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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블랙 요정 그녀 - 페놀로페 크루즈가 떠오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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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요정 그녀 - 페놀로페 크루즈가 떠오른 아침

 

 

오늘 아침 하늘 1

 

 

하늘이 뒤숭숭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다. 무채색의 그라데이션이 점차 짙은 잿빛으로 나아간다. 그 끝이 블랙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노골적이다. 대체 저런 하늘빛은 무슨 의미일까. 가끔 흑빛 세상을 연출하는 날의 조물주를 체크하고 싶다. 인성, 감성, 지성 등의 영역으로 고루 나누어 설문지를 던져보고 싶다. 수성 컴퓨터 펜을 쥐게 하고 당신의 현 상태를 답하게 하고 싶다. 이런 날이 좋은 나는 그렇다면 어떤 상태의 사람인가. (조심스럽기도 하다. 이런 내보임이.)

 

비가 내릴 듯도 싶다. 뿌연 안개가 미궁을 품에 안고 달음박질을 쳐 와 곧 배경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어정쩡한 무게의 천정을 머리에 이고 출근했다. 아직 우산을 펴지 않은 출근이었다. 다행이다. 출근길은 가벼운 운동화여야만 하기에 당초 운동화로 시작된 길에 느닷없는 비는 싫다. 비는 내가 출근하기 전에 미리 시작되어야 한다. 

 

오늘 아침 하늘 2

 

 

 

아침이 부산스러웠다. 오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이가 특별 출연하는 날이다. 옆 동료의 특별 휴가를 메꾸는 역할이다. 예전에 참 이물 없이 여겼던 이가 느닷없이 며칠, 같은 공간에 머무른다니 뜻밖에 낯설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였다. 손님맞이의 예절로 옷차림새는 단정하게 입고 싶었다. 요즈음 공존하는 여름과 가을에 특별 손님 출연이라는 의제를 버무리고 보니 정작 옷을 골라 입는 것이 짐이 되고 말았다.

 

보다 정장같은 한 벌을 입었다가 벗었다. 낮 더위를 이겨낼 수 없다 싶었다. 결국 어제 입었던 내용과 비슷하게 차려 입었다. 생각의 단계를 거쳐 의상을 착용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다. 무려 30여 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게으른 나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여지없이 일곱 시 이전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정상적인 보폭으로 삼사십 분 가까이 가는 출근길을 이십 분을 살짝 넘겨 소화시켰다. 제법 운동이라 느껴졌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상큼해졌다. 

 

오늘 아침 하늘 3

 

 

오랜만에 고려하여 착용한 옷차림은 결국 블랙이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중 구십 퍼센트 이상의 날이 블랙 차림이다. 요즈음 스페인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에 푹 빠져 있다. 영화 < 트와이스 본>을 시청한 후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이 다시 꽃피기 시작했다. 어찌 그리도 매력적일까. 그녀는 단순한 미인이 아니다. 묘한, 신비스러운 매력을 두 눈과 상하 입술 선에 온전히 담고 있다. 지긋이 그녀를 들여다보면 이곳저곳에서 이 배우, 저 배우 등 여러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올림머리에, 정면을 향한 눈에, 하늘을 보듯 치켜세운 화장을 하면 오드리 헵번이 된다. 입술과 큰 눈, 그녀 그대로의 모습 아래에는 소피 마르소가 편하게 누워 있다. 눈과 입술을 조금 오므리면 가끔 잉그리드 버그만도 보인다. 지나친 환상인가?

 

나는 상상 속에서 그녀에게 늘 블랙으로 온몸을 감싸게 한다. 영화배우 중 가장 블랙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사실 그녀는 여러 갈래의 영화에 출연해서 올 블랙 패션을 완성하여 입고 나온 장면이 많지 않다. 영화 <나인>이나, <엘레지> 등 몇 영화에서 몇 컷씩 블랙으로 등장한다. 그녀가 블랙으로 완성되면 그녀의 커다랗게 째진 눈이 철저하게 슬프다. 그다지 특별하게 관리하지 않은 듯한 몸이 무너진다. 도톰한 입술 위에 자리한 얇은 세속이 성가대의 은혜를 입는다. 적당히 또렷한 광대뼈와 어우러진 건강한 머리카락이 영화 주제에 맞는 춤을 춘다.

 

출연 영화마다 등장인물에 딱 들어맞는 그녀의 변신이 나를 유혹한다. 그녀의 유혹은 요란하지는 않다. 적당한 거리에서 내게 손짓이며 눈짓이며 몸짓을 한다. 절대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영화마다 그렇게 내게 오는 그녀는 블랙 천사이다. 왜? 내게 그녀의 영화는 되도록 내 안에서라도 더 멋지게 살아보고 싶게 하는 열망을 갖게 하므로~. 그녀에게 블랙을 입히면 그녀는 블랙이 상징하는바 '긍정'의 최정상이다. 고급지고 자기 통제력이 철저하고 최고의 자아 정체성을 의미한다. 이런 나를 위해 그녀는 공식 석상에서 혹은 화보를 찍을 때 블랙 패션을 자주 선보인다. 얼마나 책임감 있는 팬 서비스인가.

 

오늘 아침 하늘 4

 

 

오늘, 어제, 그리고 그제, 그 그제 거의 모든 날을 블랙으로 내 몸을 감싸고 사는 그렇다고 블랙 천사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요즘 새롭게 내게 인기를 얻고 있는 페놀레페 크루즈의 '아카데미 시상식장' 그녀 패션이 부러워서도 아니다. 고혹적인, 자기 개성 및 자기 제어력이 강한 어떤 것을 표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고급스러움의 상징인 샤넬, 디올 등 세계 최고급 패션 브랜드들의 도도한 블랙을 따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도 한때는 순수 백색 취향을 선보이기도 했다. 연분홍 치맛자락을 휘날리기도 했다. 어느 날 나를 툭 치고 들어와 블랙 마니아가 되게 한 것은 블랙의 긍정적인 의미나 부정적인 의미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그저 편리해서이다. 편리해서. 

 

종일 비가 내렸다. 일터에 딱 들어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 거뭇한 날에는 밝은 옷을 입으라는데 나는 상관없이 검은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면서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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