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침이다.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른 출근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해졌다. 마음만 그렇다. 몸은 어둠 속에서 느릿하게 비비적댄다. 날이 밝아지는 시각이 점차 늦어진다. 일출을 맞이하는 근엄한 시각의 발걸음도 굼떴다. 점차 새날 탄생의 조화 앞에 서는 것에도 인내심이 요구된다. 몸의 올바른 침묵을 궁리할 수 있는 시간 범위가 넓어졌다. 몸은 우선 반갑다. 계절의 순환, 자연의 순환에 제대로 반응한다.
사람의 몸은 자연이다. 온몸의 감각세포가 반응한다. 역치(閾値)이다. 역치. 감각세포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에도 반응함을 뜻한다. 자잘 자잘 스며드는 계절의 변화와 기후의 변화라는 자극을 운명인 듯 수용한다. 역치 이상의 자극에도 자연스레 실무율(悉無律)을 발휘한다. 과학계에 평정 이상의 반응을 불러일으켜 잔잔하게 과학 세계의 기단을 형성하는 자극과 반응의 법칙이 실무율이다. 맞나? 어쭙잖은 과학 학습력을 끌어와 자연에 대한 내 육신의 반응을 살핀다.
새날의 시작에 바삐 움직여야 한다. 세상은 공평의 법칙 또한 야무지게 요구한다. 음양의 조화를 고집한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한쪽은 솟구친다. 다음에는 솟아오른 한 부분이 기울었던 다른 한쪽을 위해 기울어져야 한다. 호사다마라는 사자성어의 출현이다. 제아무리 즐거워도 지나치게 기쁨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을 덧붙여야 한다. 어두움 길어졌다고 편히 쉴 시간이 마련되었다 치부하려 드니 짧아진 대낮 기운이 시샘한다. 두고 보라지. 네가 지고 있는 일거리들은 줄지 않을 터인데 마냥 흐느적거리면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구나.
일곱 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 현관문을 나섰다. 지난주 여행 즈음 예고되었던 고상한 이름의 기후 '더스트 다이아몬드'가 떠오른다. 햇빛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먼지 다이아몬드는 당시 확인하지 못했다. 날은 따뜻한 편이었다. 겹겹이 입고 간 복장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바깥 외투를 벗어 손에 걸치면서 겨울 내복을 속바지로 입은 것을 누가 알까 얼굴 붉어졌다. 야간 움직임에서도 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솜사탕이 생각나는 푹신한 겨울 내의를 착용했던 이유이리라. 사실 차디찬 몸 때문에 겨울이 무서운 내게는 잘 준비했던 것이리라. 이후 며칠, 그리고 오늘까지 마냥 부드러운 기운이다. 주말, 산행이라도 하려니 했으나 어제, 깜짝 놀랄 지경 앞에 서고 보니 몸은 움츠러들었다. 고요하나 어슴푸레하기 그지없는, 어둑하고 희미한 의식의 마당 위에 종일 서 있었다. 여느 주말과 거의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였다. 감히 평화를 찾아서는 아니되는, 모순된 고요 지경에서 말이다.
새날, 사는 사람들은 살아가자고 길을 나선다. 어디쯤, 대부분 이미 정해진 골에 들어서서 하루를 소화해야 할 것이다. 제 기분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랴. 각자 눈앞에 던져진 일 뭉치를 하나하나 풀어헤치면서 일곱, 여덟, 혹은 아홉, 열 시간까지, 그 이상까지도 바삐 움직여야 하리라. 하룻밤 새 도무지 사람의 힘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미궁에 빠진 이들에게 작은 손이나마 힘이 되도록 내밀 수 있었으면 싶다. 주변을 살피리라. 혹 내놓을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채 숨을 쉬는 이 없는지 돌아다볼 일이다. 다행이다, 함께 걷자, 내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세요. 자, 일어나요. 주저앉지 말아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 언젠가 그곳에 도착할 거예요. 쟁여져 있는 아픔 덩어리 녹이는데 제가 두 손 모아 쓰다듬어 드릴게요.
오후~
하루, 정신없이 지냈다. 전문적인 일에는 융통성을 능히 발휘할 정도로 조화를 부리지만 사무적인 일에는 영 어설프다. 거의 매일 나는 정식 퇴근 시각 이후에도 일터에 있다. 특히 디지털의 전문성에 의지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것에 엉성하다. 내 잘 쓰는 아날로그형 손글씨로 척척척척 해내던 시절이 그립다. 가끔 디지털과 아날로그형 중 취사선택하여 사무 처리를 하게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세상은 최첨단으로 내닫는다. 주어진 사무 처리는 그때그때 해내야만 마음 편해지는 나는 하루 해가 지기 전에 해내려고 안간힘이다. 거칠지만 속사포이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퇴근 시각을 넘겼다. 밖은 이미 어둑해졌다. 일터 대문을 나서는 기분은 말끔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끝냈기 때문이다. 충성이든지 능력 부족이든지 둘 중 어느 쪽에 해당이 된다 한들 뭐 어쩌랴. 세월의 흔적으로 얼기설기 커다란 구멍을 지닌, 시렁 위에 있는 낡은 대나무 사리 채반처럼 한데 올려져서 뜻 모를 꿈을 꾸고 싶다. 자꾸 눈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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