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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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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를 읽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요즈음 읽고 싶은 책들을 빌려와서 제대로 읽지 못했다. 반납했다. 아쉽기 그지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특히 벼르고 벼르던 책이었으므로 완독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좀처럼 이런 일은 있지 않았다. 세상에나, 한탄했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참 미련하다 싶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더라도 나의 심장을 쿵쿵대는 문장들과 만날  때의 짜릿함을 어찌 잊으랴. 각각의 장면들을 위해 상황을 제대로 포착하여 드러내는 낱말들의 성실한 책무에 늘, 얼마나 감탄했던가. 오밀조밀 오묘한 조화의 문구들이 나열될 때 글을 읽고 깨닫고 동행하는 기쁨에 얼마나 고마웠던가.

 

글이 나를 살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이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던 날들이 있었다. 글이 내 혈액을 쿵쾅쿵쾅 뛰게 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이게 뭐람. 아직 책을 읽기에 문제가 되는 눈이 아니며, 독서에 진중하게 빠질 일을 어렵게 만드는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완독 하지 않은 채 책을 반납하다니. 이 현상은 왜 벌어지고 있는가. 어쩌자고 빌려온 책을 온전히 읽지 못한 채 돌려보내곤 하는가.

 

출근길 하늘이었을 것이다.

 

 

 

내가 내 가슴을 짓누르고 사는 느낌이다. 내가 내 혈액순환의 맥을 마구잡이로 뒤흔들고 있지 않나 싶다. 내가 내 숨통의 원활한 리듬을 제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내가 나를 꽉 붙잡은 채 놓아주질 않고 있다는 것이 오판이길 바란다. 내가 소설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 기우이길 바란다.

 

더는 아니 된다 싶어 마음 단단히 먹고 빌려온 책이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소설이다. 소설을 살지 않기 위하여 소설을 읽기로 했다. 소설 속 소설을 살지 않기 위하여 기록을 읽기로 했다. 삶을 알고자 벼르지 않는 죽음을 위하여 죽음을 읽기로 했다. 

 

꽃이 가을을 데리고 오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운명처럼 죽음 직전에 살아나는 운명이라도 맞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미리 그를 읽기로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살고자, 죽음을 미리 살고 온 그를 닮고자. 그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기로 했다. 완독 하기로 한다. 그의 대표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매년 읽던 시절이 지금에서 멀지 않다. 죽음을 읽고 보다 진한 삶을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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