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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명시 선집 100'이 있는 노로의 의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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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선집 100'이 있는 노로의 의사 선생님.

 

개인 정보가 있어서 출판사를 지웠다. 예스 24에서 가져왔다. 한때 나를 살게 했던 시집이었다. 내 집에도 있다.

 

 

부리나케 조퇴를 낸 시각을 지켜서 병원에 다니러 갔다. 몇, 일터 일로 시달렸더니 온몸이 시들시들해졌다. 본래 지니고 있는 몸의 상태가 그럭저럭 가지고 다니는 정도라서 그러려니 하면서 사는데 며칠 전 어느 순간 머리가 핑 돌더니 '훅'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혹 문제가 있지 않나 싶었다. 두려웠다. 

 

왜 이렇게 병원만 생각하면 온몸, 모든 신경이 우둘투둘해지는가. 하여, 어제는 아침 출근길부터 가라앉았다. 길을, 새벽길을 걷는데도 축 늘어진 오후 같았다. 어인 일인지 요즘 들어 제법 수면 시간도 푹한데 몸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래, 가자. 병원으로 가자.

 

출근하자마자 조퇴를 내고 자랑인양 옆방 젊은이에게 외쳤다.

"저요, 오늘 조퇴합니다."

빼꼼 앞 출입문의 조금 열린 틈이 있어 다행이었지 잠겨진 문을 노크하여 일부러 문을 열고 말했더라면 그 젊은이 정말 황당했으리라. 뜨악한 눈과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서요. 당신 조퇴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요? 우리, 그냥 아무 말없이 살잖아요. 일일이 보고하면서 사는 것 아니잖아요.'

 

그래, 에구머니나. 나는 갑질하고 말았구나. 육아 조퇴 등 일 년 내내 조퇴 등 각자 근무 상황에 대해서는 무슨 암흑세계의 규칙처럼 각자 행동한다. 우리는 일체의 알림이 없이 산다. 어느 누구나. 특히 우리 팀은 그런다.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다. 조용히 사라지고 조용히 나타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원칙 아닌 원칙인데 느닷없이 무슨 보고? 대단한 형식으로 들이닥쳐 외친단 말이냐. 그것도 아침부터 말이다. 되돌아서 다시 문을 열고는,

'아, 괜한 말을 내뱉었네요.'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할 뻔했다. 내 말  끝에 황당해하는 모습이 너무 뻔해서 그만 어떤 미안함을 표시해야만 할 것 같았다. 멈출 수 있는 정신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가.

 

나의 몸 상태를 점검해 주시는 분은 아마 나이 일흔을 넘기신, 여든에 가까운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시다. 그는 늘 나를 만날 때마다 말씀하신다.

"운동은 열심히 해?

"예. 출퇴근길을 열심히 걷고요."

"몇 분이나?"

"왕복 한 시간은 될 것입니다."

"어, 그 정도로는 부족한데?"

"그래서 실내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무슨~?"

"아, 스쾃 일백 개씩은 하려고 하고요. 발 뒤꿈치 들었나 놓기도 일백 개씩은 하고요. 허리에 좋대서 두 다리 허리 위로 올려 걷기도 일백 개씩은 하려고 해요. 참, 우유판 쌓아놓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기 반복운동도 해요. 참, 아, 실내 자전거 타기도 하네요, 가끔씩요."

"그래, 잘하고 있네. 근데 걸을 때는 빨리 걸어요. 그렇지 않음 운동이 안 되지."

"예. 걸을 때마다 선생님 말씀이 떠올라서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대화는 위 내용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님은 피검사 등을 하게 한 후 덧붙여 몇 검사 결과를 유심히 보셨다. 다행이 문제는 없다 하신다. 내일 오후에(그러니까 오늘) 전화를 넣어 검사 결과를 확인하라는 말씀과 함께 진료를 마치신다. 감사하다는, 안녕히 계시라는 말씀에 선생님은 그래 잘 가라는 말씀으로 내게 안녕을 고하신다. 따뜻하시다.

 

오늘 유독 선생님의 따뜻함 마음이 내게 와닿게 하는 것이 있었다. 선생님의 책상 한쪽 책더미 위를 지키는 한 권의 책이었다.

<명시 선집 100>

아마 이런 비슷한 제목. 그럴 거다. 두상에 '대한민국'이 붙었던가. 

 

오래전, 내게도 이런 비슷한 제목의 시집이 한 권 있었다. 아마 정신없는 상태로 존재하는 우리 집 책방의 책장 한 구석에 지금도 있을 것이다. 누리끼끼한 종이들이 한글을 아는 대한민국 30대 이후 사람들이라면 제목만으로도 친근한,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서 그만 시들어버린, 매운 씁쓸함을 안고 있는 책. 

 

나는 그 시선집을 둘째 언니, 집안에서 천재라고 불리어지던, 이 세상 최고의 천사이신 언니로부터 물려받았을 거다. 나는 언니의 글쓰기 지도로 초등 6학년 때(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지은 시로 교육감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도내 1등 상. 아,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른다. 시골뜨기 농사꾼  딸이 대도시에 전학을 가서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더니 교육감상이라니. 나이도 제일 어려 동생 같다고 여겨지던 꼬마가(실제로 나는 나이가 또래보다 적다. 어떤 친구는 무려 세 살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거의 두 살 차이가 난다. 나는 진짜로 천재였다. ㅋ. 여섯 살에 1학년을 시작하였으니) 느닷없이 도대회 글짓기에서 1등이라니. 콩나물 마냥 교실이라는 좁은 시루에 빽빽하게 들어서있던 학급의 친구들은 눈을 휘둥그래  뜨고 나를 몇 번 눈여겨봤다. 아, 우리 반에 저 아이가 있었구나 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는 고개를 까딱거리더니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후 새삼 내게 눈길을 다시 주는 이도 없었던 듯. 하여 나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없다. 전학을 갔더니 그렇다. 딱 한번 전학인데도 나는 정을 붙이지 못했다.

'고것, 대단하네.'

식의 눈초리였다. 

 

정상적인 신체 리듬이 허물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에 건강이 염려되어 찾은 병원에서 뜻밖에 나의 옛날을 만났다. 노의사 선생님이 읽고 계시는 책 덕분이다. 오늘(실제로는 어제) 출근하셔서 선생님이 읽으신 시는 어떤 것이었을까. 나의 2, 30대를 지배하셨던 김승희의 시는 아니었을 거다. 왜? 내가 젊은이 적 읽었던 김승희는 너무 강렬하다. '나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 나는 그 강렬함에 푹 바졌다.

 

나의 3, 40대를 이끄셨던 조정권 혹은 김종삼일 수는 있겠다. '산정묘지' 그리고 '성탄제'. 조정권의 언어는 내게 여전히 우주 운행의 반석을 구성하는 모체이다. 김종삼의 문장은 끝없는 미로인 온갖 물음표의 인본을 일구는 언어이다. 나의 40대를 젊음의 역동으로 다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던 기형도나 김경주는 읽으셨을까. 이는 또 아닐 것 같다. 그들은 여전히 젊다. 그들은 늘 나를 내쳤다. 자기네만 영원한 젊음으로 존재하는 얄미운 시인들. 선생님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아, 이 시인의 시를 읽으셨다면 한참 머무르셨을 거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사는 깊은 수렁의 현실을 상큼한 소독제를 뿌려서 내 영혼을 세척해 주셨던 시(아, 현재 나의 최고의 시인이 생각나지 않네. 시집 이름도. 두 시간 가까이 찾고 있다네. 이게 무슨 일인가. 문 씨 시인인데. 고려대 출신에, 이게 뭔 일인가). 혹은 이상이나 백석을 읽고 계혔을 수도 있겠다. 

 

아~, 그리고 장석남, 이문재, 강은교, 함민복, 이성복, 정현종, 마종기, 심보선, 오은, 오규원, 진은영, 최승자 등 등등 등. 상당 기간 모른 척하고 외면했던 여러 시인들이 궁금하다. 노로의 의사 선생님을 뵙고 몸 상태의 검사를 의뢰했더니 선생님은 내 마음에 포근한 위로를 담아 주셨다. 말끔한 정신이 되어 돌아왔다. 

 

내일은 어린 시절 천사 언니로부터 건네받은 시집을 찾아 내 낡은 생의 향수를 쓰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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