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맑음.
아침부터 그랬다. 어제와 그제, 그리고 지난 주 기온에 비해 제법 하강한다는 소식을 출근길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긴 팔에 봄 블랙 셔츠를 걸쳐 입어서인지 그다지 차가운 기운은 몸에 닿지 않았다. 조금 늦은 출발로 아파트 둘레길 한 바퀴 돌기를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리라. 적당한 체감 온도로 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던 대로 첫 번째 출근이었다. 현관 앞 봄꽃들이 지난 해 못지 않게 번성해 있다. 아침 나절을 바쁘게 움직이시던 지난해 본관 건물 경비 아저씨가 떠나시면서 일터 곳곳 꽃 관리가 제대로 될 것인지 궁금해하던 것이 싹 풀렸다. 새로 오신 분 역시 열심이시다. 다만 내게 긴 대화를 시도하지 않으시다는 것 뿐.
여러 색의 데이지가 나를 반겼다. 패랭이꽃도 무더기로 보인다. 거름을 잘 했는지 팬지 등 여러 화초들이 참 싱싱하다. 그 곁을 지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 며칠 전 나의 차림새를 살짝 얹은 사진을 찍었더랬는데 갤러리를 살펴봐야겠다. 온전한 봄이다.
현재 진행 중인 두 건의 문제가 어서 해결되고 차분하게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나날을 맞이했으면 싶다. 두 건 모두 동일 인물에 또 한 사람이 걸고 문 사건이다. 발생하는 대부분 일이 그렇듯 둘 다 책임의 무게가 방방하다. 다행히 둘 다 각자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 왜 시작했을까. 아무런 남김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왜 몰랐을까. 서로에게 아픔만 남는다는 것을.
지난 토요일 또 한편으로 머리 무겁게 나를 짓누르던 건도 지나갔다. 일을 치르고 나서 내 심정을 마구잡이로 휘갈겨 쓴 덕분인지 마음이 쉬 풀렸다. 간사한 것이 인간이라고 그제 블로그에 퍼붓고 어제 또 고상한 문구 하나를 생각해내어 블로그에 내 심정을 남겼더니 오늘 내 마음은 뜻밖에 따스하다. 냉기 좍좍 흐르는 내 육신에서도 봄 냄새가 솟구쳐 올라 일터 바쁜 업무 중에도 화사한 냄새가 입 안 가득하다. 종일 이쁜 말을 해댔다. 오직 순수를 추구하는 나이, 십칠 세 소녀처럼 말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리스트,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 S.139 (F.Liszt, 12 Transcendental Etudes S.139)>을 들으면서 퇴근 시각이 다 되어가는 즈음에 일기를 쓰는 지금 기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래, 늘 이렇게 세상사 따뜻한 소리만 듣고 살고 싶다.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하던 당시의 현란한 제스쳐까지 나를 황홀하게 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허공에 대고 웃는 나의 웃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퇴근하면 임윤찬의 콩쿠르 결선 연주곡이었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들어야겠다. 물론 당시 콩쿠르 심사위원장인 마린 앨솝의 지휘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던 것으로 말이다.
오늘은 옷차림까지 아주 가볍게, 마치 우리집 앞 마트에 가는 차림 비슷하게 입고 나와서인지 몸도 마음도 가볍다. 어서 집으로 가서 오늘은 임윤찬을 들으면서 폴 워커 그리기를 끝맺어야겠다. 아, 그런데 아이에게 보낼 파김치를 담궈야 한다. 오늘은 퇴근 후가 더 바쁘겠구나.
이곳, 내 블로그에 오는 모든 이들이여. 편안한 잠으로 내일을 평온하게 보낼 힘을 충전시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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