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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11월이여, 찬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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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여, 찬란하라.

 

 

아침 출근길 1

 

 

한해의 끝물로 달려가고 있다. 끝물. 어떤 시기 혹은 어느 해의 맨 나중에 나온 과일 등이나 물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활달하게 움직이던 어떤 상황에서 그만 기세가 꺾여가는 때를 말한다. 사이시옷이 떠오른다. 이런저런 접속어들도 연결된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 자발없이 끼어있는 듯 여겨진다. 주제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 사는 이들에게 아무 뜻도 부여받지 못한 채 겉돌기도 한다. 아니면 귀퉁이로 내밀려 그저 존재 정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호한 위치에 머물러 있다. 11월이 그렇다. 그런 듯하다.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소외된 달이 아닐까. 그믐 즈음 온 듯 간 듯,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지는 존재 불투명의 존재 같다. 한 달의 끝, 그믐 너머 삭처럼 굳이 들춰보지 않은 날들의 모임이 11월이지 않나 싶다. 그럭저럭 지내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한 달이다. 마침표를 찍으러 가기 위해, 고지에 오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나치는 곳인 듯도 싶다.

 

아침 출근길 2

 

11월은 소스라치지 않는다. 별로 놀라게 할 필요가 없다. 마무리를 향한 길 위에 세워진 역참 정도로 존재한다. 아마 11월을 상징하는 역참에는 그럴싸한 말도 없으리라. 한껏 부려지다가 힘이 모두 풀린, 병색 완연하나 그저 내치기에는 아쉬워서 한 정거장 건너뛰기에 쓰일 수 있도록 세워둔 말이 한두 마리 존재하지 않을까. 마부도 그러리라. 하얗게 센 머리카락 부스럭거리면서 남은 생 얼마 남지 않은 노색 짙은 사내가 혹여 찾는 이 있지 않을까 기다리다가 날 새고 말 것이다. 그런 11월이다.

 

11월은 달력 속에서도 의기소침해 있으리라. 아무도 의리 찾아가며 찾아주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저 달력으로 마련된 열두 장의 종이 속 열두 번째 앞에서 소소한 숨쉬기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꼿꼿하게 자기 힘을 내세우지 못한 채 소심하게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불리거나 세어지지도 못한 채 하루, 이틀 그리고 삼십 날을 조용히 살다 가게 되지 않을까.

 

 

아침 출근길 3

 

11월의 앞에는 일체 꾸밈말이 덧붙여지지 않는다. 그냥 11월이다. 사실 무슨 낱말인가 사뿐 얹기에도 어색하다. 어떤 것도, 아무것도 제 존재를 내세워 드러낼 수 없는 11월. 그렇고 그런 날들로 팽개쳐둔 사람들이 11월은 얼마나 미울까. 하긴 사람 미워할 시간도 지닐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니 미움이니 비교 검색하고 조사하고 판단할 틈도 없이 11월은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다. 

 

외형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뇌에는 필요 불가결한 시기일 것이다. 권력 내세우는 자, 거만한 건강으로 사는 이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온갖 치장으로 오색 찬란해야 할 비겁한 인간들은 그만 11월을 내팽개치고 말 것이다. 휘황찬란함을 추구하는 낙으로 사는 이들은 결코 관심 두지 않을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할 수도 있는 시기 11월이다. 

 

 

그리고 퇴근길은 이미 해가 진 후 어둠이 세상에 내려앉은 후였다.

 

그러나 하늘은 그렇지 아니하리라. 그저 그렇듯 세상의 거죽을 사는 사람들과 세월 풀지 않으리라. 하늘은 크게 화를 내지도 않고 크게 퍼붓지도 않고 크게 노려보지도 않은 채 11월을 살리리라. 겨울 준비를 위해 하늘은 11월을 가장 진중한 한 달이 되게 할 것이다. 그래, 가끔 찌뿌듯한 얼굴에 제법 기세 있는 바람을 실어 11월의 사람들 틈에 나서리라. 한두 번으로 족하지 않으리라. 한해 끝, 12월을 위해 야무지게 11월의 내세를 채우게 하리라. 고마운 11월임을 하늘은 직시하리라. 결코 끼인 채 살아가는 어쩡쩡한 달로 두지 않으리라. 11월의 숨은 힘을 드러내게 하리니, 11월은 강렬할 것이다. 11월이여, 찬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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