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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두 계절을 사는 시기, 잡다한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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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계절을 사는 시기, 잡다한 상념!

 

 

 

 

오늘 아침의 하늘 1

 

 

 

출근을 준비하면서 날씨 예보를 읽는다. 말초신경을 놀라게 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기온이 너무 낮아 깜짝 놀랐던 며칠 전 아침처럼. 7시 10분 전, 현재 예상 기온이 21도. 평소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충분히 견딜만하겠다 싶어 주저 없이 출근길로 들어선다. 아파트 출입구를 나서니 정식으로 바깥 기운이 내 온몸을 감싼다. 양팔 맨살이 움찔한다. 유난히 새롭게 만나는 대기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이 부위. 도톰한 살집이 한 짐인데 유독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양팔 바깥쪽 살덩이들의 어리광에 헤픈 웃음 한 줄 내뱉는다. '견딜 만 해. 몇 걸음 내디디면 금세 찬 기운이 고개를 숙일 거야. 걱정 마.'  힘차게 하루를 내디딘다.

 

주말을 꼬빡 집에서 지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되풀이되는 나의 주말이다. 왜?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유튜브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생활 습관이 먼저인지 성격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내 정신과 사상의 합이 참 괜찮은 편이다. 이틀 안에 어떻게든 그림을 마치기로 작정한 이번 주말은 그야말로 완전한 집콕이었다. 어젯밤 일기에 앞서 올린 그림은 아침에  다시 보니 엉망진창이다. 

 

오늘 아침의 하늘 2

 

 

 

완성했다 치고 가족 톡방에 올렸더니 강원도 오지의 내사랑이 답해 왔다. '비슷합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여지없이 자기 판단을 내보이는 이 녀석의 이 정도의 답은 '그저 그런 정도'라는 뜻이다. 다시 보니 그럴 만하다. 코와 턱은 그리다가 만 듯싶게 느껴진다. 수정 없이 블로그에 그대로 둘 것이다. 일단 그림 그리기의 속도에 최첨단 제트기를 달아보자. 결코 '대강' 그리는 것은 아니다. '집중'과 '몰입'에 중점을 두자. 

 

그런데 나는 왜 영화 '트와이스 본'을 보면서 줄곧 조연인 이 남자에게 마음이 끌렸을까. 나는 왜 이 남자의 모습을 스크린 샷에 담았을까. 왜 주연보다 이 남자를 그리고 싶었으며 그렸을까. 아하, 세심히 살펴보니 눈이 제일 문제로구나. 한 여자를 보는 순간부터 사랑했으나 이내 뒤로 밀려나서는 '사랑'의 시옷 자도 내비치지 못한 이 남자. 이 남자는 두 눈 가득 줄곧 슬픔이었다. 사랑, 그에 앞서 민족이라는 덩어리 속의 한 사람으로 살면서 이 남자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민족의 원혼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사랑에 매달릴 수도 없었다. 천성이었다. 이 남자의 슬픔을 그림 속에서 제대로 표현하지를 못했으니 당연지사 '그러 그렇고 그런 그림' 정도인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언젠가 온전에 가깝도록 다시 그릴 날 오리니, 기다리라. 고히코여, 아드난 해스커빅이여. 

 

언뜻 무지개가 보였다네, 오늘 아침의 하늘 3

 

 

금요일 출근길에 본 꽃들이 대부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 없는 가운데 홀로 세상을 접은 친구들도 있으리라. 대기의 건조함 때문인지 꽃잎 한 장 한 장이 참 선명하다. 갓 찍어낸 판화 속 꽃처럼, 꽃을 사모하는 어느 화가가 금방 그려놓고 떠난 것처럼 생동감이 강하다. 어쩌면 사랑을 두고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화가가 애틋함을 가득 담아놓고 방금 떠난 것 같은 뚜렷한 색과 선이 슬플 정도이다. 생명으로 지탱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나마 남은 생은 고운 모습 새기고 가겠다는 다짐을 읊고 있는 듯한 초가을 꽃잎에서 굵고 짧은 생명이 느껴진다. 고귀하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프로그램화하여 현장에 적용하면서 발표해야 할 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열심히 머릿속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생각만 한 겹, 두 겹, 세 겹, 끝없이 반복되고 확대되어 쌓이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욕심인 줄 잘 아는데도 범위가 좁혀지지 않는다. 발표해야 할 시간은 한 시간도 안 되는데 구상하고 있는 내용은 무려 10시간도 넘게 구획되고 있다.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끝없는 축적과 확대만 계속하고 있다. 오늘, 내일 중으로는 압축해야 한다. 압축이라기보다 버릴 것들을 확실하게 꼬집어서 끄집어내야 한다. 늘 발표 후 '욕심이었다'라고 후회하면서도 왜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일까. 원죄일까. 인간이기에 기어코 하고야 마는 무의식적이면서 숙명적인 저지름.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멈추자. 적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고르자. 최소한의 내용을 건강하게 발표하자.

 

태양의 고도가 최절정에 달한다는 오후 두세 시쯤엔 또 여름일 것이다. 

 

(여기서부터 오후, 그리고 집)

 

그래, 태양의 고도가 최절정에 달한다는 오후 두세 시쯤 되자 기온이 급상승한 것 같았다. 몽땅 집어넣은 음식물은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기 모양새를 꿋꿋하게 지키는 양 두툼하게 불러 오른 배는 단 한 끝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먹은 음식이 너무 많아 소화기가 모든 계정을 일단 멈춤 해버린 듯. 복압으로 인해 부푼 호흡은 가지런한 리듬을 쉽게 되찾질 못했다. 얼싸덜싸 후끈 올라온 더위를 산다 싶은 겨를, 아침 녘에 맛 본 낮은 기온이 매력적으로 기억되었다. 사람의 기분은 조울증 환자처럼 급경사의 기복이었다. 숨 쉬는 것이 짐이었다. 

 

오늘은 일찌감치 이곳 일기를 어서 올리고 영화를 봐야 되겠다. 실내 운동이 급하다. 어제저녁 식사부터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 신체 기분이 지저분하다. 

 

가을 승이 압도적이지만 여전히 낮은 여름이 마지막 드센 악력을 쥐어짜고 있다. 두 계절을 사는 묘한 이 기분을 즐길 거나 아님 말 거나. 즐겨야 한다. 약해지면 아프게 된다. 토요일에는 매일을 함께 하는 이들 중 한 명이 '코로나19' 2차 양성을 선고받았다. 나는 자가진단 결과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불안하다. 견뎌내자. 

 

'가을 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라고 하는데 내일 또 폭우 형태의 많은 비가 쏟아진다고 한다. 내리는 비에 충만함 감성으로 들뜨는 짓은 이번에는 안 하련다. 모두 무사 무고하시길. 아마 비도 두 계절의 양상으로 내리려나 보다. 철저하게 자기 안에 가두어 놓고 인간들의 놀이를 내려다보고자 하는 조물주의 계산일까. 또 얼마 후에는 가을비 여우비가 내릴 것이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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