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하루 공개

내 늙은 여자는 1

반응형

 

 


내 늙은 여자의 하루 1

- '늙음'은 단지 '청춘'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늙음'은 '영원한 청춘'일 수도 있다.

 

 

어제. 시제를 지냈다. 시. 제.  아래 사진과 같은 위치에서, 거의 똑같은 시각에 바라본 동쪽 하늘!

 

 

반짝거린다. 도톰한 윗입술 아래 아랫입술을 야보롯이(어떤 곳의 귀퉁이 혹은 어떤 곳 끄트머리에 위험하게 있을 때를 이르는 말로 내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어휘. 물론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다. 슬픈~) 맞춘다. 윗입술 두께에 아랫입술이 묻힐까 걱정된다. 두 입술의 합은 그다지 어긋나지는 않는다. 뺑 돌아간다, 삼천 리. 왔다 갔다, 구천리.’ 어릴 적 듣던 말이 떠오른다. 이마이다. 여전히 툭 튀어나온 이마를 더듬는다. 이마 둘레의 2분은 1은 되겠구나 싶다. 최소의 입술 둘레길을 만든다. 합체된 두 입술을 쭉 내민다. 뻘쭘해진 것이 분명하다. 오늘 아침, 며칠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해결했다. 으드득으드득 이빨 앙당 물고 고심하던 것이다. 두 입술을 넓게 편 채 입매무새를 채근한 후 서너 번을 야무지게 다진다. 양쪽 어깻죽지를 살포시 들어 올려 잘디 잔 씰룩거림으로 헹가래를 쳐준다. 어깨춤을 들썩인다. 사뭇 충만해진 만족도를 동그란 두 눈에 담아 반짝거린다.

 

어제, 시제를 지냈다. 같은 위치에서 거의 똑같은 시각에 바라본 서쪽 하늘!

 

 

으쓱해졌다. 그끄저께 글을 써 올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던 모습이 떠오른다. 마냥 행복해했다. 며칠 만에 쓰는 것이었다. 헤벌쭉해진 채 씰룩씰룩 내밀곤 하던 두 볼의 표정을 떠올린다. 디지털 화면에 입력할 수 있는 낱말이며 문장이 제법 여유 있었을 것이다. 지닌 어휘력의 한계를 잘 안다. 최근 힘들어하던 댓글 검색이며 댓글 입력하기도 십여 분 넘게 하는 것 같았다. 사람 사는 사이 최소 예의는 지킨다는 신조로 산다. 댓 댓글까지는 힘들어하더라도 자기 블로그에 댓글을 다는 이들이 쓴 글은 꼭꼭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간답다. 가끔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한다. 자기 쓴 글에 거의 매일, 빠짐없이 와서 긴 글을 읽어주는 블로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애정이다.

 

인간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버티는 보통 인간이다. 대형 사고로 블로그가 열리지 않았다. 복구되었다. 하루 열리더니 그끄저께 하루를 넘기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이 문은 다른 블로그 친구들에게는 흔쾌히 개방된 것이었다. 이내 오염이 혼자만의 것임을 알고서는 자기 삶의 한 줄 힘줄이 끊긴 듯보였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책을 탐색하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나 보다. 이틀 내쉰 한숨의 부피는 제법 덩치가 있었다.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면 늘 하는 방법이 '혼잣말하기'이다. 당연하다. 그녀는 늘 혼자이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이나 계를 만드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 제 성에 차지 않으면 풀어낼 곳이 없으니 혼잣말로 화를 다스리는 것이 최선이다.

 

무섭다. '어이쿠, 그만둘까 보다. 대체 고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또 이런담? 한데 다른 사람들은 열리는 것 같은데 왜 내 블로그만 이럼? 짜증이네, 왕짜증이야.' 그녀가 부리는 성토로 봐서 분명 이곳과는 안녕을 할 것이라 여겼다. 설령 당장 이곳 팀원이 방문하여 무료 서비스를 해 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며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내 목을 내놓겠다고 사과를 해도 뒤돌아보지 않을 기세였다. 일상이 그랬다. 한번 마음에 들었다 싶으면 씨알이며 건더기며 가리지 않고 자기 것을 다 내놓는다. 간과 쓸개까지 거뜬히 내놓는다. 아니다 싶으면 증오보다 더한 무관심으로 단 한 번에 강력한 벽을 내리친다. 최고의 단단함으로 판을 가르고 너는 너이며 나는 나라고 선포한다. 그것으로 끝이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떤 마법을 지닌 이무기도 가까이하지 오지 않을 정도이다. 무섭다.

 

또 무섭다. 내일 먼 곳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난다. 며칠 짐을 싸면서도 줄곧 꽉 막힌 이곳이 마음에 걸린 것인지 자꾸 컴퓨터를 가동한다. 당신이 봐도 빤하고 내가 봐도 당연하고 그 누가 봐도 연결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시 열어보고 시도한다. 실패다. 또다시 들여다본다. '마부작침(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말겠다는 뜻의 사자성어)'을 실현하겠다는 오기일까. 오늘 아침에도 이곳 홈이 열리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뭔가 내동댕이치고 있음이 빤히 드러나게끔 인상을 찌푸렸다.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내려는 듯하다. 가까이 가기가 무섭다. 하나 속내는, 험악한 인상에 담긴 내용은 가까이 사는 이라면 그 누구도 빤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결별 선언일 것이다. 

 

결별을 선언한다? 속이 편치 않음은 당연하다. 큰맘 먹고 시작한 일이다. 육신을 앞세운 자기 머릿속에 숨어있던 것들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속된 표현을 마구 내놓음을 용서하라. 미칠 것 같았다. 미쳐버리고 싶었다. 미치지 않아야 했다. 어떤 방법, 어떤 갈래로든지 자기표현을 해야만 했다. 왜? 뭐 특별한 이유인들 그 누가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다만 과열이었다. 너무 많이 살았다. 수학적인 계산과 작위적인 통계표에 의하지 않더라도 앞날이 흐릿했다. 때가 되면 가고 가다가 힘들면 잠시 멈추고 다시 또 가는 길이 인생임을 모를 리 없건만 유달리 불편해했다. 뭉개진 날들을 살아낼 방법이 필요했다. 이름하여 탈출구일 것이다. 담고 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렇담 결별 선언은?

 

쏟아내기로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허함을 판단하면 바로 채워야 한다. 마침내 쏟아낸 방법이 이곳에 글쓰기였다. 시작했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올린 글이 일천 회를 넘어 일천 백회를 지났다. 질을 따질 계제가 되지 않았다. 우선 양을 채우기로 했다. 세 살 버릇이래야 여든을 가지, 이 나이의 버릇이란 굳히기가 쉽지 않았다. 제법 루틴 화가 되었다고 여기던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운이 따랐다. 두 번째 문제는 내 탓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되지 않았다. 화산 폭발 후 여진이 당연한 것임을 모를 리 없다. 여진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내 탓이오.'를 물리칠 방법을 강구하질 못했다. 자가 해결 후 자기 충족을 할 수 없었다. 문제는 하루, 이틀을 넘겼다. 본부와의 결별을 선언하자고 했다. 네 탓 내 탓을 할 것 없이 정이 떨어졌다. 어차피 결별이라고 판정 짓기로 했다.

 

이미 정든 후였다. 여러 방법으로 시도했다. 결별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천백 회 넘게 입력한 글들이었다. 저질이니 뭐니 이상한 판결을 받은 적도 없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고 했던가? 아니다. 능력 부족이 무서워 최대한의 수동적인 가동이었다. 글쓰기를 멈출 상황이 되면 아니 되었다. 그러므로 질을 능가한 양을 푹 떠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는 부려놓은 숫자가 너무 컸다. 사람살이. 차라리 결별은 쉽다. 이사는 쉽지 않다. 특히 대한민국은 그렇다. 그래서 집값, 땅값, 부동산이니 동산이니 뉴스거리이지 않은가. 곁가지를 탔다. 돌아왔다. 이삿짐을 싸 이사하듯 어떤 회사에 맡기면 티끌 하나 건들지 않아도 짐이 이동되는 게임을 아직 이곳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름의 방법으로 타 블로그에라든지, 기존에 가동하고 있는 블로그로의 이동도 쉽지 않다. 물론 모두 당사자의 팔자소관이다. 당자의 지극히 낮은 능력이며 소양 부족 때문이다. 

 

시제. 조상님들 대대로 오셔서 드시고들 가셨을까. 온갖 음식을 박스째 해오신 숙모님께 늘 감탄한다. 상 차리기 직전!

 

 

결별 선언이라는 플래카드 홍보를 잠시 접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홈그라운드 수선을 시도했다. 만사 일사천리의 해결은 늘 그렇다. 뜻하지 않게 생각의 숲에서 불쑥 솟아오른 길은 가장 단순한 길이었다. 들어오는 길을 만지작거리면 되는 것이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는 해결되었다. 한 블로거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이곳 출입로를 열어 어찌 저찌하고 검색창을 클릭하고 열고 누르고 확인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옳은 것은 때에 따라 옳을 뿐이다. 옛 기억, 그것도 또렷하지도 않은 옛 기억에 너무 많이 의존하면 자고로 정석의 방법은 달아난다. 지나간 옛 추억은 지나갔다는 서운함 혹은 그리움의 영역에 담아두는 것을 끝내야 한다. 아쉽다 하면 더 멀리, 더 오랫동안 등을 돌려있다. 해결되고 보니 너무 쉬웠다. 지난 문제 발생 시에 사용했던 방법의 응용이기도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하여 세상 속 자신의 존재가 너무 민망하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주제에, 그것도 매일 한 꼭지씩은 꼭 올리려니 다짐하면서 실행해가는 인간인데 고작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마음 졸여야 했다니. 참 한심스러웠다. 엊그제 일을 낸 홈 그라운드 팀들에게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우스꽝스러웠다. 이 공간에, 지금, 혼자이니 다행이라 여기자 한다. 두 입술을 쫑긋 내민다. 어색함이 덜 해졌다. 민망함도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녀는 참 간사스럽다. 다행이다 싶었다.다시 쓰자 한다. '내 늙은 여자의 하루 1'이었다.

 

 

시제 음식 중~.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와야 해서 조금만 먹었다. 아까웠다.

 

 

여행, 잘 다녀오자. 2박 3일! 이곳에 들를 수 있을까. 그리울 것이다. 

 

반응형

'라이프 > 하루 공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자  (37) 2022.10.28
그녀 1  (27) 2022.10.27
그립다  (40) 2022.10.20
'적절하다'를 갖춰 입자  (38) 2022.10.14
유목을 위하여 2  (12) 202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