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잤다, 얼마나 숭고한 문장이냐!
잘 잤다. 얼마나 숭고한 문장이냐. 어찌하여 이것이 가능했는가. 어제 하루 일상을 돌아보자. 오랜만에 이렇게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만난 사람이 아름다웠다. 거의 같은 시간에 내 일터에 합류하는 사람. 안녕하세요? 으흠~ 안녕. 아침 먹고 왔나요? 시리얼과 우유를 마셨어요. 좋겠어요, 어머니가 차려주셨겠네요? 예. 부러워요. 저는 고아랍니다, 어머니께 고마워하세요. 예.
(1, 2분이 지났을까~)
우리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어떡하나요? 그래도 몇 달 남았어요, 내년에 자주 들를게요, 편지도 쓸게요. 아니에요, 오지 마세요, 내년에 새로 만날 사람들에게 집중할 거예요. 참, 그랬지요, 알았어요.
오직 '즐거움'만이 있을 시간을 계획하여 실행하였다. 전 구성원이 온몸을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진행된다. 서로에게 퍼붓는 언어들에 한계가 없다. 심지어 쌍시옷이 포함된 문장을 던지고 받을 수도 있다. 험한 글자들의 조합이 암암리에 용서된다. 왜? 나도 사용하고, 너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시간에 내뱉는 언어들은 '본능적으로', '원초적으로', 순수 배설용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쌍스러운 언어들의 조직에 웃음으로 응답이 된다. '응답을 한다'가 아닌 '응답이 된다'이다. 상대가 내게 해 오는 쌍욕들이 나를 웃게 하다니. '어' 다르고 '아' 다르다. 떠오르는 속담이다. 속담 하나를 창작한다. '어' 다르고 '아' 달라도 '웃을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 없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속담들을 보시라. 해석 나름이겠지만 찬찬히 살펴보라. 어느 속담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있던가. 속담의 근본은 인간사이다. 인간사가 곧 속담이다.
오직 웃음만으로 진행될, 온몸의 불순물을 땀으로 만판 퍼낼 수 있을 것이 기대되는, 당연한 시간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오늘은 짧은 시간에 세 판만 실시했다. 마음껏 뛰고 마음껏 웃고 마음껏 언어 사용의 자유를 누렸다. 지켜보는 나도 넉넉한 웃음만이 필요한, 신나는 시간이었다. 움직임의 기본 규칙만 지키면 됐다. 상대에게 신체상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됐고 각자 자신의 육신을 지킬 수 있으면 됐다. 진탕 웃었다. 하하하하하,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육들의 공동체는 그야말로 대낮에 벌이는 백사여의(百事如意 온갖 일이 뜻한 바 그대로 이루어짐) 축제였다.
근본은 결국 '내려놓음'이었구나. 어제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는 오직 서로를 향한 순진무구의 선이었다. 똑같은 시각, 똑같은 인사, 똑같은 걸음으로 내게 오는 그 사람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티끌 한 점 없는 맑음이다. 그 사람도 분명 나와 똑같다. 어쩌면 나를 향한 마음이 나보다 더한 나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생명체 본류에 흐르는 온전한 사랑.
대낮 만사형통의 파티도 그랬다. 그들이 서고, 뛰고, 피하고, 멈추고, 달리고, 던지고, 그러면서 쏟아내는 언어를 통한 배설 작업을 내가 가만 지켜보면서 중재 역할을 조심스레 하면 된다. '조심스레'에도 그다지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가벼운 중재 역할이다. 중재라기보다 일종의 다독거림이다. 상대방의 언어 배설을 듣는 입장에서 사심이 적용된다 싶으면 가만 다가가 따뜻하게 달래는 말 한마디면 된다. 사실 내가 끼어들 장면도 거의 없다.
아름다운 날이었다. 1일 2식, 간헐적 단식이라고 점심시간에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음심을 취한 것이 조금 문제였을 뿐이다. 오후에, 근무 중에 부른 배를 간수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내 공간 한쪽에서 잠시 잠깐 다리 높이 올려 걷기 운동을 해야 했다. 퇴근길은 온 힘을 다해 분 풍선 속에 가득 물을 담은 모양새를 아랫배에 싣고 걷는 기분이었다. 저녁을 참자, 오늘은 1일 1식이어야 한다를 세뇌한다고 했지만 결국 저녁도 먹었다. 간헐적 단식은 8시간 안에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던 동료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변명이고 저녁 시간이 되면 찾아오는 '공허'를 이기지 못해 배를 채우고 입을 즐겁게 한 것이다.
거짓말처럼 저녁 식사 후 재빨리 육신을 씻었다. 머리감기를 쉰다는 것은 참 마음 가볍게 한다. 아침 일기를 재빨리 다듬어 평소 하던 것보다 두 시간 정도 빨리 올렸다. 아날로그 일기도 재빨리 썼다. 이른 시간이니 보던 영화만 마저 보고 잠자리에 들자고 했는데 '또 한 사람'이 술기운을 담고 들어와서 '저, 돌아왔습니다'를 읊은 소리에 눈을 떴다. 몸은 이미 잠의 세계로 들어선 후였다. 혼자 돌아가던 텔레비젼을 끄고 눈을 감았다. 다시 새날. 여섯 시 알람을 재우고 다시 잤다. 아침을 틀림없이 먹는 이가 있었다. 식기 전에 삼겹살을 어서 먹으라는 권유에 눈을 떴다. 8시 30분. 영육이 완전 맑음이었다. '또 한 삶'은 돼지고기 삼겹살에 어젯밤 수확한 '부추'를 전으로 만들어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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