워둔 일로 오늘은 거하게 내 인생의 철학 잔치를 했다. 즐겁네. 

 


 

결국 글 쓰느라 그림 올리기를 하지 못했다. 다시 하루 연기. 혹시 내일 그림을 그린 것도 엉망이라면 내일은 그림 셋에 일기까지 4회를 올리겠구나. 무리인가? 그림들은 내일 일기 올리기 전에 살짝 올려야지. ㅋ. 이거, 홍보 아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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