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구나.
여행 이틀째 밤이었다. 저녁 시간이라고 해야 옳을까? 어수선했다. 계획에서부터 산만한 하루가 될 것이라는, 예정된 공간에 있던 날이었다. 예상과 달리 별 탈 없는 하루였다. 딱 한 건 발생했다. 즉발성 사건은 아니었다. 안고 있던 지병이 피로에 눌러앉아 나타난 경우였다. 경험한 일은 차라리 반가울 때가 있다. 지레짐작하여 떠올려보곤 하는 억측성 사고를 잠재운다. 더군다나 무난하게 해결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 마무리를 야참으로 진행하였다. 불량한 소화기관을 지닌 나는 야참에서 몸을 빼냈다. 영혼은 공중에 떠돌게 하고 몸은 이곳저곳에 발걸음을 하던 차였다. 중간중간 낯익은 이들이 서성이면 안녕하다는 단문으로 함께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하였다. 저녁 식사를 끝낸 후 얼마 되지 않은 때지만 야식은 낱말 자체가 품고 있는 중의적인 의미에 힘입어 혀의 춤을 돋우리라. 소화불량 증상을 간직하기 시작한 지 꽤 된 나는 그리 아쉬운 것이 아니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웠던지라 적당히 즐기던 참이었다.
낮 동안 아무런 일이 없어 '휴', 안도한 것에 대한 표현이 지나쳤던 것일까. 조물주는 때로, 아니 수시 장난질을 좋아하신다. 아니면 안일한 나머지 더 큰 일을 낼까 미리 예방하는 차원을 만드는 것인가. 잠시 후 다른 한 건이 발생했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피가 솟구쳐 흐르고 있었다. 연필 깎기용 칼이 바닥에 납작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사람은 그를 방바닥에 패대기친 것이다. 비닐봉지를 자르려고 칼을 들었다고 했다. 왼손바닥 오른쪽 아래 두상골(콩알 뼈)을 칼날이 지나갔단다.
내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 후 5분 여 지난 시각이었다. 당사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주변 몇은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휴지 등을 사용하여 상처를 만져주고 있었다. 내 눈에 속살이 제법 깊이를 지닌 채 보인 것이 문제였다. 일터에서 의료 책임자로 일하던 이에게 전화를 넣었다. 언젠가, 내 눈에 보이는 판단 기준으로는 상처 자리를 꼭 누른 후 탈탈 터는 지혈로 끝냈을 것을 그녀는 병원행을 판명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불행히도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여행에 동행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의료 책임은 내가 자진하여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지혈이 되지 않았다. 내가 현장을 목격한 것이 사건 발생 후 꽤 지났다는 생각이 강하게 더해졌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말라붙어 있는 피가 묻은 휴지들로 쉽게 확인되었다. 이는 동시에 사건 발생 시각과 나의 현장 도착까지의 시간 범위를 확대시켰다. 말하자면 1초가 10분으로 느껴지는 식이었다. 일터 의료 담당이 상처 속살의 깊이가 느껴질 때는 꿰매야 한다던 말이 떠올랐다. 이는 나의 생각 꼬리를 붙든 채 집요하게 매달려 있었다.
순간 나의 뇌 속에서는 혈연 속 의사 선생님이 떠올랐다. 통화 가능을 톡으로 물었더니 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소상하게 사건의 내용을 알렸다. 지혈이 되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속살의 골이 눈에 환하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의사 선생님의 안내가 계속되었다. 소독약이 묻은 거즈를 상처 위에 올려라. 지혈이 되는지 몇 분 지켜보라. 놀라지 마라. 괜찮다. 다만 상처가 깊다면 꿰맬 필요가 있다. 깊이가 강하게 느껴지면 더더욱 그렇다. 속살 흰색에 가까운 살덩이가 보인다고 했으니 의사 선생님은 당연히 꿰매야 한다고 답을 줬으리라. 지혈이 되지 않아 당사자가 울고 있는 상황도 생중계가 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당사자의 귀에 폰을 대라더니 '괜찮다, 괜찮습니다.'를 여러 번 말해주고 통화를 마쳤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응급 중인 건에 대한 생각은 이미 뒷전이었다. 총책임자에게 알렸다. 꿰매야 한대요. 아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요. 왜 칼을 지니고 있었을까를 물었다. 나 못지않게 이 여행의 총책임자도 흥분하고 있었다. 내 보고를 듣는 순간 굳은 표정에 양쪽 눈썹이 심하게 씰룩거렸다. 눈썹 한 가닥 한 가닥이 긴장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상처를 열어보라. 누가 붕대 감기를 했느냐. 아무렇지도 않다. 몇 짧은 문장의 명령어로 상황을 진단했다. 소독약을 발랐다. 축 쳐진 붉은 색깔이 거즈에 배었다. 붉은 것은 소독약의 흔적이다. 연고 후시딘을 상처 부위에 바르라. 넓은 면적을 지닌 밴드를 붙여라. 아무렇지도 않다. 강한 박자를 실어 말했다. 다만 돌아가면 꼭 병원에 가 봐라. 끝. 군소리 없이 그는 자리를 떴다. 그의 의식은 단 한 틈도 남기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걸어갔다.
헛헛했다.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양 어깨에 싣고 있던 힘의 근원이 스멀스멀 스러져 내리고 있었다. 너무 요란을 떤 것일까. 어처구니없이 분나한 상황을 연출한 것인가. 너무 쉽게 처리하고 결론을 내리는 총책임자의 언행이 부러웠다. 그 앞에서 부끄러웠다. 그의 언어에 담긴 권위와 책임감의 무게가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줄곧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걱정 말아라. 그저 지나간다. 머릿속에 담아둘 일도 아니다. 그자, 총책임자였던 상관 나으리도 속으로는 아차 싶었을 것이다. 무수한 낱말들과 구절들과 문장들을 만들어가며 나 자신을 달랬다. 나 같으면 '다행이다'를 말했을 텐데.
일정이 끝나고 쉬는 날 없이 일터 현장으로 복귀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도 이 사건은 줄곧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턱 하니 자기 방을 마련한 채 품새를 고정하여 자리 잡아 있었다. 오늘 토요일이다. 나와 함께 산 지 이십 년은 족히 넘었을 화초인 문주란을 분갈이하였다. 제 몸에 비해 크고 진중한 토기의 품에 사느라 늘 좌불안석이었을 것이다. 안쓰러운 문주란. 긴 세월 해마다 한 번씩은 꼭 단아한 연미색 꽃을 보여주었다. 철철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주었다. 고마움에 어서 분갈이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이십 년을 넘게 하고 있었다.
올해는 꽃이 없었다. 그뿐 아니다. 새로 돋아 자라나야 할 잎줄기가 올라오질 않았다. 그나마 있던 잎줄기가 끝자락부터 타내려 오고 있었다. 여행 전 분갈이를 위한 흙과 마사토 구매를 부탁했다. 또 한 사람이 틀림없이 갖춰놓았다. 맘먹고 오늘은 꼭 실행하려고 일을 벌였다. 흙은 굳은 채였다. 스무 번이 넘게 건강한 모종삽으로 흙을 쳐올려야 했다. 잔뿌리 제거를 위해 가위 소독을 하러 부엌에 와 보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의 중간 마디 부근 피부에 혈흔이 선명했다.
약을 바르고 밴드를 바르면서 외쳤다. 돌아오는구나. 지난 화요일 밤 내가 뿌렸던 경망스러움의 흔적이 내 몸에 상처로 돌아왔구나. 침착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활 습관이 결국 자해를 하게 했구나. 찬찬히 살 일이다.
현장 복귀 첫날, 나는 종일 시를 읽고 싶었다.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간다.
시인 문태준 선생님이 산문집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에 인용한 <법구경> 속 문장이다. 경솔하지 말 것. 주책 떨지 말 것. 현재의 생각이다. 보다 진중하고 묵직하고 신중하게 살자.
연중행사였던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 진정 여행이었을까?
'라이프 > 하루 공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아침이다 (36) | 2022.10.31 |
---|---|
이태원 참사도 인생무상 제행무상이랄 수 있을까 (26) | 2022.10.30 |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자 (37) | 2022.10.28 |
그녀 1 (27) | 2022.10.27 |
내 늙은 여자는 1 (66) | 2022.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