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아이러니의 예술'을 시청하였다.
- ' EBS EIDF'에서
EBS EIDF(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 기간인가 보다. 매 해 기다렸다가 미리 다큐 내용을 검색하여 보던 것인데 오늘은 우연히 텔레비전을 켰다가 알게 되었다. 그림 그리기 끝에 영화를 보면서 온몸 운동을 할까 하고 켰는데 EBS였고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 기간이다. 반갑다.
진행되고 있던 프로그램 속 주인공이 나를 흥분시켰다. 영화감독 이창동이다. '이창동 아이러니 예술'이었다. 적격이다 싶었다. 일년에 2,300여 편의 영화를 보는데 한국 영화는 10여 편 내외이다. 언젠가 이곳 블로그에서도 들먹인 적이 있는데 한국 영화는 너무 빤하다. 첫 몇 장면을 보면 다음, 다음 장면들이 짐작이 되고 결론도 예측된다. 대부분 맞다. 이상하게 싱겁고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뜻밖의 장면'이나 '뜻밖의 결과'를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모두 봤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그가 감독한 영화 여섯 편이다. 인생사 '흑의 세상'를 '백의 세상' 속에 등장시켜 '대체 사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그의 영화에는 어두움을 사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각자 나름에 맞게 각색한 해결 방법을 시도하게 한다. 어두움은 더욱 짙은 어두움을 낳고 어두움은 곧 이어질 것만 같은 '밝음'의 세계를 앞에 두고 한번 더 고꾸라지게 한다. 고꾸라지는 역경은 곧 이렇게 밖에 호든 저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일종의 해결책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슬프고 아픈 해결책이다. 주인공은 이 해결책을 기꺼이 수용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며 가던 길을 비껴 나아가게 한다.
이창동 영화의 굵은 선들을 있게 한 것은 문학이다. 그는 일찌기 소설가였다. 그의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각 단편마다 그의 소설에는 자기 모습을 또렷이 드러낸 인물이 있었다. 소위 주인공인 셈이다. 한데 주인공들이 모두 뒷자리 한 켠에 두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변두리 사람들이다. 슬프고 아프고 처참한 생을 사는 이들이었다. 오늘 다큐에서 자기 소설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소설을 시작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화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대구 산이었다. 어린 시절 집은 가난했고 뇌성마비를 앓고 있던 누나가 있었단다. 누나의 방위병 역할에 수시 이사를 했던 관계로 친구들이 없었으며 그는 늘 진정 사람들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면서 살았단다. 그의 유년 시절 집들과 그의 모교를 보여주었다. 그는 뜻밖에 초등학교 시절 영화와 인연을 맺었단다.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 갑자기 헷갈리는)'를 자기 초등학교에서 찍는데 '저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를 말하자 뜻밖에 영화감독이 우산을 가져오라고 했단다. 가져간 우산을 면도칼로 짝짝 찢어대는 감독이 하 이해되지 않았고 가난한 이창동은 이 아까운 우산을 어찌해야 하나 걱정스러웠다고. 의외로 그의 영화와의 인연은 일찍 시작되었구나. 그가 자기 돈을 들여 본 최초의 영화는 '로드 짐'이었단다. 보는 내내 공포스러웠다는데, 분명 나도 본 영화건만 자세한 스토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다음 주에는 꼭 다시 한번 봐야 되겠다.
오늘 다큐에는 그의 영화에 출연한 모든 주인공들이 모두 출연하였다. 대체로 이창동은 자기 각본에 맞는 배우를 찾아 각본을 전하면서 '강요'가 아닌 '주문'을 한단다. "배우여, 각본을 읽고 네 안에 들어있는 네가 맡은 역할의 모습을 끌어내어 연습을 하고 연습한 내용을 내게 보여다오. "모든 배우들이 하는 말이 똑같다. 영화 '밀양'의 송강호는 전도연이 너무 무서워 영화를 찍던 내내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단다. 배우 문소리가 주연을 맡았던 '오아시스' 속 공주는 뇌성마비를 앓던 친누나가 모델이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늘 누나를 타켓으로 덤비는 악마들을 도맡아 처리해야 했던 이창동은 친구가 없었단다. 가끔 악마보다 더한 악마같은 아이들로 인해 이창동은 유년 시절이 아팠다 한다. 다행히 누나는 영화 속 주인공 모습 그대로 자기 모습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은 채 씩씩하게 생활했다니 참 다행이다. 이창동은 문소리가 자기 역할을 연습해 와서 보여줬을 때 기대 이상의 한공주를 연기하여 크게 놀랐단다. 그러고 보면 이창동 영화의 배우들은 어느 한 사람 실패한 경우가 없다. 이창동은 인물을 보는 눈이 대단하다. 한석규만한 초록 물고기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나 다시 돌아갈래'를 그렇게 외칠 수 있는 '박하사탕'의 설경구만한 배우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를 노래할 한공주의 문소리가 없는 '오아시스'를 어찌 상상할 수 있겠으며 온몸에 배치된 모든 세포로 세상을 울 수 있는 전도연 없는 '밀양'을 어찌 꿈꿀 수 있겠는가. 그렇게나 우아하게 늙은 시인 윤정희가 시를 쓰고자 애타 하는 모습을 황홀하게 함께 걸을 수 없다면 영화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온 세상을 창창하게 호흡하는 청년 유아인이 뛰는 것을 볼 수 없다면 영화 '버닝'이 어찌 '버닝'일 수 있겠는가.
<시인>. 윤정희의 출연으로 호기심 가득 봤던 영화. 미자는 딸의 이혼으로 거두게 된 손자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노인을 돌봐주는 댓가를 받아 생활한다. 집단 성폭행으로 세상을 떠난 소녀 희진. 거기에 가담한 손자. 어느 날 시 쓰기 문화 교실에 참여하게 된다. 학창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시인이 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시인 선생님은 일상을 세심하게 살펴서 시를 쓰라고 하는데 시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소녀 희진의 가해자 손자를 둔 그녀가 돈 500만원을 합의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녀는 늘 그녀를 넘보던 노인과의 잠자리로 돈을 마련하고, 손자를 고발하고, 그리고 그녀는 시인 앞으로 한 다발의 꽃과 시 한편을 놓고 사라진다. 소녀 희진의 뒤를 따른 것일까. 그녀가 쓴 시는 '아네스(희진)에게'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한가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돌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 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아이러니. 반어법이자 역설이다. 아이러니를 가장 멋있게 해결할 수 있는 분야는 문학이다. 이창동의 영화 각본을 읽으면 영화에 앞서 문학이 떠오른다. 한 편의 소설이 떠오르고 시가 읽힌다. 오늘 다큐에서 이창동이 말했다. '영화란 삶이라는 암흑의 핵심에 다가가게 하는 통로이다.' 나는 한 줄 덧붙인다. '이창동 영화를 보고 나면 일석 삼조이다. 영화와 소설과 시를 함께 읽을 수 있다.' 이창동 작품을 위해 영화 갈래를 하나 추가한다. '문학영화'. 그의 영화를 어서 빨리 보고 싶다. 그의 영화에 흐르는 소설같은 장면, 시같은 대사나 독백을 어서 듣고 싶다.
어제 종일 그린 그림을 오늘 오후 수정했다. 그림은 이 내용 전에 올렸다. 미남이다.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끝냈다. 일부러 멈췄다.
오전 내내 화분에 붙잡혀 있었다. 물을 주고 전잎을 떼어내고 마구 자란 줄기들 잘라주고...... . 와우 화분들을 어서 정리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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